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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W코리아] K팝부터 영화까지, 2024년 총정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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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6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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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요 TOP 10 

<더블유>가 묻고, 음악을 향한 애정과 예리한 시선을 가진 세 평론가가 답했다.


01. 올해의 프로듀서로는 누구를 꼽겠나?

김영대(대중음악 평론가)
뎀 조인츠(Dem Jointz). 사실상 지난 10년 가까이 K팝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하나였던 그가 에스파 ‘Supernova’를 통해 또 한 번 최고임을 입증했다. 심플하면서도 괴팍한, 특유의 비트 메이킹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성은 비슷비슷한 음악이 양산되는 K팝 신 안에서도 확실히 차별화되는 음악의 ‘장’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산얀. K팝을 대표하는 그룹 BTS의 리더와 한국에서 가장 대안적으로 움직이는 음악가들의 조합, 그 결과 올해 RM의 정규 2집 <Right Place, Wrong Person>이 나왔다. 얼핏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이 묘한 주문을 이토록 설득력 높게 풀어내는 데는 얼터너티브 K팝 그룹 바밍타이거 소속 프로듀서 산얀의 공이 컸다. K팝의 ‘다음’을 설레는 마음으로 꿈꾸게 한 영민한 이끎이었다.


임희윤(대중음악 평론가) 
SM 이성수 CAO. ‘시대유감(時代遺憾)’(1월), ‘Supernova’와 ‘Armageddon’, ‘Whiplash’(10월)를 통한 에스파의 굳히기, ‘Love 119’(1월), ‘Siren’(4월), ‘Boom Boom Bass’(6월)를 통한 라이즈의 음악적 자리매김. 그리고 에스파 세계관으로부터 극적으로 데뷔한 AI 아이돌 나이비스, R&B 서브 레이블 ‘크루셜라이즈’의 신인 민지운의 데뷔까지. SM의 2024 ‘열일’의 뒤에는 수많은 A&R이, 그리고 그 뒤에는 A&R 총괄 이성수가 있었다. SM이 일찍이 선구한 ‘인터내셔널 A&R 시스템’은 이제 K팝 시장에서 둥글게 보편화됐다고 믿었다. 미분된 원의 테두리에서 뾰족한 꼭짓점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려워졌고, 그 어려운 일을 누군가는 해냈다.



02. 올해의 가장 영리한 소속사 혹은 뮤지션은?

김영대 
어도어. 2023년의 MVP였던 뉴진스는 올해 역시 실로 독보적 존재감을 떨쳤다. 뉴진스의 대단한 점은 데뷔 때부터 구축한 전체적인 이미지나 미감의 결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도 매번 새로운 음악 장르를 들고나와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민희진이 주도하는 어도어의 기획 능력은 매 순간이 놀라웠고, 이 모든 것이 K팝 사상 유례가 없는 모회사와의 갈등 과정에서 일어났다.


김윤하
로제. 고유의 아이덴티티에서 챌린지 친화적 면모까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은 똘똘한 한 곡 ‘APT.’의 본령은 올해 12월 발표될 첫 정규앨범 의 홍보였다.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최고로 높이며 선공개 곡의 맡은 바 임무를 다했음은 물론 한국인의 전통 음료 ‘소맥’을 마는 로제와 건배를 외치는 브루노 마스까지 남겼으니, 목표 초과 달성도 유분수다.


임희윤
SM엔터테인먼트. 1번 질문에서 거의 답해버렸다. 에스파의 ‘쇠맛’ 공식을 대중화해 급기야는 ‘Whiplash’처럼 마니악한 곡까지도 히트곡 선상에 올렸다. 새로운 스타일의 청량돌 공식을 만들어낸 라이즈도 있다. 지난해 인수전의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혼탁한 모래 폭풍 속에서도 쾌청한 시야를 열어젖혔다. 음악으로, 이미지로.


03. 신예 K팝 그룹 중 한 팀의 매니저가 될 수 있다면, 어떤 방향과 전략으로 나아가고 싶은가?

김영대
베이비몬스터. YG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2NE1과 블랙핑크에서 얻은 노하우를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심지어 K팝도 레트로의 시대가 된 마당에 YG K팝 특유의 올드스쿨한 감성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조금 더 모던한 접근으로 업데이트하면 어떨까. 확실한 건 재능들은 역대급이라 부를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윤하
영파씨. 등장과 동시에 ‘국힙의 딸들’ 자리에 오른 독보적 존재감을 길이 보전하고 싶다. 붐뱁에서 지-훵크(G-Funk)까지 골고루 거치며 성장한 데뷔 1년의 기를 이어받아 힙합을 비롯한 흑인 음악의 다양한 지형도를 하나씩 짚어가는 그룹으로 성장시켜보는 건 어떨까. <투나잇 쇼>보다는 <소울 트레인>이, ‘코첼라’보다는 ‘축제의 여름(Summer of Soul)’이 어울리는 그런 그룹으로.

