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희
-촬영 당일 아침에 대본이 나오는 홍 감독의 작업 방식을 경험해보니 어땠나요.
=그의 방식에서 장점을 많이 드러낼 수 있는 배우가 있는 반면,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캐릭터를 여러 각도로 펼칠 수 있는 배우가 있어요. 나는 후자에 속하는 배우죠. 캐릭터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 안에서 리서치를 한 뒤 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여러 가지로 해석해 몇 가지 대안을 갖춘 뒤 촬영에 들어가는 걸 선호해요. 지금까지 그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고.
-그래서 홍상수 감독의 현장이 생소했겠어요.
=그러니까… 서울에서 촬영했더라면 하루나 이틀 정도 쉬고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외국 촬영이라 스탭들이 준비하는 동안 감독님이 대본을 쓰고 있거나 초안이 나오는 거예요.
-낯설었나요.
=부족한 거지, 내가. 그의 영화에 참여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부족하다고 느꼈을 때 스스로 부끄러웠나요.
=그렇지. 시간에 쫓기듯 작업했고, 배역을 준비하기 위한 어떤 정보도 없었어요. 내 역할이 배급사 대표라는 것만 알 뿐이에요. 대본이라도 있으면 아, 이런 이야기니까 내가 얘(김민희)를 해고시키는구나라고 이해할 텐데. “네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해고시킨다”는 대사가 있긴 했지만 왜 해고를 시켜야 하는지 확실히 잘 모르겠고. (웃음)
-감독한테 따지지 그랬어요.
=다들 그렇게 찍는다는데 어떻게 따지나. (웃음) 최선을 다해 그가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내 목표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방식은 나한테 맞지 않구나라고 생각했어요.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7798
이혜영
-홍상수 감독의 촬영 현장은 굉장히 독특하다. 당일에 대본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연기하는 방식이다. 이런 촬영 방식이 낯설진 않았나?
전혀! 홍상수 감독의 영화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배우로서 분류될 방을 찾은 느낌을 받았다. 첫 촬영 날의 기억이 정말 생생하다. 적어도 나는 40년 배우로 살면서 거짓으로 연기한 적은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의 촬영 현장에서 ‘지난 날의 내 연기가 모두 가짜였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매 순간 새로움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정말 열정적으로 영화 현장에 빠져들었다. 지금껏 연기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40년 연기 경력의 베테랑 배우가 느낀 ‘생애 최초의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홍상수 감독은 현장에서 매일 A4 1장의 대본을 준다. 그리고 촬영을 마치면 대본을 다시 가져간다.(웃음) 내가 안톤 체홉을 좋아하는데, 홍상수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고 체홉이 떠올랐다. 일반적인 영화 시나리오는 구체적이다. 지문도 친절하고, 얼굴 표정까지 대략 그린 콘티도 있다. 그러면 배우는 거기에 갇힌다. 그 지문대로, 콘티대로 연기해야 할 것 같은 함정에 빠진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의 시나리오에는 ‘함정’이 없었다. 촬영 당일 시나리오를 받고, 그 자리에서 연기하면 끝이다. 내일 해야 할 연기를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전혀 없다. 메이크업도 하지 말고 현장에 오라고 해서, 눈 뜨면 세수만 하고 무조건 현장에 갔다. 그 날의 상황에 맞게 연기하면 된다. 그 작업이 정말 재미있었다. 믿을 수 없게 자유로웠다.
-'당신 얼굴 앞에서'라는 영화의 제목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홍상수 감독은 ‘이혜영의 어떤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글쎄, 촬영 때는 제목도 없었다.(웃음) 감독이 왜 그렇게 제목을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칸 영화제에 초청받고 나서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보여줬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지금껏 어떤 스크린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http://mosen.mt.co.kr/article/G1111622188#_ace
이슈 홍상수 감독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한 두 중견 배우의 상반됐지만 둘 다 이해되는 인터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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