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14년 2월말의 일이다. 대구에 살던 박기상(朴基相)이 간밤에 길몽을 꿨다. 청룡도 모자라 황룡까지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승천하는 꿈이었다. 예사로운 꿈이 아님을 직감한 박기상은 사흘 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친척 아우 박용혁(朴龍赫)에게 자신의 꿈을 팔았다. 두 사람은 1천냥에 꿈을 매매하기로 합의했다. 대금은 과거 급제 후 관직에 오르면 지급하기로 했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두 사람은 꿈을 거래하는 매매문서까지 작성했다. 합의 내용과 함께 길몽을 꾼 '몽주(夢主)' 박기상과 그 꿈을 사는 '매몽주(買夢主)' 박용혁이 날인했다. 또 친척 두 명을 별도로 불러 증인으로 참석시켰다.
#2. 1840년 2월 2일, 경북 봉화에 살던 신씨는 꿈에서 상서로운 장면을 봤다. 청룡과 황룡 두 마리가 서로 뒤엉켜있는 길몽이었다. 진주강씨 집안의 여자 하인이었던 신씨는 자신이 꾼 꿈을 집주인의 친척 동생 강만에게 팔기로 했다. 청색·홍색·백색 등 삼색실을 꿈 값으로 받기로 약조도 했다. 물론 매매문서를 작성하고 '몽주(夢主)'는 물론 증인으로 참석한 그녀의 남편 박충금(朴忠金)이 날인도 남겼다.
이는 한국국학진흥원이 8일 최초 공개한 조선시대 길몽 매매문서의 내용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과거 순천박씨 충청공파 문중과 진주강씨 법전문중이 기탁한 자료를 정리하던 중 꿈과 관련된 사료 2점을 찾아냈다. 길몽을 사고파는 내용이 담긴 문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자료라는 게 진흥원의 설명이다. 꿈을 둘러싼 해몽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다. 태아 성별과 운명을 예측하는 태몽, 횡재를 불러온다는 돼지 꿈과 대소변에 관련된 꿈 등이 있다. 그 중 용이 나오는 꿈은 사회적 지위 상승을 암시하는 길몽으로 유명하다. 고려사의 '진의매몽'과 삼국유사의 '문희매몽'도 꿈을 사고파는 '매몽 설화'의 대표적 자료로 볼 수 있다.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108010001025
당시 1000냥은 쌀 200석(약 30t)을 살 수 있었고, 요즘 돈으로 7200만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