임희윤
트리플에스. 24인조 다국적 아이돌 그룹인 이들과 유닛을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고 배가 산으로 갈 확률도 무궁무진하다. 24절기 세계관을 제안한다. 멤버들의 출신지인 동아시아, 또는 동남아시아에는 낯익으면서도 해외 팬들에게는 또 엑소티시즘을 자극할 수 있다. 이달의 소녀도 있지 않았나. 절기는 약 보름마다 돌아온다. 기획팀이 좀 바쁘긴 하겠다.


04. 올해의 가장 탁월한 랑데부는? 

김영대
로제&브루노 마스. 콘셉트, 노래, 퍼포먼스, MV 모든 부분이 그냥 ‘It just worked!’란 인상이었다. 음악적 컬래버라기보다는 이벤트적 성향이 다분했지만 중요한 건 그 모두가 조금의 어색함이 없는 유쾌하고 오가닉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김윤하 
이영지&도경수. 하마터면 배우계로 빼앗길 뻔한 K팝 인재 도경수를 다시 가요계로 이끈 것만으로도 훌륭한 만남이다. 여기에 영지 소녀의 화려한 커리어 가운데 딱 하나 아쉽던 ‘대표곡’이라는 마지막 퍼즐까지 맞췄으니, 흔한 표현으로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임희윤
비비&장기하. 탁월한 박자 감각과 한국어 감각을 탑재한 장기하가 빚어낸, 가히 고전 음악적인 아름다움의 왈츠. 플러스, 나긋나긋 폭신폭신하지만 색깔 또렷한 비비의 가창. 투박하나 기이한 통나무집과 벨벳 원단의 핑크 인테리어가 뚝딱 결합된 듯 아찔하게 낯설고, 거부할 수 없도록 매력 있다.


05. 올해의 인상적인 컴백과 실망스러운 컴백은?

김영대 
인상적인 것도, 실망스러운 것도 키스오브라이프. ‘Sticky’는 걸그룹의 건강한 현대적 섹시미가 뭔지를 정확히 보여준 곡으로 세련된 음악과 싱그러운 원테이크 MV까지 완벽했던 올해의 노래 중 하나다. 그에 반해 ‘Get Loud’는 정확히 그 지향성을 알기 어려운 밋밋한 노래여서 아쉬웠다(놀라웠다).

김윤하
8년 만에 2NE1 완전체 무대에서 울려 퍼진 ‘Come Back Home’과 ‘Fire’. 때로는 구구절절 말할 필요 없이 그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있다. 2NE1의 컴백이 그랬다. 한편 스테이씨는 올해로 데뷔 5년 차를 맞으며 무려 14곡을 담은 첫 정규앨범으로 묵직한 출사표를 던졌지만, 결과가 아쉬웠다. 스테이씨만의 비타민 같은 통속의 부활을 기다리는 게 나만은 아닐 거라 믿는다.

임희윤
조용필은 누구나 추앙하는 한국 음악계의 살아 있는 동상이다. 그렇기에 지친 듯한 목소리로 하던 음악, 또는 더 간결한 어쿠스틱 포크나 앰비언트 뮤직 기반의 음악을 냈다면 훨씬 힘을 덜 들이고 평단의 별 네댓 개를 품에 안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용필은 진정 이상한 선택을 했다. 이 시대에 주어진 편곡과 사운드의 재료로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팝송을 만들고자 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싶을 정도로. 반대로 로제의 경우, 특유의 매혹적인 목소리로 이를테면 얼터너티브 록풍의 강단 있는 음악을 해주길 바랐다. ‘아파트~ 아파트~’로 세계를 휘젓기는 했지만 이건 로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어느 정도 해냈을 곡이다. 세기만 하고 평이한 곡 뒤로 결국 로살리아와 ‘New Woman’을 빚어낸 리사를 보라. 로제의 정규앨범을 기대해볼 뿐이다.


06. 블랙핑크의 리사, 제니, 로제가 솔로로서 음악을 냈다. 그들의 음악과 행보를 아우르는 소감은?


