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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희망가이자 투쟁가로 변신한 《다시 만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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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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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독특한 곡이다. 일단 여성 아이돌 그룹의 곡으로는, 그것도 신인 그룹의 데뷔곡으로는 지나치게 웅장하고 심지어 어딘가 모를 비장미가 감돈다는 것부터 그렇다. 드라마틱한 키보드 인트로로 시작해 거칠게 몰아치는 기타와 드럼 사운드의 중첩까지. 오프닝에서부터 감도는 긴장감은 동시대 걸그룹들의 노래에서는 쉽게 듣기 어려웠던 종류의 무엇이었다.

이 노래 전반을 지배하는 특징적인 비장미는 음색, 멜로디, 화성 그리고 리듬이 만들어내는 묘한 미스매치를 통해 만들어진다. 앞서 언급한 대로 리듬과 편곡은 걸그룹의 음악치고는 예외적으로 강렬하며, 장조와 단조의 경계를 묘하게 오가는 화성과 멜로디 요소를 가져오고 몇 가지 재치 있는 코드 진행의 테크닉을 취함으로써 듣는 이들에게 밝음과 슬픔의 대비를 느끼게 한다.


- 비장미 더해주는 가사 내용도 한몫


노래의 가사도 흥미롭다. 전체적인 주제 의식이 희망과 만남, 그리고 사랑임에도 노래는 시종일관 슬픔, 상처, 헤맴, 거친, 벽 같은 단어들을 나열하며 노래의 비장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이 노래의 핵심적 주제 의식은 결국 희망과 환희 그리고 내일에 대한 다짐과 의지다. 그래서 노래는 처지지 않고 시종일관 질주하며, 뮤직비디오 속 소녀시대의 모습 역시 상징적인 ‘발차기’를 포함한 긍정적 에너지와 젊은 기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곡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왜 국가적 위기와 혼란의 상황에서 많은 이에게 꺼지지 않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가이자 투쟁가로 불리게 됐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이 노래에서 화자는 닥쳐온 고난과 아픈 과거의 상처를 애써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마냥 붙잡고 슬퍼하기보다는 그 슬픔을 잊고 보내버리면서 과거와의 적극적인 작별에 대한 굳은 의지를 드러낸다.
 

그것은 기적이나 어떤 외부적 조건이 아닌 나 스스로의 단단함, 그리고 변치 않는 사랑으로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와의 만남과 동행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자기혐오나 신파적인 회한이 없는, 슬픔과 아픔에도 적극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마침내 이 노래의 영어 제목인 ‘인투 더 뉴 월드(Into the New World)’처럼 새로운 세계로 향한 문을 여는 투쟁가이자 희망가인 것이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결코 비장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슬프지만 희망차고, 밝지만 나이브하지 않은,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랑’으로 묶인 너와 나의 연대다.
 

 

- 응원봉에 숨겨진 연대의 새로운 의미

《다시 만난 세계》의 메시지처럼 K팝 세대들은 연대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아이러니하게도 K팝 ‘덕질’의 근간은 늘 개인주의였다. 팬덤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건 추상적 개념일 뿐 K팝 팬은 자신을 누구에게 드러내기보다는 혼자 간직하기를 즐긴다. 낯선 사람과 쉬이 나의 팬심을 공유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이 같은 태도는 때에 따라 유동적이고 전략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어떤 큰 목표 앞에서 그 개인들은 골방을 벗어나 더 넓은 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스스럼없이 ‘팬덤’이라는 이름으로 규합하기를 망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전히 개인이며 그 성향 자체는 개인적이지만 취향으로 엮인 새로운 공동체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이기심을 내려놓고 타협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그 타협은 막연히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너지, 음악으로 치면 ‘하모니’ 혹은 ‘배음’의 미덕을 인지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연대에는 리더가 없고, 조직이 없으며, 어떤 의무나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명확한 목표와 내 역할에 대한 암묵적인 인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벌써 수십 년간 학습돼 왔다.
 

팝 세대인 ‘MZ시민들’이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할 때 들었던 응원봉의 다양한 색과 모양들을 떠올려보자. 원래 아이돌 응원봉이라는 것은 팬덤의 이기심과 배타성의 상징과도 같다. 이 응원봉은 오직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흔들어진다. 그 외의 장소와 맥락에서는 그 어떤 의미를 갖지 못한다. 콘서트장에서 가수들의 노래에 맞추어 센터 콘솔을 통해 통제돼 시시각각 변하는 이 응원봉의 색은 철저히 독점적으로만 빛을 낸다.

하지만 《다시 만난 세계》에 맞추어 흔들리던 그 형형색색의 응원봉에는 배타성이 없다. 그 빛을 통제하는 어떤 콘솔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빛이 향하던 주인공이었던 스타들도 없다.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라는 얼핏 추상적이면서 관념적일 수 있는 어떤 가치, 팬덤의 논리와는 무관한 탄핵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 응원봉은 완전히 다른 평화적 투쟁의 도구로 재탄생된다. 그것은 촛불보다 밝고, 경쾌하며, 화려하다.
 

K팝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팬덤의 이기적 욕심 앞에서 그저 경쟁 혹은 질시의 대상이었던 서로 간의 응원봉은 이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목적으로 싸워봤던 역전의 용사들이 집에 간직해 왔던 가장 아끼는 무기가 돼 거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 어울림에는 오직 K팝 팬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팬과 가수를 뛰어넘는 어떤 공통된 상위의 가치를 위해 그들의 경험이 활용된다는 쾌감과 성공을 경험해본 효능감이 있다.

K팝 팬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현장에서 배워온 것들, 즉 싸움에선 이기는 것보다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와의 싸움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장기전을 위해선 긍정적이면서도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응원봉에 담아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는 그 새로운 시대의 태도를 상징하는 주제곡인 것이다. 

8년 전 그 비장했던 촛불의 행진을 바라보면서도 똑같이 했던 말이지만, 이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가 됐다. 그 위상은 이제 더욱 확고해졌다. 그것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리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순간에. 그것은 작곡가인 켄지도, 작사가인 김정배도, 이 그룹을 기획했던 SM엔터테인먼트조차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과거 김민기가 《아침이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노래를 민중가요로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시위나 집회 현장에서 이 노래를 목 놓아 부르는 모습에 부담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적 민중가요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대중음악의 의미는 역사적 맥락을 통해 늘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2025년 현재, 소녀시대는 K팝 역사의 명곡이 아니라 연대와, 사랑과, 그리고 굴하지 않는 의지의 표상이 됐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2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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