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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5·18 광주가 12·3 서울에게[12·3 비상계엄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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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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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의 광주에서도, 2024년의 서울에서도 이름 모를 여성들이 거리를 지켰다. 총을 들고 독재를 꾀했던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두 경험이 세월과 공간을 넘어 만났다. 경향신문은 1980년 5월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전남도청을 지켰던 취사반 김경임씨(61)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서울로, 또 탄핵 촉구 집회가 줄이었던 여의도·농민과 시민들이 하나가 된 남태령을 지킨 전연수씨(가명·25)가 1980년 광주로 보낸 편지를 받았다. 1980년 광주 금남로에 선 여성과 2024년 서울 여의도 광장, 남태령 언덕에 선 여성은 다른 시공간을 건너 말을 건네고, 안부를 묻고, 서로를 ‘우리’로 묶었다.

 

-생략-

 

5·18 광주를 지켰던 고등학생 김경임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 앞 시민궐기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앞에서 네번째줄 어깨동무를 하고 안경을 낀 여성이 김경임씨다. 당시 17살로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이창성 촬영, 5·18기념재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 앞 시민궐기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앞에서 네번째줄 어깨동무를 하고 안경을 낀 여성이 김경임씨다. 당시 17살로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이창성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서로를 믿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주세요. 도청으로 향했던 저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 김경임씨가 보낸 편지


1980년 5월 광주는 아주 혼란스러웠어요. 전남도청 앞이 ‘궐기 대회’ 등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로 매일매일 붐볐거든요.

 

저는 그때 친구와 함께 “도울 일이 있으면 돕자”며 취사반에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 음식 하는 법도 잘 몰라서 식판을 날랐어요. 식사하러 오신 시민군이 워낙 많아서 다 드시고 나면 식판 나르는 일도 일손이 부족하더라고요.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하고, 쪽잠을 자면서 지쳤지만 이상하게도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니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어느 날 취사반에서 같이 일하던 대학생 A오빠가 상무관으로 가자고 했어요. 영문도 모르고 그곳을 갔는데, 그렇게 많은 시신이 쌓여 있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관이 줄지어 있었죠. 그 옆에서 유족들이 통곡했어요. 계엄군이 죽였다고 하더군요. 그 후로 매일 아침 상무관에 들러 묵념하고 취사반에 가서 일했습니다.

 

5월26일 저녁에 A오빠가 ‘오늘은 계엄군이 들어온다고 하니 꼭 도청에서 나가야 한다, 안 나가면 다 죽는다’고 말했어요. A오빠가 쥐죽은 듯이 조용한 거리를 건넛집에 가는 길목까지 데려다줬어요. A오빠와 헤어지는데 문득 “그럼 A오빠는 도청으로 돌아가는 건가? 왜 사람들이 안 나가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나 혼자만 집으로 향할 수 없었어요.

 

다시 도청으로 돌아갔는데 도청이 폐쇄돼 있더라고요. 어쩌지 하다가 시민군 차가 들어오는 틈을 타서 몰래 들어갔습니다. 캄캄한 도청을 헤매다 A오빠를 마주쳤는데 ‘왜 들어왔냐’며 길길이 뛰더라고요. 이제 어쩔 수 없으니 급히 도청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때부터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계엄군이 총을 쏴서 유리창이 다 깨지는 소리였어요. 그 소리가 지금도 생생해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예요. 결국 저는 쳐들어온 계엄군에 붙잡혔고 유치장에 갇혔어요. 유치장에서 나온 후로 제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마냥 밝고 유쾌했는데, 더는 그럴 수 없었어요. 군인이 내가 보는 앞에서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옛날과 똑같을 수 있겠어요.