김영대
리사(★★★☆) ‘Rockstar’라는 제목처럼 화려하고 강력한 탈 K팝 싱글. 
제니(★★★☆) 거부할 수 없이 터지는 제니의 매력 폭탄. 
로제(★★★★) 로제가 아닌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의 매력.

김윤하 
리사(★★★★) 왼손에는 블랙핑크의 리사, 오른손에는 태국 방콕 출신 팝스타 라리사 마노반.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다.
제니(★★★☆) ‘Pretty Savage’를 이끄는 ‘It Girl’로서의 확고한 존재감. 그래서 다음이 더 궁금하다. 
로제(★★★★) 의외의 한 방이라는 말은 실례다. 이제 막 시동을 건 ‘Rosie World’의 출발 신호.

임희윤
리사(★★★★) ‘Rockstar’는 아니었다. ‘Moonlit Floor(Kiss Me)’는 그냥 그랬다. 그래도 ‘New Woman’이 있었다. 올해 리사는 이것으로 족하다. 앞으로 이거면 리사로 족하다.
제니(★★) ‘Mantra’로는 적더라. 제니가 올해 보여준 것. 나쁘지 않았지만 별로 좋지도 않았다. 아쉽다. 일단 올해까지는. 로제(★★) ‘APT.’로는 아직 판정할 수 없다. 아파트로 치면 단지 진입로도 안 깔렸다. 아파트 다 올리면 불러주길. 기대는 하고 있다.


07. 하이브 방시혁 의장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면?

김영대 
시스템 VS 예술성,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뭘 취하겠어요?

김윤하 
당신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임희윤 
Do You Believe in Music? 


08. 어도어 민희진 사내이사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면?


김영대 
뉴진스 정규앨범은 (언제쯤) 나올까요?

김윤하 
당신이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무엇인가요?

임희윤 
Do You Have One (More) Room?


09. 올해 K팝계에 일어난 인상적인 사건 하나를 꼽아보자. 

김영대
하이브, 민희진 분쟁. K팝이 탄생한 이래 산업적인(경영적인) 이슈가 음악적인 이슈를 완전히 덮어버렸던 아주 독특한 한 해. 이 갈등은 K팝 산업이 꽁꽁 숨겨온, 혹은 쉬쉬해온 다크 사이드를 한꺼번에 수면 위에 드러냈고, K팝 산업에 대해 몇 가지 중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멀티 레이블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 K팝에서 예술의 의미는 무엇인가? K팝에서 미학의 가치는? K팝에서 아티스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갈등 양상의 결론에 따라서 향후 몇 년간 K팝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한 회사의 운명도.

김윤하 
민희진의 기자회견. ‘대퓨님’의 숨겨진 ‘퍼포먼스력’을 비롯해 K팝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의 병폐가 ‘파묘’되는 걸 3시간 가까이 실시간으로 지켜본 놀라운 시간이었다. 

임희윤 
하이브, 민희진 분쟁. 회사 내 진흙탕 싸움의 장이 알고 보니 컨버터블, 그러니까 돔구장이었다. 돔 뚜껑이 열리니까 지저분한 것들이 보였다. 진흙도 탕 밖으로 마구 튀었다. 그제야 우린 K팝을 조금 더 보게 됐다. 역사의 앞 2/3는 아이들 듣는 음악이라며 무시했고 역사의 뒤 1/3(최근)은 국위선양에 빠져 찬양만 했던, 그 어른들도 이제는 K팝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대중음악판 ‘한강의 기적’은 너무 급속도로 일어났고 그림자는 더 길어졌으며 영영 양지로 생각되던 곳에도 음영을 드리웠다. 차제에 찾아야 할 것들이 있다. 업계 안팎의 건강이다.


10. 최근 대두한 K팝 위기론, 그런데 지금 K팝은 진짜 위기일까?

김영대 
K팝은 위기가 맞다. 하지만 그건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와 같은 슈퍼스타의 부재 때문은 아니며 M&A로 탄생되는 공룡 기업의 필요성을 방증해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K팝의 위기는 ‘구태의연함’에서 비롯된다. 시스템이라는 미명하에 적당히 찍어낸 음악의 진부함, 눈 가리고 아웅식의 눈속임 성과, 회사 및 아티스트 각각의 도덕적 해이, 정확한 비전이 없는 몸집 불리기야말로 K팝의 발전을 가로막고 위기론에 부채질하는 부분들이다. K팝 산업은 그걸 사랑하고 지지하는 팬덤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이 팬덤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부심’이다. K팝 회사들이 팬들로부터 이 자부심을 뺏는다면 그것이 바로 K팝의 진짜 위기일 것이다.

