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일까요? 목이 아프더라고요."
황동혁 감독은 지난 3년, 머리에 왕관을 짊어지고 살았다. 그만큼 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아픈 시간을 보냈다.
2024년 12월,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또 다른 왕관이 추가됐다. 역대 1위 오프닝 기록. 공개 첫 주 4억 8,760만 시간이 플레이됐다.
황동혁 감독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 작품이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반응을) 지켜봤다"고 고백했다.
그 떨리는 마음이란, 세상의 반응에 대한 것.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뜨겁지만 차갑고, 좋지만 좋지 않다. 한 마디로 호불호.
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은 '성기훈(이정재 분)은 왜 저래', '탑은 왜 썼어', '캐릭터가 왜 이리 많아' 등과 같은 비판이다.
황 감독은 "시즌2는 브릿지"라고 강조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 달라는 것. 여기에, 시즌3의 전개 방향도 살짝 언급했다.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돈 키호테의 재림
'오징어 게임2'는 성기훈(이정재 분)이 복수를 위해 다시 게임에 참가하는 이야기다. 게임을 중단시켜 또 다른 피해를 막겠다는 것.
상금 456억 원을 받고도 죽음의 게임으로 돌아간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복수에 나선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황동혁 감독은 "기훈이 많은 걸 겪지 않았나. 자신이 이렇게 된 데에는 게으름뿐 아니라 시스템이 있다는 걸 자각한 상태"라며 "어떻게 보면 돈 키호테 같다. 풍차를 괴물이라 생각하고 뛰어드는 것처럼 무모한 도전을 한다"고 설명했다.
"예전엔 혁명을 꿈꾸거나 제도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지금 이 사회에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가진 걸 지키려고만 하면서 거대한 담론은 사라졌죠. 기훈은 그런 것을 바보같이 쫓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후속작에 대한 기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그는 "시즌1은 어떠한 기대도 없이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반응이 뜨거웠던 것"이라고 자평했다.
"시즌2는 처음 쓸 때부터 (시즌1과 같은) 그런 반응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내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죠."
◆ 변질된 혁명가
기훈은 여러모로 모순적인 면모를 보인다. 겉모습만 보면 시즌1과 180도 달라졌다. 웃음기 없이 매사에 진지하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다. 오랜 시간 복수를 준비한 사람치고 빈틈이 많다. 연출자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황동혁 감독은 "기훈은 블루컬러 노동자 출신이다. 다소 부족하고 철이 없는,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선한 의지는 있다"고 언급했다.
선의로 시작했지만 좌절을 겪으며 달라진다. "목표에 집중하다가 좌절한다. 원래 선의마저 변질되어 가는, 무너져 가는 사람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변화는 7번째 에피소드인 '친구와 적'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게임을 중단시키겠다며 목숨까지 걸었으나, 한밤중 학살은 모른체한다.
기훈은 "이번이 우리가 이 게임을 완전히 끝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반란을 제안했다. 상대 진영이 공격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같이 싸우려 들지 않았다. 총을 빼앗을 '기회'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황동혁 감독은 "인호(이병헌 부)가 그걸 눈치채고 '작은 희생은 감수하자는 거냐' 묻는다. 기훈의 바뀐 모습에 돕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기훈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라고 했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반란은 실패로 끝났잖아요. 시즌3에선 달라진 기훈을 보실 겁니다.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뒤엉켜 전혀 다른 인물이 됩니다."
◆ 공유 그리고 딱지남
이번 시즌은 캐릭터들의 서사를 확장했다. 기존 인물들과 새로운 캐스트들의 사연을 추가했다. 서로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설정했다.
특히 공유가 맡은 딱지남이 극 초반 흥미를 배가시켰다.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 '코리안 조커'라는 호평이 나왔다.
황동혁 감독은 "딱지남은 분량에 비해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그래서 1화는 딱지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훈이 게임 주최 측을 찾아내기 위한 단서는 딱지남 밖에 없거든요. '왜 이런 인간이 됐을까' 다 설명 못해도 (삐뚤어진 사람이라는) 단서를 주고 싶었어요."
공유는 데뷔 이후 첫 악역임에도 압도적 존재감을 발산했다. 그는 "상상 이상의 모습이었다. 생전 처음 본 표정을 짓더라"고 감탄했다.
"딱지남이 총을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신이 있는데 공유 애드리브거든요. '이 친구가 엄청 많은 걸 숨기고 있었구나'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훈 친구 박정배(이서환 분)의 존재도 눈길을 끈다. 정배는 시즌1에서 경마 게임을 함께하는 전 직장 동료로 등장한 바 있다.
"정배는 기훈의 옛 모습을 끌어내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불침번 서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그런 정배를 잃는 게 기훈에게 되게 중요한 의미였으면 했어요."
◆ 오해와 해명
시청 시간만 보면 초대박을 이뤘다. '오징어 게임2'는 단 4일(12월 26~29일) 성적 만으로 넷플릭스 역대 톱 7(비영어권)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작품을 향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렸다. 국내에선 마약 물의를 빚은 탑의 복귀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과장된 연기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황동혁 감독이 해명했다. "탑 복귀를 도우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젊은 세대들이 겪는 마약, 코인 문제를 다루려고 했는데 본인과 놀랄 정도로 비슷한 역할이라 (오히려) 안 할 줄 알았다"고 말을 이었다.
"(시즌3에) 타노스가 들고 온 마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무너지는 내용이 나와요. 오디션에서 가능성을 보기도 했고 탑이 하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일부 해외 매체는 정체된 스토리와 창의성 부재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반자본주의 메시지 실종, 결말에 대한 불호 의견 또한 있었다.
그는 "한쪽은 자본주의 비판을 원하고 다른 쪽에선 더 재밌는 게임을 보고 싶어 하는데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시즌3까지 제대로 보여드리고 평가받으려 한다"고 밝혔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잇는 차기작도 궁금해졌다. 황동혁 감독은 지난 2022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콘텐츠 마켓에서 '노인 죽이기 클럽'(KO People Club)을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새 프로젝트는 어디까지 왔을까.
"차기작 생각은 (현재로선) 전혀 없어요. 혼자 각본 쓰고 촬영한 3년 3개월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불호 반응을 바꾸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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