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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참사를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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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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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나는 수습기자였다. 4월16일, 나는 경찰팀 선배들과 함께 회사 차를 타고 진도로 향했다. 그날 진도체육관의 학부모들은 생존자 이름을 적은 명단 앞에서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오열과 고성, 그마저 지를 힘도 없이 쓰러진 사람들과 부축하는 가족들… 그 한복판에 내던져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메신저로는 선배의 취재 지시가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진도에서 8일째가 되던 날 나의 임무는 실종자 가족의 사연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전원 생존'이라는 최악의 오보로 국내 언론 기자들이 기레기 소리를 듣던 때였다. 나는 죄책감과 죄송함과 부채감에 온몸이 얼어붙었고, 가족들이 이불을 펴고 앉은 체육관 한복판으로 발을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외신 기자들이 가족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한 마디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앞에 보이는 어머님 앞에 철퍼덕 무릎을 꿇었다. "한 말씀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무슨 얘길… 해줄까요." 그렇게 물 속에 있을 아들을 기다리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신이라도 찾은 이웃이 부럽더라는, 자신도 모르는 새 포기하는 현실이 싫다는 말씀을 들었다. 

간혹 기자랍시고 이건 내가 '응당' 알아야겠다는 듯 덤벼드는 이들을 본다. 그러나 '응당'은 없다. 특히나 참사 현장에서는 더욱 더. 기사를 쓰는 것은 당신의 일일지언정 피해자나 유가족의 일은 아닐뿐더러, 기자의 일이 피해 당사자의 일을 우선할 수는 없다. 그런 류의 침투력이 부패한 권력을 향할 때는 의미가 있겠으나, 피해 가족들을 앞에 두고서는 철저히 버려야 할 태도다. 


그런 상황에 내가 자주 떠올렸던 말은 '내가 뭐라고'다. 다른 말로는 '네 주제를 알라' 정도가 될 것이다. 사실 상습적으로 '주제를 넘어' 남의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는 게 기자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주제를 넘는 내가 있다'는 자각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선은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아들 얘기를 털어놓은 어머님은 '내가 뭐라고' 본인 마음도 추스르기 어려웠을 당시 내 질문에 답하셨을까. 아마도 체육관을 헤매던 어린 기자를 향한 측은지심으로, 아주 작은 '틈입'을 허락하셨을 거다. 그 어머님의 말과 아들의 사연을 옮기는 일의 무거움은, 그렇게 체감이 된다. 기사가 왜곡될 것을 걱정한 어머님께, 나는 송고 전 기사를 보여드렸다. "내가 안 한 말은 없네요." 그 담백한 말이, 더 없이 위안이 됐다. 

'내가 뭐라고'에 하나 더 덧붙일 말이 있다면 '먼저 울지마'다. 내가 뭐라고 당사자보다 먼저 비감에 젖을 것인가. 기자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묻기에 앞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상황의 참담함 때문이기도 하고 이 와중에 질문을 던지는 나라서 죄송한 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먼저 우는 일은 심각하게 주제를 망각하는 일이기에 최대한 눈물샘을 붙들어 맨다. 이 두 가지 말을 주문처럼 머리로 굴려보는 일은 더러 나와 내 기사, 내 취재원을 지키는 일이 됐다. 

제주항공 7C 2216편 참사에서도 유가족 인터뷰와 탑승자 사연 기사가 쏟아진다. 그것들이 황망한 처지의 유가족들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무리한 취재의 결과물이 아니었길 바란다. 그리고 적어도 이들 기사 제목 앞에 '단독'은 안 붙였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의 사연을 먼저 알았다며 붙이는 '단독'이라는 이름의 호승심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현장에서 내보일 만한 감정은 아니다. 더불어 '동아일보에 따르면',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 마디에 남의 기사를 적절히 편집해 가져오는 '따르면 기사'도, 최소한 사연 기사에서만큼은 없어져야 한다. 그것은 직접 유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이는 알 수 없을 뉘앙스를 삭제하는 일이기도 하고, 어렵사리 가족들 사연을 들었을 업계 동료의 노고를 앗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참사의 와중에도 페이지뷰 경쟁에 심취하는 것이야말로, 참사를 무참히 소비하는 일이다. 

탑승자 명단을 게재한 조선일보, 사고 주체인 '제주항공'이 아닌 '무안공항'으로 참사에 이름 붙여 본질을 흐린 언론들, 생존한 남성 승무원은 심플하게 '이모씨'로 호명하면서 여성 승무원에게는 '여성'자를 붙여 남성이 세계의 기본값 인양 다룬 언론까지… 이번 참사에서도 언론은 전에 하던 잘못들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전선에서 취재 윤리를 넘어서는 사람됨을 고심하는 기자들도 있다. 

<[취재현장] 참사를 수단으로 삼지 않는 예의>(2024년 12월30일)를 쓴 김유진 매일신문 기자도 그같은 이들 중 하나다. 김 기자는 기사에 '질문을 받는 유가족이 남이 아닌 내 가족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입이 더욱 무거워졌다'고 썼다. 바로 그 '남이 아닌 나의 일'이라는 실감을 전하고 수용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기 위해서, 기자들은 유가족을 인터뷰한다. 당연히 독자들과 공명하기 이전에, 바로 눈앞에 있는 이와 공명하는 것이 먼저다. 

계엄과 탄핵, 대참사에 이르기까지 오늘도 최전선에서 많은 기자들이 고생하고 있을 것을 알기에 말을 얹는 것이 조심스럽다. 또 한 명의 노동자인 그들도, 부디 몸과 마음을 지켜가며 일하고 있기를 빈다. 데스크들도 무리한 사연 취재는 시키지 않기를, 그 힘을 아껴 '원인 규명'에 더욱 집중하기를 바란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6/0000127887?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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