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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칠판을 보며 책상에 앉아있는게 내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는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머릿속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가득했다.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교실은 적막으로 가득했다.
교실안의 모두가 칠판에 가득한 선생님의 글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교실에서 갑자기 뛰쳐나가버리지 않기위해
식은 땀을 흘리며 버둥거리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모든 이에게 당연시 여겨지는 그 쉬운 일이
나에게만 어렵다는 것은
패배감과 열등감이 쏟아져 땅 밑으로 꺼져버릴 듯한 느낌이었다.
초교와는 멀리 떨어진 명문 중학교에 진학을 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중학교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문제만 일으키는 열등생이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반장이 되었다.
반 대표로 선서를 하는 일도 있었다.
오래가지 않아 가면은 벗겨졌고
폭력성으로 얼룩진 열등생인 나의 본 모습은
학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집중할 수 없는 학교 수업은 내게 고통이었다.
교실에 들어가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3학년 때엔 폭주족과 큰 사건이 있었고,
당시의 사건으로 나는 전신골절을 입었으며
살해협박을 받았다.
등교거부를 일삼는 열등생인 불량학생의 사고소식에 학교가 내린 처방은
집중감시와 오랜 상담이었다.
나의 내면이 조금씩 부서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학교를 가지 않았다.
나는 학교와는 맞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미국학교에 진학했다.
일본의 교육과는 전혀 다른 커리큘럼,
일본에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사실들.
그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미국에서 잦은 심발작이 시작되었다.
잦은 패닉은 날 공포에 질리게했고,
어느 순간부터 난 평범한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모국으로 돌아온 나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 가족들이 내게 문제가 생겼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어느날 밤 눈을 뜨니
CCTV와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이었다.
한동안 특수관리보호실에서 생활을 했다.
소리를 지르면 근육마취제가 투여되어서 반나절은 설 수 조차 없었다.
모서리가 둥근 침대에 결박당한채
천장의 CCTV와 열리지 않는 두꺼운 문,
안전장치가 있는 작은 창문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이 곳을 나가도 내게 남겨진 것은
중졸의 학력과
장애와
정신병
다량의 약과
근육마저 남지않은 마른 몸
나에게 있어 세상은 이미 끝나버린 것 같았다.
동시에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긴 시간이 지났다.
퇴원 후 미친 듯이 입시에 매달렸다.
중학교의 반을 나가지 않은
발달장애의 열등생에게 입시는
생소함의 연속이었다.
정신과의사가 되고싶었다.
의대를 목표로 두고 미친 듯이 공부했다.
초등학생의 수학부터 시작해
2년이 넘는 시간을 오로지 의대에 가겠다는
그 목표 하나로 공부했던 시간이었다.
공부를 하기위해 길을 나섰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가만히 멈추어 섰다.
학원을 가는 길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집의 위치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본 친구 덕에 집에 도착했지만
온통 낯선 것 뿐이었다.
책을 펼치니 나의 필체로 기록된 필기들이 가득했다.
미친듯이 노트들을 뒤졌다.
나의 필체, 나의 필기.
내 기억엔 없는 낯선 나의 필기.
강한 정신병약을 줄이는 과정에서의 부작용이었다.
기억장애가 찾아왔다.
2년이 넘는 나의 모든 노력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의사가 되겠다는 나의 꿈과 그 희망이 모두
조각이 나, 나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은 음식과 수면을 거부했고
약은 나를 억지로 재우고 깨웠으며
방을 미친듯이 빙빙 돌고
주변 사람들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아침이면 출혈로 시트가 젖어
무기력하게 바닥에 널부러져있곤 했다.
집에서는 어린 동생들과 부모님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일상처럼 들려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싸우기 시작했고
어느 날 싸움 끝에 화를 이기지 못한 채 전화기를 벽에 던졌다.
부서진 전화기 파편을 보며
"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을까
왜 나는, 왜 내가,
이런일을 겪어야 하는거지? 라고 원망했었다.
시선을 바꿔보았다.
내가 처한 상황 모두가 누구의 탓도 이 세상도 탓도 아닌
나의 탓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내가 처한 모든 상황과 문제의 원인이 나라면
이 모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 또한
나에게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카세 사토시가 인터뷰에서 질답한
밴드 결성 전까지의 본인의 성장담.
이후 부모님이 다시 미국행을 권유하지만 거절,
독립 후 당시 대학재학중이던 소꿉친구들과대출금을 받아
집근처의 폐공장부지의 지하실을 임대
유치원부터 입시학원까지의 친구들이 모두 동원되어
지하실 개조시작
벽을 세우는 것 부터 시작해서
무대까지 하나하나씩 손으로 만들어서
지금은 전설이 된 도쿄인디록씬의 성지 라이브클럽 earth 를 만듦
이후 클럽을 같이 경영하는 소꿉친구들과 밴드를 결성.