김윤하
매년 K팝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숫자판만 읽고 있지만, 만약 K팝에 진짜 위기가 온다면 그건 K팝을 향한 팬덤과 대중의 냉소에서 올 거라고 확신한다.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팬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댐에 금 가는 소리가 그 어느 해보다 요란한 2024년이었다. 

임희윤 
아니다. 근년 여러 특이점을 만나 급성장하긴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은 오래전부터 재패니메이션과 같은 서브컬처로서 자리 잡았다. 향후에도 해외 차트 최상위권을 몇 번 쿡쿡 찌르겠지만 재미난 서브컬처의 본질은 차트 성적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상하고 재밌는 게 본질이다. 다만 이제는 더 건강해졌으면 하면 바람이 있다.



■ <흑백요리사> 익힘의 정도는요


한국의 다이닝 신은 지금까지 세 차례 계단식 성장을 했다. 88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현대카드가 ‘고메위크’를 시작했을 때,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론칭했을 때. 그리고 2024년,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많은 것을 가지고 나타났다. 안성재 셰프의 코멘트들이 유행어로 떠올랐고, 빽다방의 백종원 대표 사진과 일러스트엔 검은 눈가리개가 입혀지는 ‘짤’이 생성되었다. 두 심사위원 외 출연자들도 고루 불꽃놀이처럼 여기저기서 터지는 인기를 얻고 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무명씨 중 스타 하나씩만 선발한 그 경연에 비해, <흑백요리사>는 최현석, 여경래, 정지선 같은 셀러브리티 셰프부터 ‘나폴리 맛피아’, ‘요리하는 돌아이’, ‘이모카세’처럼 접근이 용이한 식당의 셰프까지 다양한 ‘요리인’을 고른 비중으로 조명했다. 제왕적 스타 하나를 추대하던 봉건적 과거와 크리에이터 다수를 구독하는 민주적 현재의 세대 차이랄까. ‘캐치테이블’ 앱 기준, <흑백요리사〉 오픈 전후 예약 건수가 4937.5%나 치솟은 출연자의 식당도 있을 정도. ‘철가방 요리사’의 도량은 10월 예약 오픈에 6만5,000여 명이 동시 접속해 모든 예약이 순식간에 마감됐다고 한다. 그래서 <흑백요리사>가 ‘위기의 외식업을 살리는 미식 열풍’을 가져왔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는 성급한 샴페인이다. 침소봉대다. 출연한 셰프들 대다수와 제작진은 속내에 ‘어려운 외식업계가 <흑백요리사>를 계기로 살아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숨기듯 지니고 있었다지만, 미안하게도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흑백요리사>가 살린 것은 〈흑백요리사> 자신뿐이다. 요리가 아니라 택견이나 꽃꽂이였어도 상관없었다. <흑백요리사>로 미식 열풍이 불어닥친 곳은 <흑백요리사>들의 업장뿐이다. 물론 <흑백요리사>가 그 이상을 해야 할 책임도, 강요도 없다.


A 호텔 뷔페는 가장 높은 퀄리티와 가장 높은 가격으로 유명한 곳이다. 갑자기 가려다 당연히 예약되지 않아 B호텔 뷔페에 갔다. A 뷔페에 비해 2/3인 가격처럼 테이블도 음식도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가격이 A 뷔페의 1.5배 정도인 B 레스토랑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2스타이지만, <흑백요리사>에 나온 셰프의 업장이 아닌 덕분인지(!) 여유 있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즐겨 가던 와인 바는 재료비와 인건비가 너무 올라서 가게를 내놓았다고 한다. 강남과 성수동의 이름 쩌렁쩌렁한 와인 바들과 정반대 상황이다. 성공한 식당 사장님이 새로 낸 식당은 또 성공했지만, 동네 백반집과 카페 자리에는 벌써 몇 달 넘도록 ‘임대 문의’만 줄줄이 붙어 있다. 지금 한국의 외식업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말은 ‘양극화’다. 


