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의 회사채 발행액이 2년 만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당장 내년 상반기에 조(兆) 단위 빚을 갚아야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하는 중이다. 특히 회사채를 사 갈 기관투자가의 투자 여력이 제한된 탓에 향후 대기업까지 차환 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국민일보가 국내 한 증권사로부터 받은 최근 3년 기업별 회사채 발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대 그룹의 회사채 규모는 지난 22일 기준 39조6700억원으로 1년 전(31조2800억원)보다 26.8% 증가했다. 2022년(20조9900억원)에 비해서는 90% 급증했다.
10대 그룹 중 회사채를 가장 많이 발행한 곳은 SK그룹이었다. SK의 올해 발행 규모는 12조1500억원으로 국내 기업 전체 회사채 발행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에 이른다. SK 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병 추진을 위해 SK E&S와 지주사 SK㈜가 발행한 회사채 영향이 컸다. 지배구조 개편과 투자 등으로 자금 부담이 커진 한화그룹도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5조7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어 롯데(4조3100억원) LG(4조2700억원) 신세계(2조9600억원) 삼성(2조6300억원) HD현대(2조420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기업이 내년 갚아야 할 빚도 만만치 않다. SK는 내년 상반기에만 회사채 차환 물량이 6조2500억원에 이른다. 롯데(4조2700억원) LG(3조1800억원) 삼성(2조7500억원) 등 주요 그룹 역시 수조원을 조달해야 한다.
통상 기업들은 만기 회사채를 신규 회사채를 찍는 차환 발행으로 해결하지만 금리 상승 추세 여파로 내년에는 물량 소화가 여의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일고 있다. 지난 24일 국고채 3년물과 AA-등급 회사채 3년물 간 금리 스프레드(금리차)는 0.682% 포인트로 지난달 29일 대비 23bp(1bp=0.01% 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지난 2월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스프레드가 확대됐다는 것은 회사채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는 의미다. 롯데케미칼 기한이익상실(EOD) 이슈로 자금시장 불안감이 커진 데다 업황 부진에 시달리는 석유화학, 이차전지 등 업종의 신용 리스크가 불거진 영향이다.
기업 자금 수요를 채워줄 금융사의 채권 투자 여력도 제한적이다. 자금 공급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지주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국제경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금융지주 자기자본비율은 낮아지고 그만큼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 실제로 대형 금융지주들은 최근 각 계열사에 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투자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량 대기업 채권 등 신용등급이 높은 채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내년에는 대기업, 금융사 할 것 없이 실탄(현금) 확보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5203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