자신의 세상이 끝났다고 느꼈던 그 지점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는 뜻으로
세카이노 오와리 (세상의 끝) 라는 이름을 명명
데뷔와 동시에 여러가지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세카오와신드롬"으로 다뤄지기도 했음.
그래, 내가 살아온 인생은 낭비와 무의미함, 실패의 연속이었다.
유치원 때 부터 꾸준히 해오던 공수도는
병원에 가게되면서 무용지물이 되었고
장래를 위한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에선
병이 악화되어 귀국을 해야했고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하나로
2년이 넘게했던 공부는
기억장애가 찾아오며 물거품이 되었고
20대를 바쳐서 만든 라이브클럽은
데뷔를 하게되며 경영하기 힘들어졌다.
나는 지금 곡을 쓰고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공수도나, 미국유학이나, 입시나, 클럽경영 같은 것들
전부 지금 내가 하는 일과는 무관하지.
그렇게 나는 남들이 말하는 "쓸모없는 짓"에
내 인생의 8할을 썼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많은 실패를 한 덕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는 그저 과정일 뿐이다,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성공했다고해서 영원한 성공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 성공이 결국에는 실패해버릴 수도 있고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엔
더 많은 실패의 가능성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실패는 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 일 뿐인 과정이고
과정은 경험이며
경험은 감각을 준다.
내가 겪은 모든 실패들과
그로 인해 오는 좌절감과 패배감, 열등의식은
나 자신을 바꾸겠다는 연료가 되었고
나의 감성이 되어 내가 곡을 쓰게끔 한다.
비록 실패하였을지라도
실패하기까지의 그 과정, 노력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결국 쓸모없는 것이 될지라도
언젠간 네가 노력했었던 그 시간,
그리고 그 시간들에 대한 추억이
자신을 지탱해주는 날이 올거다.
내가 라이브클럽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두 무리라고 말했어.
하지만 우린 우리 손으로 라이브클럽을 만들었고
그 때가.. 21살 정도였는데 여러분들 나이네,
빚이 어마어마해서 다들 아르바이트를 했는데도 전화가 끊기고
쓸데없는 망상에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고 손가락질당하면서
자체제작으로 앨범을 만들었었는데 그게 1집 EARTH랑 거의 똑같은 형태였어.
'환상의 생명'같은 경우는 여러분이 듣는 그 버전이랑 완전히 똑같았었고
근데 아무도 우릴 주목하지않았고 연락 온 곳도 한군데도 없었어.
내가 하고싶은 말이 뭐냐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전 해, 그리고 너무 빨리 좌절하진 마.
불가능을 증명하는 건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0.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불가능은 증명되지 않으니깐.
한달 생활비 500엔으로 살던 내가 제작비만 5억엔인 콘서트를 했으니깐 말이야.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꿈을 살아갔으면 좋겠어.
-와세다대학축제 라이브中-
처음 내가 사오리,나카진,러브와 함께 밴드를 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 말했어.
드럼과 베이스없이는 밴드를 할 수 없다고.
그래도 난 믿었어. 아니, 할 수 있어. 라고 말했어.
가와사키의 오디션에서는 밴드 4팀중 4등을 했어.
심사위원이 나에게 이런 밴드이름으로는 상업성이 없다고 말했어.
이런 노래는 팔리지않는다고 말했어.
그래도 난 계속 믿었어.
웃기지말라고 해.
봐, 내가 수만명 앞에서 노래하고 있잖아.
사실 사람들은 성공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모두들 실패할 경우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꿈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소중히 보관하잖아.
바라만 보면 꿈은 꿈일 뿐이지만 네가 손을 뻗으면 꿈은 현실이 돼.
그 것이 실패한다고해도 실패인지 아닌지는 그때엔 모르는 거야.
나중에 내가 걸어온길을 돌아봤을 때,
비록 목적지에 오기까지 빙빙 돌아가며 험난한 황무지만을 걸었다해도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되는거야.
그리고 느낄 수 있을 거야. 지름길로 오는 사람은 못 본 풍경을 보며,
네가 힘들게만 느꼈던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가 되었는지.
꼭 매일 무언가와 싸우며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남의 노력과 나의 시간을 비교하며
초조해하고, 자기 자신을 학대하며
패배감에 젖지 않아도 된다.
아무 것도 하지않는 자신을 원망하며
자기자신을 "쓸모없는 것"으로 느끼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보내는 시간, 지금 너의 삶 속에서
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분하고 화가 나는 것 이겠지만
너 역시도 무언가와 끊임없이 싸우고 좌절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안다.
너는 너의 양식이 될 시간 속에 있을 뿐이다.
<10-20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의 말을 해달라는 인터뷰어에게
이미 열심히인 사람에게 더 힘내라며 압박하고싶지않다는 말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