 

2024년 겨울 여의도와 남태령에 모인 여성들의 모습에서 1980년 5월 저와 제 곁의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3·1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도 알 수 있지만, 위기에는 여성들이 늘 강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광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했었어요. 2024년 광장에 나온 당신들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온 게 아닐까 짐작합니다. 1980년이나 2024년이나 민주주의를, 나라를 생각하는 소녀로서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고 판단하는 일은 변함 없을 거로 생각해요. 당신이 거리에 들고나온 반짝이는 응원봉은, 전남도청 취사반에서 제가 날랐던 식판과 같은 것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 최고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광장으로 나온 여성들에게 ‘눈치 보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용기를 갖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서요. 저는 지금도 도청으로 돌아간 제 선택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어린 것들이 뭘 아냐’고 하겠지만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여러분은 결코 어리지 않아요. 서로를 믿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치 제가 44년 전 도청으로 향했던 17살의 저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김경임씨의 구술 인터뷰를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12·3 서울, 남태령에서 밤을 새운 전연수
 

 


언젠가 만날 미래의 소녀들에게 당신과 같은 말을 건네려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가라’고.
- 전연수씨가 보낸 편지


2024년 12월21일, 친구들과 함께 간 광화문 집회에서 우리는 농담 섞인 대화에 기대 몸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자리가 끝나갈 즈음 한 친구가 “나는 남태령에 가 봐야겠다”며 깃발을 챙겼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됐고, ‘함께 가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남태령으로 향했고, 저는 그곳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춥고 어둡고 텅 빈 길을 한참 걸으니 경찰이 길을 막은 지점에 닿았습니다. 통제를 뚫고 투쟁의 공간으로 들어서던 순간, 안전하게 머무르던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려우면서도 설렜습니다. 그때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제게 늘 미지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계엄군이 이름 모를 시민을 죽였고, 시민들이 서로를 살리려고 제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어렴풋한 인식만 있었을 따름입니다. 활자로 이뤄진 역사 속 이야기에서는 현실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 선배를 따라 간 자리에서 5·18 국가 유공자분 강연을 들었습니다. 40여 년 전 과거를 생생하게 되짚는 그분 목소리를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민주화의 영웅으로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이, 실은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가진 익명의 시민들이었다는 것을요.

 

그 후 1980년 광주를 돌아볼 때면 그곳에 있었을 제 또래 여성을 상상했습니다. 남태령에서도 그랬습니다. 경찰이 세운 차벽 뒤에서 저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여성들이 한목소리로 “차 빼라”고 외쳤습니다. 사람이 불어나기 전이어서 경찰 진압이 무서웠을 텐데,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서둘러 함께해 목소리를 보태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광주의 소녀를 그렸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도 기록되지 않았을 어떤 여자아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녀는 ‘김경임’이라는 한 인간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고 깊은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세상의 모든 폭압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이들 탓에 생겨왔다고,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편지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힘을 보태려는 의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 타인을 구하러 간 용기를 읽었습니다. 오랜 시간 아픈 기억을 간직했던 고통과, 2024년의 소녀들을 향한 사랑 어린 마음을 봤습니다.

 

그 용기를 마주할 때 저는 사실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남태령의 새벽에 맨몸으로 경찰차를 막으러 가면서도, 제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는 기억하거든요. 그날 도청으로 돌아갔던 당신이, 오늘 경찰차 앞으로 가장 먼저 뛰쳐나간 제 친구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닐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제 친구는 그 부끄러움마저 품었습니다. 스스로의 비겁함을 따져 묻는 제게, 그 용감한 친구는 “그런데도 넌 여기 나왔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제게 “번쩍이는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온 것”이 최선이었을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제게 또 다른 용기와 힘을 줍니다. 제가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폭을 넓혀가고 싶어졌습니다. 사랑이 한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마음이라면, 당신이 저에게 전해 주신 것은 분명 사랑이겠지요.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자신을 의심하고 주저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을 압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넘어서 제 안의 가치를 따라 움직이면, 그 끝에 후회는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 만날 미래의 소녀들에게 당신과 같은 말을 건네려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가라’고.

 

당신께서 주신 격려와 애정이 당신께도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343812?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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