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이 부족한 배우가 분량이 많으면 가장 고통스러운 건 관객들과 시청자다. 그 사태가 '오징어게임' 시즌2에서 벌어졌다.
지난 26일 오후 글로벌 시청자들이 기다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2'가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됐다.
기획, 제작, 캐스팅 단계 등 모든 과정이 엄청난 관심을 받았기에 결과물도 이목이 집중됐고, 오픈된 지 하루 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콘텐츠로 우뚝 섰다. 온라인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게임2'는 27일 기준으로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톱(TOP) 10에서 1위를 차지했다.
공개 3일 째도 화제성은 대단했다. 30일,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글로벌 TOP 10 1위(미국, 프랑스, 멕시코, 영국, 홍콩, 터키 등 총 93개국 전 세계 차트 1위)를 기록하며, 모든 국가에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숫자와 작품에 대한 평가는 별개다. 시즌1과 비교해 더욱 극명한 호불호가 나뉜 가운데, "실망스럽다" "전편보다 못하다" "후속편으로 괜찮다" 등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배우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안정적으로 소화했으나, 캐스팅 때부터 논란을 일으킨 탑(본명 최승현)이 찬물을 끼얹는 '발연기'를 펼쳐 혹평이 쏟아지는 중이다.
탑은 한때 래퍼로 잘 나갔지만, 유튜버 이명기(임시완 분)가 추천한 코인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 퇴물 래퍼 타노스를 연기했다. 코인으로 생긴 빚으로 인해 게임에 참가하고, 합성 마약을 몰래 반입해 목걸이에 숨겨놓고 복용하는 인물이다. 실제 2016년 대마초를 흡입해 유죄를 선고받은 탑의 본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설정이다. 캐릭터만 보면 드라마가 아닌 다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타노스는 '돌+아이' 기질이 넘치고, 목숨을 걸고 하는 게임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매번 도파민이 폭발한다. 선역과 악역 중 굳이 따지면 빌런에 가까운데, 시즌1의 덕수와는 다르다. 개인주의를 고집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잔혹한 면도 있다. 여기에 허세가 영혼까지 지배해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에도 스타 놀이를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다양성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이기에 그만큼 잘 표현하기 위해선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연예계 은퇴성 발언을 남기고 은근슬쩍 돌아오더니, 9년 만에 복귀한 탑의 연기는 빈틈이 많다. 랩을 일상 언어처럼 내뱉는 타노스의 영어 대사들과 허세에 찌든 래퍼 연기는 오글거리기 짝이 없다. 캐릭터 자체가 오글거리는데, 배우 스스로 오글거림을 극복하지 못한 채 연기하는 듯하다. 그러니 보는 사람들의 손발은 어떻겠나.
제아무리 연기력 평가가 주관적이라곤 하지만, "타노스에 어울리는 배우가 탑이 온리원이었나?"를 생각하면 의구심이 커진다.
탑의 캐스팅 논란이 불거졌을 때 황동혁 감독은 그를 선택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그만큼 검증도 많이 했다. 강한 본인의 의지도 보여줬고, 오디션을 봐야겠다 싶어서 '오디션을 보자, 테이프로 보내라'고 얘기했다"며 "본인이 열심히 해서 연기 영상도 보내주고, 리딩을 하면서 불안한 부분이 있었을 때 다시 한번 검증해서 많은 노력과 재능을 보여줬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배우를 하던 최승현을 되게 눈여겨봤다"며 예전부터 호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황동혁 감독은 "항간에 '어떤 캐릭터다'라고 소문이 났는데, 최승현 배우가 역할을 하는 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배우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논란이 됐지만 번복하거나 하기에는 내 스스로 많은 과정을 그 배우와 지내왔기 때문에 '이 작품을 왜 이 배우와 해야 했는지 결과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철회하지 않고 진행했다. 많이 궁금하고, 왜 내가 최승현을 고집했는지 이해를 못 하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만의 과정이 있었음을 밝혀드린다"고 털어놨다.
해외 시청자들은 자국어가 아니다 보니 대사 전달력이나 말투, 감정선 등을 한층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어 하나에도 미묘한 뜻을 알아채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국내 시청자들에겐 탑의 연기가 어설퍼 보일 수밖에.
황동혁 감독은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다고 단언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연기력이 아닌 '실제 마약을 했던 래퍼가 필요했던 것인가?'라는 궁금증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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