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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비만과 우울증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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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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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가 먹는 약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여러 차례 임상 실험을 통해 효능과 안전성이 검증된 약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과는 달리 어떤 약이 잘 듣기는 하지만 왜 잘 듣는지는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최근 나는 정신 건강과 비만치료제 관련해서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했다. 둘 다 원인과 치료에 대해 과학이 완벽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 오명과 낙인으로 얼룩진 질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우울증과 불안증을 상담으로만 다스려 왔다. 정신질환 치료제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꺼렸다. 예를 들어,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는 뇌의 뉴런 주위에 떠다니는 세로토닌을 더 많이 남긴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왜, 어떤 원리로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왜 어떤 사람에게는 이 약이 잘 듣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지도 아직 딱히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약은 사실 불필요한 약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마음을 굳게 먹으면 약물 치료는 필요 없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2021년에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휴가 중에 공황 발작이 찾아왔고 산에서 크게 넘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당시에 헬기로 병원까지 이송됐고, 아내와 친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의사는 내게 역사가 길고 널리 사용되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인 설트랄린을 추천했다. 나는 약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내 의심은 완전히 빗나갔다. 설트랄린은 내 기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주변 사람들 대부분 내가 달라진 것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나는 더 긍정적이고 친절하며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왜 내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약물치료를 거부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사실이 아닌 것을 알지만) 약을 먹는 것이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내 불안증이 통제 불가 수준으로 악화된 정확한 메커니즘은 내가 (물론 다른 사람도) 알 수 없지만, 내 상태를 호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을 먹는 건 목발을 짚거나 지름길을 타는 것 같은, 일종의 반칙 혹은 편법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약물이 왜 어떤 사람에게는 듣고 어떤 사람에게는 잘 듣지 않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비만 치료제 신약을 두고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평생 몸무게와 씨름해 왔다. 평생 과체중이었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BMI 기준 비만으로 넘어오게 됐다. 나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건강도 괜찮은 편이지만, 몸무게 문제로 몹시 괴롭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어느 정도 자기 통제력은 물론, 식습관도 꽤 건강한 편에 속한다는 점도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다이어트란 다이어트는 모두 해봤지만, 그 어떤 것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늘 4~5kg 정도를 빼면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가 다시 슬금슬금 몸무게가 도로 늘어나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먹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 아직은 몸무게 때문에 다른 건강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문제가 생길 것을 잘 안다. 나의 아버지는 고도비만이었다. 고도비만은 삶의 질과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이 있었고, 몇 년 전 돌아가셨을 때도 그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모든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어떤 사람들이 죽도록 노력하는데도 살을 빼지 못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의지력 부족을 의심한다. 나는 역시 의사이셨던 아버지께 제발 살을 빼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몸무게를 줄이지 못하셨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를 아버지의 실패로 여겼고, 의지 부족으로 여겼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살을 빼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실망해서 정신 건강에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나는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여겼고, 이런 마음은 자기혐오와 분노로 이어졌다.

 

5주 전 나는 친구와 산책을 했다. 얼마 전 남동생이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였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적이니 그 시간을 좀 더 현명하게 써야겠다고 새삼 생각했다. 나는 주치의에게 주사형 비만치료제를 처방해 달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그 약이 현재 당뇨병 치료용으로만 승인된 약이기 때문에, 당뇨가 없는 내가 처방을 받으면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가격이 비싼 약이었지만, 나는 그 약이 나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몸무게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이 약의 효과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이제 배가 고픈 느낌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을 정도다. 음식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내 정신 건강과 성격까지도 좋아져서 식구들이 기뻐할 정도였다.

 

나는 5주간 7kg을 뺐다. 그것도 아주 쉽게. 칼로리 섭취량을 크게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덜 먹어서 살이 빠졌다고만은 볼 수 없다. 과학자를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처럼 왜 이 약이 이렇게 잘 듣는지를 나는 설명할 수 없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소수의 주변 사람에게만 내가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항우울제를 먹기 시작했을 때 느낀 기분도 비슷했다.

 

정신 질환과 비만은 그 원인이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으면서, 사회적인 낙인과 편견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하고, 비만인 사람들은 의지력이 부족하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치료 원리도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강화되고,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 역시 추가된다.

 

치료가 끝나는 시점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약을 끊으면 다시 살이 찐다”는 이유로 주사형 비만치료제에 반대하는 사려 깊은 의견도 많이 들었다. 당연한 얘기다. 어떠한 불균형을 약이 보정해 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약이 그런 효과를 내는 것이지 그 사람을 영구적으로 고쳐주는 것이 아니다.

 

전에 쓴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거의 30년간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다. 내가 먹고 있는 약에는 골수 기능이 억제될 수 있는 부작용의 가능성이 적게나마 있지만, 장점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약을 계속해서 복용할 것이다. 그러기로 결정한 건 결국 나 자신이고, 나를 포함한 다른 누구도 내가 이 약을 계속 먹어야 하니까 약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인슐린을 복용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나 갑상샘 약을 먹는 환자에게 약을 끊으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수십 년, 또는 그 이상으로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병은 수도 없이 많다.

물론 그런 병이나 장애의 원리는 좀 더 명확하게 알려져 있다. 개인이 부족하거나 잘못해서가 아니라, 과학이 대체로 밝혀낸 문제 때문에 생긴 병을 고치기 위한 약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 비만치료제가 모든 사람에게 잘 듣지는 않을 것이다. 나쁜 식습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나아가 이런 치료를 돈 내고 받을 수 있는 것이 특권이라는 점도 잘 안다.

 

우리는 이런 약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내 삶은 이 약으로 인해 크게 나아졌다. 우리가 어떤 치료법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편법을 쓴다고 여겨서도 안 된다.

 

 

https://www.nytimes.com/2023/09/09/opinion/weight-loss-antidepressants-stigma.html

 

글쓴이 직업은 의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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