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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노인 일자리도 ‘오픈런’···짠물 연금이 만든 취업난[일하는 노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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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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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접수하면 4시간은 기다려야 된대.”

 

번호표를 뽑아 든 백발의 남성이 뒤따라 온 친구에게 손을 내저었다. 2025년도 노인 일자리 모집 첫 날인 지난해 12월5일 서울 동대문구 시니어클럽. 신청서 접수 10분 전부터 비좁은 복도가 인파로 가득 찼다. 지난해 관내 한 초등학교에서 교통안전도우미로 일했다가, 올해도 ‘재취업’에 나섰다는 박경자씨(가명·79)도 그 중 한 명이다.

 

“솔직히 생계 때문이 크지. 자식들도 잘 안 풀리는데 용돈 달라고 하기 그렇잖아.” 일주일에 5일, 하루에 1시간을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월 27만9000원(지난해 기준).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식당 일을 오래 하느라 국민연금을 들지 못했던 박씨에겐 기초연금(30만원)과 함께 최소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중한 소득원이다.

 

2025년 노인일자리 모집 신청 첫 날인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25년 노인일자리 모집 신청 첫 날인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문제는 노인들의 취업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하고자 하는 노인은 많은데 노인을 원하는 곳은 적다보니 노인들의 노동 환경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취업난이 만든 노인일자리 ‘짠물 임금’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년층 등록취업자는 312만2000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대치를 갱신했다. 전체 노년층 인구(949만7000명) 중 33%에 달한다. 일하는 노인이 급증하는 건, 은퇴 후 받는 연금 소득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탓이다. 2022년 65세 이상 연금수급자들의 월평균 연금액은 65만원으로 노후 최소 생계비(124만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이미 지나버린 노령층의 소득 보장을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노인 일자리 대폭 확대’다. 지난해 노인 일자리는 103만개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년 전 사업 첫 해(2만5000개)와 비교하면 41.2배가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를 희망한 노인은 224만명으로 일자리 수를 한참 뛰어넘었다. 노인 2명 중 1명은 탈락의 고배를 마신 셈이다.

 

일하고자 하는 노인들은 많고, 예산은 한정적인 상황. 이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일자리를 최대한 잘게 쪼개는 것이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는 크게 세 가지 유형(공공형·사회서비스형·시장형)으로 나뉘는데, 이 중 70% 이상이 공공형 일자리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일을 하고 월 29만원의 수당이 지급되는 구조인데, 수당은 100% 공공의 재원으로 지급된다.

 

 

2025년 노인일자리 모집 신청 첫 날인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25년 노인일자리 모집 신청 첫 날인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일각에서는 공공형 일자리 확대가 세금으로 ‘질 낮은 일자리’만 양산하는 것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시장형 일자리를 더 늘리겠다는 기조를 세웠다. 노인 일자리의 생산성을 높여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임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형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인들 역시 적정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노인인력개발원이 실시한 2022년 노인일자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장형사업단의 급여수준은 27만원 이하가 38.5%로 가장 많았다.

 

5년째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노인일자리 업무를 하고 있는 담당자는 “노인들에게 세금을 퍼주지 말자는 논리로 생긴 것이 시장형 일자리지만, 정부 보조금 없이는 기업들이 수익을 낼 방법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담당자도 “더 많은 수익을 내려면 그만큼 노인들의 작업량이나 강도가 올라가야 하지만 체력적·정신적 한계로 인해 이를 버거워하는 참여자들이 적지 않다”며 “노인 일자리에 ‘자립’을 요구하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 인정 못 받는 ‘일하는 노인’


시장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노인들을 고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금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최저임금 보장이나 4대 보험 가입같은 각종 노동법의 적용은 예외를 인정받는다. 사회서비스형을 제외한 노인일자리 종사자의 신분이 ‘근로자’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버택배 일을 5년째 하고 있는 정찬우씨(가명·81)는 한 달에 40만원을 번다.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서울 광진구에 있는 회사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치과 십여곳을 지하철로 오간 뒤, 오후 12시가 넘어서야 퇴근한다.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걸어야 하는 ‘중노동’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6일을 일하고 손에 쥐는 하루 일당은 고작 1만6000원. 정씨는 “아무리 노인이라고 해도 들이는 노력에 비해 돈을 너무 적게 받는 것 같다”며 “최저임금만큼 달라는 말이 아니다. 반나절을 꼬박 일하는데 적어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노인들이 택배 일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노인들이 택배 일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공공의 지원이 없는 민간 노동시장은 사정이 더 열악하다.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박태정씨(가명·68)는 “2025년이 아니라 1970년대 근무환경”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도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3교대 근무, 8시간 근무 기준 10분이 채 안되는 식사시간, 100㎏이 넘는 와상 환자를 돌보는 고강도 업무까지… 이 모든 것을 견디고 받는 돈은 193만원에 불과하다.

 

박씨는 “딱 법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최저임금만 주는 것”이라며 “젊은 사람 중엔 이 돈 받고 일하겠다고 하지 않으니 건강한 노인이 병든 노인을 돌보는 구조”라고 했다. 노인들을 고용한 병원은 고용보험을 비롯한 4대보험 가입 의무도 지지 않는다. 현행 고용법 상 만 65세 이후 신규취업자는 실업급여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있지만 일하는 사람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부나 기업이 노인들을 ‘고용해준다’는 시혜적인 시선으로 보기엔, 이미 이들은 노동 시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세력”이라며 “노인 대부분이 불안정한 저소득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의무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가 밑바닥” 그래도 일을 놓지 못한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 3명 중 1명(33%)은 단순노무 종사자였다. 분야별로는 농림축산어업 종사자(24.5%)가 가장 많았고, 경비·수위·시설관리·청소(18.1%)와 가사·조리·음식·돌봄(14.3%)이 뒤를 이었다. 종사상 지위는 자영업자(37.3%)와 임시근로자(22.2%), 상용근로자(17.2%) 순으로 많았다. 월 평균 근로소득은 192만4000원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청소 일을 하는 유민숙씨(가명·81)는 하루에 4시간 정도를 일하고 월 120만원을 번다. 10년 전 처음 청소 일을 시작했던 건 상가 건물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1000세대 이상 대단지, 300세대 이상 소규모 아파트로 일터를 옮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급여는 깎이고 노동 강도는 세졌다. 1년이던 계약 기간도 3개월 간격으로 줄었다.
 

노인빈곤율

 

유씨는 “작은 단지는 일하는 사람끼리 뭉치기 힘들다보니 무리한 지시를 하거나, 계약 조건을 악화시켜도 대응하기 힘들다. 여기(지금 일하는 소규모 아파트)가 제일 밑바닥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유씨는 일을 그만두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다.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34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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