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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어른들 잘못으로 비극이 된 고3 학생들의 우정여행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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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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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15일 2019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서울 은평구 소재 D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0명은 여행을 준비한다. 입시 스트레스도 풀고, 각자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고교 시절의 마지막을 기리며 서로 우정을 다지기 위한 자리였다. 학교에는 현장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부모들의 허락도 받았다. 

그해 12월17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고, 학생들은 1박2일 일정으로 가슴 설레는 '우정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모두 2~3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사이였다. 


이날 오후 4시쯤 학생들은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경포대가 인접한 강릉시 저동에 있는 A펜션이었다. 

학생들은 201호실에 여장을 푼 뒤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마당에서는 숯불에 불판을 얹어놓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주위에 삥 둘러앉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웃고 떠들며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즐겼다. 밤이 깊어지자 객실로 들어갔지만 곧바로 잠들지 않고 새벽 3시쯤까지 놀았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 학생들이 머물던 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펜션 주인은 새벽까지 놀다가 늦잠을 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나도 움직임이 없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오후 1시12분쯤 학생들의 방문 앞에서 노크를 했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주인은 문을 열고 나서야 놀라운 상황을 목격한다. 학생들 모두 방에 쓰러져 있었고, 이 중 7명에게는 거품을 물고 구토한 흔적까지 있었다. 

당시 녹취록을 보면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다. 펜션 주인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며 "수능 끝난 학생들이 숙박을 했는데,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문을 두드렸는데 막 오바이트 하고 입에서 거품이 막 나오는 그런 상태인데 응급조치를 어떻게 해야 되나"라고 묻는다. 


해당 펜션은 계단을 통한 1층과 2층 복층 구조였다. 학생들은 복층 거실에서 4명, 2층에 6명이 쓰러져 있었다. 이 중 3명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나머지 학생들은 의식불명 상태에서 강릉 시내 병원 3곳으로 긴급 이송돼 응급치료를 받았다. 12월19일 오후 2시쯤 3명이 의식을 회복했다. 나머지 4명 중 3명도 점차 정상으로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1명도 중환자실에 있다가 의식을 회복했다.


의료진은 학생들이 잠을 자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됐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인 펜션 객실에서는 일산화탄소 농도가 155ppm으로 측정됐는데, 평균 수치인 20ppm의 8배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사고를 당한 시점의 농도는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 수사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펜션 보일러의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던 것이다. 펜션의 난방은 호별 난방식이었는데 보일러 시공부터 엉터리였다. 


해당 객실 보일러는 2014년 3월에 설치했는데, 업체 대표와 설치를 도운 사람은 보일러 시공 자격이 없는 무자격자였다. 문제의 보일러는 건물주가 직접 구입한 뒤 무자격자에게 시공을 맡긴 것이다. 전문업체에 맡기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당시 시공자는 보일러 배기관과 배기구 사이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배기관 하단을 10cm 정도 절단했다. 이 때문에 배기관의 체결홈이 잘려 나갔다. 가스가 새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내열 실리콘으로 틈을 감싸고 철사로 고정하는 등의 마감처리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보일러를 가동할 때마다 배기관이 진동으로 조금씩 밀려 올라가다가 결국 배기구와 어긋났던 것이다. 이 때문에 가스가 누출돼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 때문에 복층까지 들어차면서 방 모든 곳의 일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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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바깥 공기가 유입되는 급기관 일부가 벌집으로 막혀 있기도 했다. 가스보일러가 정상적으로 가동하려면 공기가 잘 통하도록 급기관이 확보돼 있어야 하는데, 벌집에 의해 막히면서 불완전 연소를 유발했고, 학생들이 더 빠르게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일러의 사후 관리도 부실했다. 보일러가 마감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사고 펜션의 가스 시설 완공 검사 당시 적합 판정을 내렸다. 가스 공급자도 정기적 안전 점검을 부실하게 했다. 시공 단계에서는 부실 시공이, 관리·감독 단계에서는 부실 점검이, 숙박 제공 단계에서는 보일러 관리 소홀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고와 관련해 9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가스보일러 시공업체 대표, 보일러 설치업체 대표, 펜션 운영자, 한국가스안전공사 검사원 등 4명에게는 징역 2년에서 금고 1년6개월까지 실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보일러 설치와 점검, 사용 승인, 사후 관리 등에서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했다"며 "피고인들은 각자 자신들의 과실을 부정하며 이 사건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펜션 운영과 시공, 관리에 있어 책임 있는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직무를 다하지 않아 여러 과정에서 복합적으로 이뤄진 사고"라고 밝혔다. 

재판부에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가 빗발쳤지만 국민 법감정에 훨씬 못 미치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을 지켜본 피해자 측은 "학생 3명이 숨지고 7명도 완쾌되지 않은 상태를 고려하면 통상적 과실치사상 사건과 달리 더 엄한 처벌이 이뤄져야 했다"면서 "형이 가벼워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게 됐다"며 재판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이 사고는 가스 누출 경보기만 설치돼 있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가스 경보기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2010년부터 설치가 의무화돼 있었지만 당시 국내에는 법제화되지 않았다. 이 사고 후에야 정부 당국은 후속 조치로 펜션·민박을 포함한 숙박시설에서 가스보일러를 새로 설치할 경우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말 그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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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는 '인재에 의한 참사'였다. 학생들은 수능이 끝나고 긴 입시 터널을 지나 스트레스도 풀고 바람도 쐴 겸 친한 친구들끼리 우정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어른들의 잘못으로 추억을 쌓으려던 여행은 비극이 되고 말았다. 

함께 여행을 떠났던 친구 3명이 운명을 달리하자 생존 학생들은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오열했다. 한 학생은 퇴원 직전에 비보를 듣고 병원이 떠나갈 듯이 울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사고 치지 말라고, 다치지 말라고,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신신당부했던 부모들은 아들의 사고 소식에 억장이 무너졌다. 한 학생의 부모는 "수능시험을 마친 아들이 '엄마, 잘 다녀올게요'라고 웃으면서 집을 나섰는데,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참담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생존 학생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다수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재입원과 재활치료 등을 반복했다. 이후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생들은 몸과 마음의 상처 때문에 제대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해 휴학계를 내고 장기 재활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생존 학생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세 명의 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정신적인 후유증이 컸다. 이들은 "왜 나만 살았냐"면서 자책했는데, 그 충격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이자 상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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