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탄핵박제 김기현] 그의 아버지는 쿠데타 세력 '희생자'였다 (오마이뉴스)
▲ 6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한남동 대통령 관저앞에 온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을 비롯한 30여명 의원들이 취재진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국민의힘 의원 45명이 지난 6일 오전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모여 들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을 대표해 기자들 앞에 나선 건 김기현 의원(5선. 울산 남구을)이었다.
김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내란죄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체포영장 청구라는 초법적 행위를 시도하며 사법체계 근간을 흔들어대고 있다"라며 영장 무효를 주장했다. 법원이 이미 같은 논리로 체포영장 집행 등을 불허해달라는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이의신청을 모두 기각한 뒤인데도 물리력(경호처)을 동원해 버티겠다는 대통령을 역성든 것이다.
김 의원은 8일 <조선일보>에 "대통령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남동 집회에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판사 출신이다. 김 의원 등에게는 적법 절차에 따른 체포영장을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김기현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아 윤석열 정부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대표적 '친윤(친윤석열)' 인사로 꼽힌다. 이른바 '당대표 패싱' 논란으로 갈등을 빚던 이준석 당시 대표와 윤석열 후보 간의 회동(울산회동)을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두 사람이 이후 선거대책위 개편 문제로 다시 충돌했을 때도 중재자 역할을 했던 게 그였다.
윤 대통령은 이후 그를 유럽연합(EU) 특사로 임명하는 등 신뢰했다. 서울대 법대 1년 선배인 김 의원을 사석에선 '선배'라고 부르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 의원도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을 적극 앞세웠다. 2023년 3월 당대표 경선에 나선 그는 "대통령과 수시로 소통한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후보가 누구겠느냐"고 선전했고 친윤의 집중지원을 받아 당선됐다.
그는 내란 사흘 뒤인 12월 6일 "대통령의 계엄은 명백히 잘못된 조치"라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는 한동훈 당시 대표의 주장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필요할 때는 '집권여당의 책임' 운운하며 한 몸을 강조하고서는, 상황이 불리해지면 재빨리 손절매해버리는 것이 '한동훈식' 정치라면 저는 우리 당원 및 보수우파와 함께 단호히 배격하겠습니다."
비상계엄은 잘못한 것이지만 그에 따른 탄핵은 반대한다는 궤변이다. 지난해 12월 7일 1차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 때도 "대통령의 계엄은 분명코 잘못됐다.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 책임도 져야 한다"면서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범죄전과자(이재명)가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2차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12월 13일엔 "책임질 것은 책임지되 비굴해져서는 안 된다.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비굴한 배신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도 했다.
그런데 김 의원이 과연 '의리'와 '책임감'으로 윤 대통령 탄핵과 체포에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총선 위기론이 커지면서 주요 인사들의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론이 제기됐던 2023년 12월, 김 의원의 선택을 돌이켜 보면 그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때 당대표였던 그에게 '대표직을 유지하되 불출마하라'고 설득했다. 김 의원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대표직을 내려놓고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했다. 네덜란드 순방 중이던 윤 대통령은 격노했다.
다음은 김기현 의원의 12.3 윤석열 내란 사태 관련 주요 표결 상황이다.
12월 4일 12.3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투표에 불참했다.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했다.
12일 10일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상설특검 수사요구안 표결에 참석, 반대표를 던졌다.
12월 26일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12월 27일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했다.
[프로필]
1959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5기다.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판사 등으로 재직하다 1993년에 사직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2003년 한나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해 2004년 17대 총선 때 처음 당선됐다. 이후 같은 지역구(울산 남구을)에서 18·19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14년 6회 지방선거에 출마해 울산광역시장이 됐다. 2018년 재선 도전 실패 후 다시 총선에 나서 21·22대 국회의원으로 연달아 당선됐다.
초·재선 땐 당내 중도개혁적 위치에 있었다. 17대 땐 남경필·원희룡·정병국 등과 함께 당내 소장파 모임이었던 '새정치수요모임'에서, 18대 땐 중도 성향의 재선의원들 모임인 '통합과 실용'에서 각각 활동했다.
2007년 대선 경선 후 '친이(이명박)'로 분류됐지만 친박(친박근혜)과도 잘 지냈다. 친박이 주류가 된 19대 국회 때도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정책조정위원장, 대변인 등 모든 당의 요직을 거친 그는 앞서 서술했듯 4선 의원 때 원내대표와 당대표까지 역임했다. 참고로, 울산시장 재임 땐 언론에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이른바 '문재인 청와대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 탓에 울산시장 재선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이후 민주당과 맞서는 '투사형 정치인'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빛을 잃어가는 헌법 정신과 가치를 바로잡는데 온몸을 던지겠다."
김 의원이 21대 총선 당선 직후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2021년 4월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도 "저는 문재인 정권의 헌법 파괴, 법치 파괴 행위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와 말]
내란의 밤.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가 첫머리에 자리했다. 김기현 의원은 그날 밤 정치입문의 주된 이유 중 하나였을 본인의 부친을 떠올렸을 수 있다.
그는 2023년 5월 당대표 재임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아버지가 1960년에 경상도 도의원을 하셨는데 그때 (김 전 대통령과) 소속이 같은 당이었고 김 전 대통령과 같은 정치행보를 해 왔다"며 부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5.16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오면서 도의회가 해산되고, 정치정화법에 의해 (아버지가) 야권 인사로 분류되고 정치정화대상 인물로 지정돼 정치적 박해를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저희 아버지가 권위주의 시대 청산을 위한 반독재 운동에 앞장섰는데..."
내란에 희생된 아버지를 둔 아들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란 우두머리 체포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https://omn.kr/2bsd5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59170?sid=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