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6,598 37
2024.12.26 01:25
6,598 37
https://img.theqoo.net/pgnZrb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중략)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너의 장례식은 언제나 나의 장례식이다.

(중략)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中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








나는 사랑과 동정이 깊은 차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요소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이라면 말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에 어떤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나.

가브리엘 마르셀은 말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문장은 뒤집어도 진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역시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어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지언정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이 자살은 살인이니까.

 

-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中 '무정한 신과 사랑의 발명'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中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목록 스크랩 (17)
댓글 3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아우어와이🌳] OURWHY와 함께하는 산뜻촉촉 바디 테라피! <모링가 모이스처 바디로션> 체험 이벤트 301 01.27 16,807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662,906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5,018,882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8,528,966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7,178,060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2 21.08.23 5,950,26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40 20.09.29 4,910,205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73 20.05.17 5,515,753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90 20.04.30 5,953,36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815,669
모든 공지 확인하기()
2619171 유머 치과의사 알려주는 치실 꼭 해야하는 이유 4 07:41 830
2619170 이슈 27년 전 오늘 발매♬ DREAMS COME TRUE 'あはは' 07:32 61
2619169 유머 [페이스캠] 인가만 가면 레전드 찍는 아이브 안유진 Rebel heart 4 07:24 444
2619168 이슈 동성혼 합법화가 많아지는 이유 (생각지 못한 관점) 16 07:00 3,664
2619167 기사/뉴스 첫 현직 대통령 기소에…뉴욕타임스 "수사 비협조에 빨라져" 9 06:59 1,167
2619166 이슈 개인용 비행보드 드론을 개발한 회사 3 06:54 1,397
2619165 기사/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 승소 이끌어 낸 이춘식 옹 별세..."국민에게 고맙고 줄 게 없어 미안해" 27 06:49 1,073
2619164 이슈 블랙헤드 제거영상 2 06:47 1,988
2619163 이슈 NCT WISH 위시 'Miracle' 비하인드 사진 06:44 374
2619162 기사/뉴스 쫓겨난 허은아 “윤석열보다 더하네”…법원으로 간 개혁신당 운명|지금 이 뉴스 6 06:42 1,244
2619161 정보 신한플러스/플레이 정답 1 06:40 433
2619160 기사/뉴스 신민아, 한림화상재단에 10년간 10억원 기부 8 06:38 1,264
2619159 기사/뉴스 정보라, 세계적 권위 SF문학상 후보...지평 넓히는 K-문학 1 06:35 1,026
2619158 기사/뉴스 '여의도 187배' 규모… 주인없는 '2.2조원 토지', 국가 귀속 추진 3 06:25 1,755
2619157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만 운영하는 우유 디저트 카페 입니다~ 2 06:25 663
2619156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도 운영하는 고등어 식당 입니다~ 1 06:23 463
2619155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만 운영하는 치즈냥 식당입니다~ 06:18 517
2619154 이슈 딥시크 이상인 국내 ai 7 06:16 3,083
2619153 이슈 넷플 중증외상센터에서 반응 좋은 배우 15 05:53 4,997
2619152 유머 어이 좋은 아침 27 05:23 2,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