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12·3 비상계엄’. 6시간 만인 이튿날 4일 새벽 비상계엄이 공식 해제될 때까지 대한민국은 경악과 충격, 분노가 교차한 밤을 보내야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윤곽과 실체가 점차 드러나는 가운데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계엄군 지휘관으로 출동했거나 계엄을 모의한 이들 대부분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육사 출신이 주도해 권력을 장악했던 것처럼 이번 12·3 비상계엄에도 육사 출신이 전면에 있었다는 것이다.
군에 따르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관여한 주요 인원은 대부분 육사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1982년 임관한 육사 38기이고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46기다. 합동참모본부는 계엄 관련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 내 계엄과가 있어 계엄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패싱된 탓에 육사 출신 박 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낙점했다.
국회에 병력을 보낸 육군 특수전사령부는 곽종근 사령관은 박 총장 1년 후배인 47기, 이상현 1공수여단장이 50기, 김정근 3공수여단장이 52기, 안무성 9공수여단장이 53기,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이 56기로 모두 육사 졸업생이다.
수도방위사령부 역시 이진우 사령관이 48기이며 계엄 출동 부대 중 군사경찰단의 김창학 단장은 54기다. 국군방첩사령부의 경우 여인형 사령관이 육사 48기며, 그는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정성우 1처장도 육사 53기다.
계엄 주축 세력 중 하나로 꼽히는 국군정보사령부는 문상호 사령관이 50기다. 롯데리아 회동과 계엄 당일 판교 100여단 대회의실 배석 멤버로 꼽히는 정보사의 김봉규 대령은 49기, 정성욱 대령은 52기다.
현역 군인이 아님에도 국방부 장관 공관과 100여단 사무실 등 주요 공간을 드나들며 계엄을 기획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또한 육사 41기다.
이처럼 국방부 장관부터 대령급에 이르기까지 가담한 대부분 인원이 육사 출신이어서 엘리트 군인 양성 기관이어야 할 육사의 취지가 이번 비상계엄으로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12·12 군사반란 이어 실패한 친위쿠데타로서 내란으로 규정되는 12·3 비상계엄까지 육사 출신 고급 장교들이 잇따라 가담하고 주도하면서 육군사관학교 폐지 내지는 사관학교 통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또다시 빗발치고 있다.
육사 공식 페이스북 역시 “대한민국 내란 정예장교 양성의 요람” “육사는 생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나. 계엄 주역이 모두 육사 출신이다”, “폐교하라”와 같은 공격성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내연녀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국군사이버작전사령부 소속 중령(진) 양광준씨가 육사(65기) 출신이라며 한 네티즌이 엑스(X)에 “지난 10월 북한강 살인 사건도 육사 출신 양광준이 저질렀다. 두 달 동안 가장 많은 범죄자를 양산해낸 곳이 육사”라고 적은 글은 조회 수가 31만 회가 넘었다. 이에 육사가 범죄자 집단이라며 동조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육사 내부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사회적 비판이 커지면서 육사 생도 사이에서는 “(김 전 장관 등이) 육사 명예를 무너뜨렸다”, “육사가 엘리트 군인 양성 기관이라는 자부심이 망가지고 있다”, “육사 출신 선배들 때문에 왜 욕을 먹어야 하느냐” 등의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육사 출신 장교들도 우려하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한 위관급 장교는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아야 할 군인들이 정치적 선동자가 돼 군인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했다”고 말했다. 또 따른 영관근 장교는 “존경하던 선배들이 비상계엄을 주도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육사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지면서 육사 출신 장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일부 육사 기수는 SNS 단체대화방을 폐쇄하고 외부 접촉을 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입시계에선 최근 하락세인 육사 선호도와 맞물려 내년 지원자 수가 더욱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육사 입학처에 따르면 올해 7월 진행된 1차 시험 경쟁률은 29.8대 1로, 2020년 44.1대 1보다 낮아졌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하락세인 육사 선호도에 최근 계엄 사태가 불을 붙이는 될 것으로 보인다”며 “육사 마니아층 지원자이 내년에는 크게 이탈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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