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동의 5분] 시민기자 겸 기초의원이 겪은 '12.3 비상계엄'
계엄령 포고
지난 3일 본의원은 밤늦게까지 의회에 남아 다음날 있을 구정질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구의회의 구정질문이란 국회의 대정부질문과 비슷한 것으로 구청장을 앞에 세워놓고 구정 전반에 대해 의원이 질문하고 구청장이 답변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구청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무원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자리인만큼 구정질문은 구의원 정치활동의 꽃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1년 동안 모았던 자료들을 분석하고 원고를 써 내려가던 그때, 갑자기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지금 뉴스 속보를 봤냐고,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잉?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인가. 당황하며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아내의 말 그대로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어이 설마 했던 계엄을 선포한 것입니다.
순간 멍했습니다. 우선 이것이 현실인가를 의심했습니다. 혹시 당의 지침이 있을까 지역위원회에 전화를 하니 국회의원은 모두 국회로 소집되었고, 기초의원에 대한 지시는 없으니 대기하라고만 했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머릿속은 사소한 걱정으로 더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이 구정질문을 내일까지 준비해야 되는 걸까? 내일 구의회가 과연 열릴 수는 있을까?
그러나 이런 고민도 잠시. 본의원의 쓸데없는 걱정을 한 방에 정리해준 것은 곧이어 발표된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제1호의 1항과 2항이었습니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가자 국회로!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국가는, 아니 윤석열은 계엄을 통해 현재 본의원이 하고 있던 모든 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기초의원으로서 지방의회에서 하던 정치활동은 물론이고, <오마이뉴스>를 통해 밝혔던 내 의견을 모두 가짜뉴스로, 여론조작으로, 허위선동으로 몰고 갈 판이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포고령 말미에 적힌 '처단'이란 단어가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윤석열이 계엄령 발표를 하면서 또렷하게 지목했던 '반국가세력'이 바로 내가 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열이 굳이 포고령에 지방의회까지 적시한 것은 결국 모든 민주당 의원들을 잡아들이겠다는 뜻 아니었겠습니까. 게다가 기사까지 작성하는 본의원이라면.
당장 집으로 달려가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국회의사당 행 택시를 예약했습니다. 처음 계엄을 접하고서는 '그럼 내일 학교는 가?'라고 했던 아이들은 아빠의 다급하고 급박한 모습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부모랑 함께 봤던 영화 <서울의 봄>을 떠올리며 진짜 큰일 날 수도 있냐며 아빠에게 위치 추적 앱을 꼭 설치하라고 보챘습니다.
택시 안 올림픽대로 위에서 국회의 비상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윤석열은 곧바로 해제 선포를 하지 않고 있었고, 경험 상 해뜨기 직전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2차 계엄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본의원은 국회 앞에서 새벽 6시까지 많은 시민들과 함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행히 철수한 군대는 돌아오지 않았고, 경찰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시민들에 대한 해산을 포기하고 한 발치 물러났습니다. 이윽고 동이 텄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강동구의회에서는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본회의를 하루 뒤로 미룬다고 연락이 왔고, 본의원은 구정질문 준비할 시간을 다시 하루 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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