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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한국 영화의 저력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 중국 영화 인플루언서의 투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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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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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도약과 성과를 자유체제와 검열자유로 요약하는 것은 왜 부적절한가

 

'서울의 봄'이 방영된 이후 많은 국내(중국)팬들은 감탄하면서 "한국 영화인들은 정말 과감하다" "한국은 역사를 직시한다" "한국인은 반성할 줄 안다" 라는 식의 상투적인 토론과 논의가 이어졌다. 한국 영화와 한국 문화, 한류가 어떻게, 왜, 전세계로 돌파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우리는 항상 "한국에는 검열과 규제가 없다"라고 답한다.

 

중국인들은 창작에 틀에 박힌 제한이 없어야 영상문화 산업이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정확하고 적절치 못한 것은 지난 수십년 간 한류의 부상이 한국 정부에 의해 추진된 결과라는 인식의 오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 질문도 주중한국문화원에서 어느 강의를 듣고 나서야 알아차린 적이 있다. 강의에 참석한 한국 교수님은 "한국영화의 전환과 성장에 대해 인터넷에서 중국 팬들은 '검열 개방'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 성공 원인을 파악하고 싶어한다" 라며 

 

"한국영화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나라(한국)의 검열 제도가 폐지되기 그런 추세는 훨씬 전부터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는 당시 한국 민간 사회 각계 인사들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연대하여 권력자들이 한사코 묶어둘 수 없는 막강한 "시민의 힘"을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류의 도약을 진정으로 도왔던 것은 검열/개방이 아니라 "개방"이다.

 

한국영화의 기세는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 앞서 이승만 · 박정희 군정 시기, 나아가 일제 식민시대까지 한국영화는 여러 나라의 영화문화산업이 경험했듯, 한국영화는 이데올로기와 위정자의 생각에 따라 움직였다. 80년대 이전, 한국의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는 모두 전통 사회 하의 풍습과 구속을 매우 중요시하며, 강렬한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영화 속 이미지는 "보수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의 미덕"의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 전통적인 아버지의 이미지가 칭송되는 작품이 널리 성행하고, 코미디 영화는 시장의 강렬한 욕구가 되는 유형이 되었다. 혼외정사, 섹스, 에로 영화 등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제재 유형은 모두 범접할 수 없는 금기로 간주된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같은 작품은 천편일률적으로 북쪽의 북한 군인들의 잔혹함과 가증스러움을 강조하고 남쪽 병사들의 존경과 정당성을 부각시켜 너나 할 것 없이 적대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한국영화가 관례에 집착한 것은 위정자의 요구에 따라 민족정체성을 얻을 수 있는 홍보 기능을 부여한 것이었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데올로기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해서 삶과 영화 속의 인물을 흑백랜즈로 보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한국영화의 전환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검열은 위정자가 바뀌면서 규제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대중의 일상 생활은 물론, 영화 속 스토리텔링에서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욕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인간과 인문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따라서 정치적 압력이 항상 존재하더라도 문화계에서는 호불호의 이분법이 절대적이지 않고, 부정과 불륜은 표현되거나 공감될 수 있으며, 사회적 변두리에 대한 연민어린 묘사와 같이, 이전과는 다른 개방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임권택 등 자국 감독들이 금기시되는 주제와 전통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을 때, 사회가 더 이상 그들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인정해 주고자 할 때, 설령 결과가 엇갈리더라도 공론장에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토론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의 발상의 전환은 당시 한국 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권력자들도 보기 드물게 물러서기 시작했다. 매일 외출할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돌을 맞는 것을 원치 않는 전두환은 주변 사람들에게 포르노와 심야영화를 장려하고 주의를 분산시키라고 말한다. 1993년 김영삼 같은 민간 출신 대통령이 등장해 군인정치를 종식시키고, 5년 뒤 DJ가 내건 '지원하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정치권은 비로소 민간의 보조를 따라 검열의 마지막 굴레를 벗었다.

 

그래서 한국 영화의 약진은 검열 폐지로만 귀결될 뿐, 본의 아니게 "어쨋든 정부가 주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발상의 전환을 겪은 민간의 힘이 제도를 바꾸게 했고, 검열이 폐지된 뒤에도 한국 영화의 수혜를 계속 보게 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주제와 내용을 더 많은 영화들이 인문학적 배려의 시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많은 고전적 한국에서의 남북관계의 풍부한 묘사다.

