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노인 일자리도 ‘오픈런’···짠물 연금이 만든 취업난[일하는 노인②]
3,626 8
2025.01.13 09:02
3,626 8

“지금 접수하면 4시간은 기다려야 된대.”

 

번호표를 뽑아 든 백발의 남성이 뒤따라 온 친구에게 손을 내저었다. 2025년도 노인 일자리 모집 첫 날인 지난해 12월5일 서울 동대문구 시니어클럽. 신청서 접수 10분 전부터 비좁은 복도가 인파로 가득 찼다. 지난해 관내 한 초등학교에서 교통안전도우미로 일했다가, 올해도 ‘재취업’에 나섰다는 박경자씨(가명·79)도 그 중 한 명이다.

 

“솔직히 생계 때문이 크지. 자식들도 잘 안 풀리는데 용돈 달라고 하기 그렇잖아.” 일주일에 5일, 하루에 1시간을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월 27만9000원(지난해 기준).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식당 일을 오래 하느라 국민연금을 들지 못했던 박씨에겐 기초연금(30만원)과 함께 최소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중한 소득원이다.

 

2025년 노인일자리 모집 신청 첫 날인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25년 노인일자리 모집 신청 첫 날인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문제는 노인들의 취업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하고자 하는 노인은 많은데 노인을 원하는 곳은 적다보니 노인들의 노동 환경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취업난이 만든 노인일자리 ‘짠물 임금’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년층 등록취업자는 312만2000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대치를 갱신했다. 전체 노년층 인구(949만7000명) 중 33%에 달한다. 일하는 노인이 급증하는 건, 은퇴 후 받는 연금 소득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탓이다. 2022년 65세 이상 연금수급자들의 월평균 연금액은 65만원으로 노후 최소 생계비(124만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이미 지나버린 노령층의 소득 보장을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노인 일자리 대폭 확대’다. 지난해 노인 일자리는 103만개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년 전 사업 첫 해(2만5000개)와 비교하면 41.2배가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를 희망한 노인은 224만명으로 일자리 수를 한참 뛰어넘었다. 노인 2명 중 1명은 탈락의 고배를 마신 셈이다.

 

일하고자 하는 노인들은 많고, 예산은 한정적인 상황. 이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일자리를 최대한 잘게 쪼개는 것이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는 크게 세 가지 유형(공공형·사회서비스형·시장형)으로 나뉘는데, 이 중 70% 이상이 공공형 일자리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일을 하고 월 29만원의 수당이 지급되는 구조인데, 수당은 100% 공공의 재원으로 지급된다.

 

 

2025년 노인일자리 모집 신청 첫 날인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25년 노인일자리 모집 신청 첫 날인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이 일자리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일각에서는 공공형 일자리 확대가 세금으로 ‘질 낮은 일자리’만 양산하는 것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시장형 일자리를 더 늘리겠다는 기조를 세웠다. 노인 일자리의 생산성을 높여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임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형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인들 역시 적정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노인인력개발원이 실시한 2022년 노인일자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장형사업단의 급여수준은 27만원 이하가 38.5%로 가장 많았다.

 

5년째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노인일자리 업무를 하고 있는 담당자는 “노인들에게 세금을 퍼주지 말자는 논리로 생긴 것이 시장형 일자리지만, 정부 보조금 없이는 기업들이 수익을 낼 방법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담당자도 “더 많은 수익을 내려면 그만큼 노인들의 작업량이나 강도가 올라가야 하지만 체력적·정신적 한계로 인해 이를 버거워하는 참여자들이 적지 않다”며 “노인 일자리에 ‘자립’을 요구하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 인정 못 받는 ‘일하는 노인’


시장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노인들을 고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금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최저임금 보장이나 4대 보험 가입같은 각종 노동법의 적용은 예외를 인정받는다. 사회서비스형을 제외한 노인일자리 종사자의 신분이 ‘근로자’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버택배 일을 5년째 하고 있는 정찬우씨(가명·81)는 한 달에 40만원을 번다.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서울 광진구에 있는 회사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치과 십여곳을 지하철로 오간 뒤, 오후 12시가 넘어서야 퇴근한다.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걸어야 하는 ‘중노동’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6일을 일하고 손에 쥐는 하루 일당은 고작 1만6000원. 정씨는 “아무리 노인이라고 해도 들이는 노력에 비해 돈을 너무 적게 받는 것 같다”며 “최저임금만큼 달라는 말이 아니다. 반나절을 꼬박 일하는데 적어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노인들이 택배 일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노인들이 택배 일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공공의 지원이 없는 민간 노동시장은 사정이 더 열악하다.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박태정씨(가명·68)는 “2025년이 아니라 1970년대 근무환경”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도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3교대 근무, 8시간 근무 기준 10분이 채 안되는 식사시간, 100㎏이 넘는 와상 환자를 돌보는 고강도 업무까지… 이 모든 것을 견디고 받는 돈은 193만원에 불과하다.