<흑백요리사>는 요리사들을 백수저와 흑수저로 구분했지만, 이 둘 아래 빛이 닿지 않은 곳에 진짜 흙수저 요리사들이 있다. 앞으로가 관건이다. 넷플릭스 예능이 촉발한 다이닝 신에 대한 어마어마하고도 능동적인 호기심이 <흑백요리사> 출신 셰프 둘이 추가되어 12월 방영을 시작하는 <냉장고를 부탁해> 시즌 2와 2025년 하반기로 예고된 <흑백요리사> 시즌 2를 통해 쭉 잘 이어져야 한다. 어쩌면 정말로 올림픽과 고메위크, <미쉐린 가이드>에 이어 <흑백요리사>가 다이닝 신으로서는 네 번째 계단식 성장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반면 흙수저들의 외식 바닥은 우리 곁에 산소처럼 자연스레 녹아 있는 백반집이고 고깃집이고 호프집이다. 치열한 생존형 외식업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폐업한 서울시 식당 수는 6,290개이고, 이건 2022년 같은 분기에 비해 무려 2,213개나 증가한 수치다. 포스트 팬데믹, 경제 상황, 국정 운영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지표 결과이지만 아무튼 침체는 가속화되고 있다. 거기에 대고 <흑백요리사>의 부흥을 침소봉대해 얘기하는 이들을 보면,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노래나 읊는 로마 황제의 영화적 순간이 떠오른다. 외식업계 전체가 나눠 가진 이 불황의 더께는 <흑백요리사>의 이븐하지 않은 낙수 효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 다시, 밴드 음악


2024년, 세상에 보이지 않는 지령을 담은 비밀 전파라도 흐르는 게 아닐지 잠시 의심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밴드 음악이 대세라며 희망의 깃발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 마니아들 사이 ‘밴붐온(밴드 붐은 온다)’이나 ‘과도한 록 놀이’라는 말이 구호처럼 유행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인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사흘 동안 역대 최다 관객인 15만 명이 몰렸고, 부산의 자존심 부산 록 페스티벌은 일일 최다 관객 3만 5,000명을 넘겼다. ‘록은 죽었다(Rock is Dead)’며 관에 못을 박은 지 꽤 됐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밴드 음악의 위상이 180도 바뀐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당연히 화제의 밴드가 있었다. 인디에는 실리카겔, 메이저에는 데이식스가 좌청룡 우백호처럼 그 위용을 자랑했다. 공교롭게도 2015년 첫 앨범을 발매한 일종의 데뷔 동기인 두 밴드는 활동 10주년을 눈앞에 둔 지난해와 올해 양과 질 모두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올렸다. 음악 연습실을 들락거리는 10대 가운데 두 밴드의 음악을 카피하지 않는 이를 찾기 어려웠고, 밴드는 그사이 ‘꼰대’에서 ‘힙’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2024년 8월, 이들이 다시 모이면 ‘손에 장을 지진다’ 호언장담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던 밴드 오아시스마저 재결합을 선언했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이유가 아주 없는 흐름은 아니다. 국내 기준, 앞서 언급한 두 밴드의 활약에 더해 전 세계 Z세대의 팝 펑크 아이콘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인기를 앞세운 록 리바이벌 붐을 계기로 밴드 음악을 찾는 젊은 층이 부쩍 늘었다. 엔데믹 무드와 함께 찾아온 크고 작은 음악 페스티벌의 성황은 이와 같은 흐름을 눈과 몸으로 직접 체험하려는 새로운 세대의 움직임에 기댄 결과였다. 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젊은 세대의 고막과 삶을 사로잡았던 힙합의 인기 하락세도 뚜렷했다. ‘국힙’의 위상이 격하하는 사이를 밴드 음악이 파고든 셈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방점이 찍힌 곳이 ‘록’이 아닌 ‘밴드’라는 점이다. 장르를 꼬장꼬장하게 따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아무래도 고루한 일이니까. 심지어 그렇게 새롭게 발굴된 록과 밴드 음악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팝 펑크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뉴트로 인기를 등에 업고 다시 소환된 에이브릴 라빈에서 린킨 파크까지, 하나같이 이들이 유행하던 21세기 초만 해도 록 마니아들이 만든 ‘진짜 록’ 놀이터 근처에도 얼씬 못한 음악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밴드 붐은 지난 세기와는 사뭇 다르다. 설레는 소문을 넘어 든든한 현실이 되기에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 극장 관객수가 말해주는 것