 

강의에서 그 교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남북 관계는 한반도 전체의 이데올로기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문화계가 이데올로기적 창작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남북 관계에도 민감한 이슈와 도전적 통념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 이데올로기보다 사람을 더 믿는다는 것은, 아무리 남북 간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한다고 해도 개인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액션 쉬리는 가장 먼저 도전한 영화였다. 이 첩보영화에서 남북관계의 씁쓸함과 처절한 연인 관계로 그려진다. 김윤진이 연기한 북한 공작원은 남한 정보부에 침투해 한석규가 연기한 남한 공작원에게 정보를 빼돌리다가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첩자 신분이 정보국에 적발되면서 대한민국 특수요원인 그가 직접 나서 연인을 사살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이전이라면 스파이가 사살되고 적의 음모가 산산조각이 난 뒤 대한민국 특공대원들이 승리의 개선가를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겪던 1999년, 쉬리는 애인을 사살한 뒤 특수요원이던 그가 웃지도, 갈채도 없이 홀로 떠나고, 애인인 김윤진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을 듣는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인간에 대한 공감대가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압도했기 때문에 쉬리의 마지막은 남북 분단이 초래한 개인적 비극적 경험이다. 이 영화가 개봉 후 한국 영화사 흥행 기록을 깬 것은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지 않고, 사회적 사조가 1980년대 이전의 모습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로부터 1년 뒤 박찬욱이 똑같이 흥행기록을 세운 '공동경비구역'에서 관객들은 38선 양쪽의 남북 병사들이 만나 팽팽한 대치 국면이 아니라 웃고 떠드는 절친한 친구가 되고, 결국 죽음으로 맞서 이 우정을 산산조각 내려는 참혹한 정치 현실을 보게 된다.

 

2003년 영화 '실미도'는 1960년대 현실적 사건을 소재로 대한민국 국군에 끌려가 무자비한 군사특훈을 받은 사형수 31명이 평양에 잠입해 청와대의 정치보복 목적의 암살을 자행한 사회 더욱 수용하기 어려운 집단을 건드렸다. 보통 사형수는 동정받지 않는 신분이지만 이 영화는 결국 청와대로 달려가 자신들의 바람을 청원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포탄이 아닌 동포의 총부리에 참혹하게 사살되는 생생한 모습으로 끝난다.

 

사형수들까지 비난할 수 있다면 형제끼리 왜 서로 죽이려 하겠는가.

 

2004년 강제규 감독의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남북관계를 장동건과 원빈이 연기한 친형제로, 이 전쟁이 남북 이념과 달라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현실을 한 축으로 묘사했다. 이런 현실은 50여 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한국인과 가족을 힘들게 했다. 북측의 만행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고, 어떻게 남측의 이승만 대통령이 빨갱이들을 청소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을 청소하는 보도연맹 사건을 주제로, 맨 손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매장시켰는지 돌아보게 된다.

 

불과 3개월여 만에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작품 최초로 천만 관객을 넘겼다. 한국 대중과 창작자 모두가 역사를 기피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거나, 현실적 사건이 거론되지 못할 우려가 있을 때, 판타지나 공상 같은 소재가 한국에서도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 2005년 영화 '웰컴 투 동막골'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설치됐지만 상상과 낭만이 가득한 가공의 세계를 담아낸 이 마을은 신하균이 연기한 한국병사, 정재영이 연기한 북한병사, 그리고 미국 병사로 구성된 이상한 연맹의 보호를 받으며 순박하고 선량한 마을 사람들을 전쟁으로부터 보호했다.

 

이렇게 한국 영화계의 생각이 열린 후에도 한국 영화인들의 창작 행보는 경제와 예술이라는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2006년 '한반도' 등 남북관계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했을 때 영화인들과 제작사들은 이런 장르의 흡인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최근 영화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문화계도 어떻게 하면 산업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이명박과 박근혜, 또는 지금의 윤석열라는 보수파 인사들이 등장해 한국 관객들도 영화를 보기 싫어지기 시작했으니, 한국 영화인과 제작사도 이런 작품을 그만두고 198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나 발언은 일체 없었다.

 

 

정치적 분위기가 영구적으로 느슨하게 개방되기는 어렵다. 심지어 규제는 개선돼도 과거로 다시 역행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열린 사상은 다시 보수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한국 영화인들은 정치, 스트리밍과 OTT의 부상, 코로나19 사태 등 일련의 영향과 충격에도 불구하고, 

 

창작 방식을 과거로 되돌리거나 '서울의 봄' 같은 작품을 만들지 말고 정치적 · 재정적 지원을 받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 관객들이 영화처럼 문화 창작에 여전히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검열을 폐지했지만 1980년대 이전의 보수적 이념에 변함이 없다면,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과감한 사고와 관찰이 가능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 지금과 같은 세계적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한국 관객들이 미개했다면 이런 흐름이 지속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쉬리를 보고나서 남파 간첩들을 홍보하는 영화라며 비합리적 의혹을 제기하고, 

강제규 같은 예술인들이 북한의 돈을 받았다고 고발하고, 문화계를 단속하라고 청원했을 것이다.

 

또, '살인의 추억'을 보고나서 "저 못된 놈이 제대로 된 정신 교육을 받지 못해 이런 영화를 찍어 오히려 치안을 악화시키고 정부를 비난한다"고 비난했을 것이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은 한국 사회의 그늘진 이면을 팔아 서방 영화계에게 잘 보이려 한다며 비난했을 것이다.

 

'동막골'은 '날조'라는 꼬리표를 달고 하차해야 했을 것이다.

 

'변호인'을 찍은 송강호를 단속해달라며 박근혜에게 청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는 실제로 그랬다.

 

 

 

한국영화는 좋은 규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열린 마인드에 의존해 왔다. 사회 전반에 깔린 열린 사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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