 

박씨는 “딱 법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최저임금만 주는 것”이라며 “젊은 사람 중엔 이 돈 받고 일하겠다고 하지 않으니 건강한 노인이 병든 노인을 돌보는 구조”라고 했다. 노인들을 고용한 병원은 고용보험을 비롯한 4대보험 가입 의무도 지지 않는다. 현행 고용법 상 만 65세 이후 신규취업자는 실업급여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있지만 일하는 사람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부나 기업이 노인들을 ‘고용해준다’는 시혜적인 시선으로 보기엔, 이미 이들은 노동 시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세력”이라며 “노인 대부분이 불안정한 저소득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의무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가 밑바닥” 그래도 일을 놓지 못한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 3명 중 1명(33%)은 단순노무 종사자였다. 분야별로는 농림축산어업 종사자(24.5%)가 가장 많았고, 경비·수위·시설관리·청소(18.1%)와 가사·조리·음식·돌봄(14.3%)이 뒤를 이었다. 종사상 지위는 자영업자(37.3%)와 임시근로자(22.2%), 상용근로자(17.2%) 순으로 많았다. 월 평균 근로소득은 192만4000원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청소 일을 하는 유민숙씨(가명·81)는 하루에 4시간 정도를 일하고 월 120만원을 번다. 10년 전 처음 청소 일을 시작했던 건 상가 건물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1000세대 이상 대단지, 300세대 이상 소규모 아파트로 일터를 옮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급여는 깎이고 노동 강도는 세졌다. 1년이던 계약 기간도 3개월 간격으로 줄었다.
 

노인빈곤율

 

유씨는 “작은 단지는 일하는 사람끼리 뭉치기 힘들다보니 무리한 지시를 하거나, 계약 조건을 악화시켜도 대응하기 힘들다. 여기(지금 일하는 소규모 아파트)가 제일 밑바닥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유씨는 일을 그만두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다.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344931

목록 스크랩 (1)
댓글 8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AHC☀] 올 여름을 위해 폭삭 쟁였수다😎 선케어 맛집 AHC의 ‘블랙 선크림’ 체험 이벤트 🖤 610 04.10 44,841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1,668,036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6,351,86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9,538,98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 금지관련 공지 상단 내용 확인] 20.04.29 28,707,081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6 21.08.23 6,646,58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43 20.09.29 5,592,425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93 20.05.17 6,312,365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98 20.04.30 6,617,61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1,645,954
모든 공지 확인하기()
286958 정보 [KBO] 프로야구 4월 13일 각 구장 관중수 6 18:14 1,230
286957 정보 [KBO] 프로야구 4월 13일 경기결과 & 순위 14 18:13 2,272
286956 정보 전직 장례식장 총무의 팁 539 18:12 23,854
286955 정보 성인 인터넷 중독 자가진단 37 17:21 2,919
286954 정보 더불어민주당 대선 권리당원 투표 안내 297 16:07 21,658
286953 정보 나만 몰랐던거 같은 LG 그램 노트북 1년 쓰면서 몰랐던 충격적인 기능 467 16:04 56,055
286952 정보 [리무진서비스] 스트레이키즈 플레이리스트 4 15:53 945
286951 정보 박나래에게 조언했었던 기안84 11 15:43 5,881
286950 정보 영국에서는 파이프 배선 작업을 할 때 ㅇㅇ을 이용한다 11 14:56 3,332
286949 정보 인스타 프로필 사진 바꾼 이재명(뒷북) 20 14:28 3,935
286948 정보 은근히 나오기 힘든 시청률 추이를 기록한 2024~25년 드라마 13편 27 14:16 2,871
286947 정보 ChatGPT 등의 AI를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교수들 295 13:57 23,423
286946 정보 중국 문화대혁명 "북한도 동참하라!" 북한 "지랄하지마" 17 13:45 4,119
286945 정보 JTBC <아는 형님> 다음 주 성우 특집 예고 (강수진 / 안지환 / 이선 / 남도형) 9 13:39 1,360
286944 정보 폰트고민하시는 분들께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만든 가독성 좋고 눈이 편한 무료 온고딕체 추천합니다. 34 13:18 3,637
286943 정보 대형소속사별 미주+유럽 스타디움 콘서트 입성 및 입성 예정 가수들 25 11:54 2,929
286942 정보 평생 뚱뚱하다가 30키로 뺀 이후 느낀 점들 44 11:44 10,719
286941 정보 NCT 해찬 인스타 업데이트 12 10:36 2,850
286940 정보 Kb pay 퀴즈정답 15 10:02 2,195
286939 정보 신한플러스/플레이 정답 13 07:36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