“그래서 진짜 망했다는 거야?” 대중문화 영역에서 영화는 더 이상 화제를 끄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어떤 대작이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영화판 자체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거나 하는 얘기만 사람들 사이에서 떠돈다. <파묘>와 <범죄도시4> 등 상반기에만 천만 관객을 모은 한국 영화가 두 편 나왔지만, 바꾸어 말하면 그 두 편 외에는 잘된 영화가 없다. 티켓값 인상으로 극장 영화 매출이 팬데믹 이전의 90% 수준을 회복했으나 이것은 통계의 눈속임에 불과하다. 잘되는 영화는 잘되지만 대부분의 개봉작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흥행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제작되는 영화 편수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팬데믹 여파로 개봉하지 못했던 ‘창고 영화’(2020년 기준 5년 만기 펀드가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들은 늦어도 내년 안에 개봉일을 잡아야 한다. 올해 새롭게 투자가 확정된 영화는 스무 편이 채 되지 않는다. CJ ENM에서 올해 제작에 들어간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뿐이라는 것은, “봉준호와 박찬욱 외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라는 흉흉한 소문이 업계에 도는 것은, 사실상 새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거의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올해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김한결 감독의 <파일럿>, 이종필 감독의 <탈주>, 남동협 감독의 <핸섬 가이즈>가 여름 시장에서 선전한 현상을 두고 희망을 찾기도 한다. 이 작품들의 감독은 모두 80년대생이거나 첫 장편영화를 연출한 이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2부,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 등 이른바 ‘올드보이’ 감독의 신작이 흥행에 실패한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이제 관객은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값만으로 관람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세대교체’라는 키워드를 꺼내는 것은 섣부르다. 장재현 감독처럼 오컬트 장르에서 자신의 DNA를 꾸준히 보여준 사례를 제외하면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현세대의 특징이 두드러진다거나, 고유의 영역을 구축한 신진 감독이 자리 잡았다고 보 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로 주목받은 감독들이 상업영화 진출작에서 아쉬운 결과를 남기는 경향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런 한편 의외의 흥행작이 있었다. <사랑의 하츄핑>이 122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1년 중 가장 성수기에 해당하는 7~8월 극장가에서 두 번째로 흥행한 한국 영화다. 지난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그랬듯 확실한 타깃층을 가진 영화가 선호되는 현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해외 아트하우스 영화들의 깜짝 흥행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결코 대중적이라 할 수 없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20만 명씩이나 본 이유는 무엇일까. <퍼펙트 데이즈>가 관객수 12만 명을 동원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한국에 시네필이 많아서는 아닐 텐데). 칸영화제 수상, 유명 평론가들의 극찬, 무엇보다 극장 관람이 필수라고 입소문을 탄 영화들은 관객의 선택이 팬데믹 이전보다 엄격해지면서 오히려 수요가 올라갔다. 하지만 이는 해외 예술 영화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 한국 독립영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LGBT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는 못했지만 관객수 84만 명을 동원한 것은, 그것이 손익분기점이 400만 명에 이르는 대작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관객수(68만 명)보다 높은 수치인 것은 지금 시장에서 과거 흥행 코드를 답습하는 기획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성소수자의 일상적 연애를 보여주는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꾸준한 입소문으로 생존하고 있다. 


넓은 맥락에서는 <사랑의 하츄핑>이나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흥행과 함께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타깃층이 분명하거나 ‘와우 포인트’가 있거나 확실한 차별점이 있는 기획이어야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영화 투자가 위축되는 흐름은 막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인 선택만 해서는 오히려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다. 올해 극장가 성적표는 앞으로 영화계가 어떤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지 에둘러 알려주고 있다. 
– 임수연(<씨네 21> 취재팀장)



■ 올해 저평가된 무엇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
“일제강점기의 ‘마루타’를 모티프로 크리처물이 태어났다. 한국이 블록버스터 제작 능력을 갖추게 된 21세기 들어 진작 나왔어야 하는 성격의 작품. 또 시대, 사랑, 청춘, 장르, 탁월한 연기,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상미까지 다 있는 작품이다. 9월 시즌2 공개 직후 시즌1과 2가 모두 글로벌 시청 수에서 톱10에 오르는 이례적인 선전을 했음에도, 한국에서는 그만큼 호응을 얻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


최원빈 정규 1집
“2016년 밴드 ‘웨터’의 프런트맨으로 데뷔한 최원빈의 8년 만의 첫 솔로 정규앨범. 올 한 해 록의 리바이벌 속에서 최원빈의 이름이 생각보다 저조하게 불린 것은 어쩐지 속상한 일이었다. 이 앨범은 ‘무해함’과 ‘럭키비키’를 외치는 요즘의 시대정신과는 한참이나 어긋나 있다. 메탈, 펑크, 그런지 등 직선적인 해방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운드는 ‘모두 망설이는 금기를 깨’, ‘알겠어 내가 악당 할게’와 같은 더 직선적인 가사를 만나며 펄떡이는 록의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세종문화회관의 ‘Sync Next’
“2022년부터 시작된 세종문화회관의 시즌제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를 수식하는 단어 ‘컨템퍼러리’ 이 한마디를 꺼내는 게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보면, 이 프로그램의 존재는 귀하다. 공연장에 갔다가 무대에 오른 미술가를 만날 기회는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이제는 전설로 남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현대음악 공연 프로그램인 ‘아르스 노바’(2006~2018)가 떠오른다면 과장일까?”
– 박재용(프리랜스 큐레이터, 통번역가) 


