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받기로 한 적도 없고, 투자자를 일체 만나지도 않았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황당했죠. 민희진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3시간 동안 투자 관련 논의도 했고, 뉴진스를 어떻게 빼낼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눴습니다."
지난해 9월 말 민희진 전 대표와 만나 새로운 회사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금 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시했던 박정규 다보링크 회장이 텐아시아와 인터뷰 했다. 박 회장이 언론과 만나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민 전 대표와 나눴던 투자 관련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7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박정규 회장은 민 전 대표가 자신을 만난 적도 없다고 입장을 낸 이후 거짓말쟁이가 된 것을 비롯해 주가 하락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박 회장은 민 전 대표가 자신과의 만남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0억 투자 제안, 민희진도 알았다"
박회장에 따르면 전 대표의 투자 요청을 받은 것은 지난해 8월 말 쯤으로, 그룹 뉴진스 멤버 A의 큰 아버지인 B씨가 가교 역할을 했다.
"8월 말 일요일에 골프를 치고 있는데 B씨한테 전화가 왔어요. 오늘 꼭 좀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집 앞에 와서 기다리겠대요. 저녁 9시쯤 집 앞에서 만났어요.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민 전 대표에게 50억원을 투자해 달라는 겁니다. 갑자기 50억원을 투자해 달라고 하니 저는 투자는 못한다고 했어요. 리스크가 큰 데다 당장 결정할 수도 없는 문제니까. 그 다음날에 다시 만났어요. 제가 역제안을 했죠. 차라리 다보링크를 가져가는 것으로 구조를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자본시장을 활용해서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어요. 저도 이익을 보기 위한 판단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B씨가 그 자리에서 민 전 대표에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근데 민희진이 전화를 받자마자 '아버님 이야기 잘 되셨어요?'라고 묻더라고요. 알고 있었단 거죠. 민희진이 50억원 투자 제안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박 회장과 민 전 대표의 만남은 9월 30일에 성사됐다. 민 전 대표와 B씨가 박 회장 자택으로 모였다. 한 매체가 박 회장과 민희진이 투자 관련 논의를 했다며 공개한 사진은 이날 찍혔다. 박 회장에 따르면 이날 미팅의 목적은 민 전 대표에게 다보링크를 어떤 방식으로 넘길지,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논의였다.
박 회장은 민 전 대표에게 다보링크 인수를 제안했다. B씨가 전면에 나서 다보링크를 인수한 뒤, 민 전 대표에게 실질적인 경영권을 건네는 설계였다. 박 회장은 다보링크 인수를 위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설명하고, 이후 증자를 통해서 엔터 사업에 필요한 자금 마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다보링크를 민 전 대표 측에게 팔고 자신은 지분 매각으로 이익을 보는 구조다. 박 회장은 투자 리스크를 피하면서 자신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민 전 대표에게 제안했다.
◆뉴진스 빼낼 계획도 논의
박 회장과 민 전 대표는 뉴진스를 어도어로부터 빼올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박 회장은 민 전 대표가 먼저 '제가 뉴진스를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면서 "상식선에서 그 멤버들을 데리고 나오려면 먼저 버려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본인이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취하려고 하면 그걸 놔줄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민희진에게 본인이 어도어를 나오면 회사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그래야 결국엔 뉴진스를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겠냐는 조언까지 해줬다"고 설명했다.
◆박정규 회장과 민희진 전 대표는 왜 등을 돌렸나
박 회장은 3시간 대화 중 70% 이상 민 전 대표가 자기 이야기를 늘어놨다고 했다. 상당 부분은 하이브와의 갈등을 비롯해 방시혁 의장에 대한 불만 토로였다고 한다. 박 회장은 "처음 만난 사람을 앞에 두고 방 의장을 두고 '돼지XX'라고 막말을 하길래 '이 사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너무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거 아닌가. 계획했던 것은 설명했지만 잘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결과적으로 박 회장과 민 전 대표는 구체적인 투자 방식에 대한 의견이 맞지 않았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이후다. 박 회장은 이후 '투자자를 만난 적도 없다'는 민 전 대표의 발뺌이 괘씸하다는 입장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투자 업계에 알려지면서 주가가 출렁인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박 회장이 제시한 방식은 단순 투자를 받는 형태가 아닌 만큼 제안 받은 민 전 대표로서도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민희진, 투자자 접촉설 여전히 부인
본지가 박 회장을 처음 인터뷰 한 건 지난해 말이다. 박 회장을 인터뷰한 뒤 민희진 전 대표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 민 전 대표 측은 "박정규 회장이 주장하는 민희진 전 대표와 관련된 언급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며 "민 전 대표는 박정규 회장과 투자에 관련된 논의 자체를 한 적이 없고 투자를 제안한 사실도 없다"고 입장을 내놨다. 본지는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을 듣고자 박 회장을 7일 박 회장을 다시 만나 인터뷰를 추가로 진행했다. 양측이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만큼 반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다만 민 전 대표가 내놓는 입장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민 전 대표가 박 회장과 '만났다'는 명확한 사실조차 아니라고 부인하는 지점이다. 이는 법적인 책임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민 전 대표는 '투자자 접촉설'에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민 전 대표가 어도어 재임 중에 사내 이사 신분으로 외부 투자자를 만나는 자체가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 요건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임죄는 단순히 계획이 아닌 실제 실행 여부를 요건으로 삼는다. 그동안 민 전 대표가 '회사원의 불만' 정도로 자신의 '탈 하이브' 계획을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 전 대표가 박 회장을 만나 투자와 관련된 논의를 하고 뉴진스를 빼낼 방법에 대해 묻는 등의 행위 자체는 배임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 박 회장과의 대화에서 확인된 뉴진스 멤버들을 데리고 나오려 모의한 점은 템퍼링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이기도 하다.
하이브는 지난해 4월 26일 민 전 대표를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 고발했다. 수사는 아직 진행중이다. 그동안에는 민 전 대표를 하이브가 감사하는 과정서 확보된 자료가 쟁점 대상이었다. 민 전 대표측은 배임죄를 구성할 구체적 실행 증거가 없다고 맞섰다. 민 전대표가 박회장을 만나서 나눈 대화가 수사와 향후 재판에 '키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만남은 실행된 행위기 때문이다. 민 전 대표가 어도어 구성원으로서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것인지, 또 그것이 어도어에 결과적으로 손해를 끼쳤는지도 배임죄 성립 여부의 쟁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