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세대인 ‘MZ시민들’이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할 때 들었던 응원봉의 다양한 색과 모양들을 떠올려보자. 원래 아이돌 응원봉이라는 것은 팬덤의 이기심과 배타성의 상징과도 같다. 이 응원봉은 오직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흔들어진다. 그 외의 장소와 맥락에서는 그 어떤 의미를 갖지 못한다. 콘서트장에서 가수들의 노래에 맞추어 센터 콘솔을 통해 통제돼 시시각각 변하는 이 응원봉의 색은 철저히 독점적으로만 빛을 낸다.
하지만 《다시 만난 세계》에 맞추어 흔들리던 그 형형색색의 응원봉에는 배타성이 없다. 그 빛을 통제하는 어떤 콘솔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빛이 향하던 주인공이었던 스타들도 없다.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라는 얼핏 추상적이면서 관념적일 수 있는 어떤 가치, 팬덤의 논리와는 무관한 탄핵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 응원봉은 완전히 다른 평화적 투쟁의 도구로 재탄생된다. 그것은 촛불보다 밝고, 경쾌하며, 화려하다.
K팝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팬덤의 이기적 욕심 앞에서 그저 경쟁 혹은 질시의 대상이었던 서로 간의 응원봉은 이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목적으로 싸워봤던 역전의 용사들이 집에 간직해 왔던 가장 아끼는 무기가 돼 거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 어울림에는 오직 K팝 팬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팬과 가수를 뛰어넘는 어떤 공통된 상위의 가치를 위해 그들의 경험이 활용된다는 쾌감과 성공을 경험해본 효능감이 있다.
K팝 팬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현장에서 배워온 것들, 즉 싸움에선 이기는 것보다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와의 싸움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장기전을 위해선 긍정적이면서도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응원봉에 담아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는 그 새로운 시대의 태도를 상징하는 주제곡인 것이다.
김영대 문화 평론가는 꾸준히 아이돌산업, 예술 문화계에서 평론중인 평론가
응원봉을 들고나온 돌덬들에게 응원봉은 단순한 도구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