국내 여성 재즈 보컬들 
“김민희, 김유진, 마리아킴, 문미향, 조해인…. 차세대 디바들이 양질의 음반을 앞다퉈 쏟아냈고, 지난해 결성한 디바계의 어벤저스 ‘카리나 네뷸라’도 꾸준히 활동한 한 해였다. 뉴진스가 대표하는 ‘바이브’ 중심의 세련된 팝은 어마어마한 주목을 받았지만, 재지한 바이브가 충만한 다른 것들은 어마어마하게 ‘못’ 주목받았다. 그래도 한국 재즈는 계속 나아간다. 나아갈 것이다.” 
– 임희윤(대중음악 평론가)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상대의 말과 마주 보는 말이 사라진 시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 언제보다 거대한 말 더미에 파묻혀 사는 건 맞지만, 대부분의 말은 원하는 수신자에게만 닿아 증폭하거나 반대로 서로에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한 채 생채기만 남기고 부서진다. 이 웨이브 오리지널 작품은 그렇게 영원히 평행선일 같던 말들을 애써 모은 작은 마을이다. 모든 게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한 번쯤 볼만한, 요즘 드문 ‘말의 흐름’이 흐르는 프로그램이었다.”
–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ARTMS 정규 1집
“이달의 소녀가 계약 해지 소송을 마치고 두 개의 그룹과 솔로 활동으로 나뉜 후 나온 가장 주목할 만한 아웃풋. 이달의 소녀의 황금 시절을 함께 이끈 프로듀서 제이든 정의 손으로 빚어진 이 (재)데뷔작은 음악, 스토리, 퍼포먼스까지 모든 부분에서 올 한 해 가장 빼어난 웰메이드 K팝 앨범 중 한 장이다.’’ 
– 김영대(대중음악 평론가)


메기 넬슨의 <아르고호의 선원들>(플레이타임)
“망각과 기억, 쾌락과 노화, 가족과 퀴어를 횡단하면서도 여전히 ‘나’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 미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학자인 메기 넬슨의 자전적 에세이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자기 이야기되 이론, 시, 인터뷰 등의 문헌을 뒤섞으며 모두의 서사를 구성하는 ‘자기 이론(Auto Theory)’ 글쓰기의 뛰어난 예시로, 저자가 파트너 해리 도지와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자신의 출산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마침내 모든 부품이 교체되더라도 변함없이 아르고호로 불리는 선박처럼, 사랑 역시 갱신의 예술임을 믿게 만드는 글이다.”
– 도우리(대중문화 비평가)


넥슨 ‘아이콘 매치’
“드로그바, 베르바토프, 카카, 피구, 아자르, 델피에로, 퍼디난드, 피를로, 푸욜, 반데사르, 박지성 등등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세계 톱 클래스 축구 선수들이 10월 20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모였다. 심지어 레전드 공격수 11명과 레전드 수비수 11명이 붙는다는 참신한 설정까지. 관중석은 꽉 찼지만, 생각보다 화제가 덜 돼서 아쉬운 느낌이다. 야구에 밀리고 러닝에 밀린 축구의 인기라니. 아무리 봐도 네이마르가 에버랜드 간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인데···.” 
– 박한빛누리(프리랜스 에디터) 


김안의 (문학과지성사)
“김안의 시를 읽는 일은 지옥의 창문을 열며 음독 중인 광인의 깨진 거울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 첫 시집 <미제레레>에서 시작된 시인의 지옥은 <오빠 생각>, <아무는 밤>을 거쳐 네 번째 시집 에서도 이어진다. 지옥의 소리를 듣고, 지옥의 냄새를 맡는 기형의 시간으로 독자는 초대받는다. 말쑥한 정장 차림 대신 등 굽은 노파가 페이지마다 지나가는 이 시집은, 오늘날 시의 흐름에서 비껴나 있지만 그 집요한 비껴남 때문에 다시 펼치게 되는 마력을 지닌다. 그의 시는 견딜 수 없는 기형과 기형을 꿰맨 하나의 몸이다. 그의 시는 망해가는 것들 속에서 하나의 원숙한 균형을 이룬다. 몸을 웅크린 한 명의 거대한 실루엣이 독자 몸에 덧씌워진다.” 
– 김유태(<매일경제신문> 기자, 시인)


클라우드 크러시
“맥주 브랜드, 클라우드에서 출시한 크러시. 이제껏 한국 맥주는 구수한 라거 일색이었는데 이건 아주 다른 계열이다. 문자 그대로 ‘말끔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청아한 캐릭터. 거품은 샤프하고 뒤끝에 싹 도는 과실과 꽃 향도 싱그럽다. 25년 전쯤 유행한 아이스 맥주가 돌아온 느낌이다. 낙지볶음소면 같은 한식과 함께 다시 마시고 싶은 맥주였는데, 출시 후 내가 우연히 발견하고 맛보기까지 1년 가까이나 걸렸다.”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tvN 드라마 <정년이>
“원작 웹툰의 ‘부용’ 캐릭터 삭제로 페미니즘과 퀴어 서사를 지우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지만, 직접 보고 판단하시라. 김태리 주연의 12부작 TV 드라마는 1950년대 무대 연기를 통해 성 역할을 전복하고 동성애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고 알려진 여성국극단 존재 자체에 집중한다. 광고 단가가 가장 비싼 자리 중 하나라는 tvN 주말 드라마 슬롯에서 극단 무대 재현에 상당한 제작비를 태우며(!) 드라마 나름의 방식으로 페미니즘과 퀴어를 다루고 있다.” 
-임수연(<씨네 21> 취재팀장)



■ 지금은, 티니핑!


티니핑은 유아 인구를 넘어 성인들의 레이더망에도 걸려든 ‘올해의 존재감’이다. 사랑, 우정, 용기 등 여러 감정과 성격의 특성을 의인화한 마법 생명체.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캐치! 티니핑>이 그들의 세상이다. 캐릭터 종류는 현재 130개가 넘는다. 프랜차이즈 아이돌 그룹의 시스템처럼 1기 티니핑, 2기 티니핑 식으로 불어난다. 단어 끝에 ‘핑’만 붙이면 캐릭터 이름이 되고, 그 이름만 들어도 얼추 특성이 짐작되는 단순한 작법 공식은 ‘스머프’나 <인사이드 아웃>과 비슷하다. 8월 개봉한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티니핑이 전 세대에 걸쳐 확산되도록 불씨를 지폈다. 시리즈의 극장판이 122만 관객을 모을 정도로 그 기세에 ‘티’가 났다. 주인공 로미가 티니핑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티니핑 월드의 장원영이자 인간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하츄핑(사랑과 배려를 상징)을 만난다는 게 스토리 라인이다. 


‘생각보다 영상 퀄리티가 훌륭하고 감동적’이라는 후기, 티니핑 캐릭터를 말하는 조카 앞에서 ‘시진핑’으로 응수했다는 식의 언어 유희적 에피소드가 잇따라 온라인에 퍼졌다. 정말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 세상에 공감하는 시선과 일종의 밈처럼 불어난 농담성 고백 행렬, 여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트렌드 대열에 올라타 직접 경험해보려는 이들의 움직임이 더해졌다고 봐야겠다.


제작사인 SAMG 엔터테인먼트는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시작해 IP를 활용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곳이다. <캐치! 티니핑> 이전에는 <미니특공대>, <슈퍼다이노>라는 애니메이션 히트작을 출시한 바 있다. 부모들에게서 ‘파산핑’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관련 머천다이즈 시장이 무궁무진한데, 이에 그치지 않고 테마파크, 게임, 의류 등으로 그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일본 출신의 요술공주 밍키나 세일러문 같은 유명한 ‘마법 소녀’가 한국산으로도 태어난 셈.


2003년 태어난 <뽀롱뽀롱 뽀로로>를 보고 자란 세대가 이제 성인이 되어 ‘나 어릴 적’을 추억하고, 지금의 유아들과도 공유되는 키워드를 가졌다. 캐릭터 산업은 긴 시간을 내다보고 꾸준히 키워가는 분야라고 하는데, 뽀로로와 핑크퐁에 이은 이 현재진행형 캐릭터의 뜨거운 생명력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 권은경 (<더블유> 피처디렉터)


https://www.wkorea.com/?p=338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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