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6,418 35
2024.12.26 01:25
6,418 35
https://img.theqoo.net/pgnZrb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중략)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너의 장례식은 언제나 나의 장례식이다.

(중략)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中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








나는 사랑과 동정이 깊은 차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요소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이라면 말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에 어떤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나.

가브리엘 마르셀은 말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문장은 뒤집어도 진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역시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어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지언정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이 자살은 살인이니까.

 

-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中 '무정한 신과 사랑의 발명'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中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목록 스크랩 (15)
댓글 35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컬러그램X더쿠] 최.초.공.개❤️ 싱글큐브섀도우 체험단 이벤트✨ 120 12.23 47,777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12.06 301,766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04.09 4,425,957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8,084,279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557,05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1 21.08.23 5,655,303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5 20.09.29 4,604,43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65 20.05.17 5,208,399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7 20.04.30 5,647,30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472,994
모든 공지 확인하기()
2588420 이슈 퀴즈쇼 1:100 대거 탈락 문제들.jpg 1 13:06 184
2588419 이슈 레딧을 떠들썩하게 만든 "개미의 집단지성" 18 13:04 701
2588418 기사/뉴스 박명수, 지드래곤 향한 끊임없는 구애 "이 정도면 나와라" (라디오쇼) 2 13:04 174
2588417 이슈 연대란 다음에 만날 때는 적이다 하며 정답게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더 큰 악을 위해 싸우는 것 8 13:03 391
2588416 이슈 해외에서 화제 중인 2024년 영화 요약 일러스트..jpg 7 13:03 637
2588415 이슈 에이티즈 성화 인스타그램 업로드 (눈 같아서 더 빛나네) 13:03 104
2588414 이슈 요즘 20대 여성 패션 근황.jpg 14 13:03 1,432
2588413 이슈 한덕수 탄핵관련 간단 정리 (feat.케톡) 33 13:01 2,579
2588412 이슈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주고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저희가 만든 드라마를 봐주시고 이 모든 게 얼마나 큰 기적같은 일인지 1 13:01 540
2588411 이슈 신천지 댓글조작팀은 윤석열과도 연결됨 (지금도열심히활동중) 10 13:01 843
2588410 기사/뉴스 박명수 "입덧하는 며느리? 선물 들려 친정 보내라…인간 도리" (라디오쇼)[종합] 16 13:00 1,251
2588409 유머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노는 게 몇만 배는 더 재미있어요 24 13:00 1,378
2588408 기사/뉴스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 "왕정도 아니고…대통령도 내란죄 주체된다" 7 13:00 616
2588407 이슈 어제 가요대전 스페셜 무대에서 잘한다고 트위터에서 알티타는 남돌 2 13:00 571
2588406 이슈 일 내겠다, ‘하얼빈’ 3 13:00 551
2588405 이슈 예전 댓글공작 했던 사람들 윤석열이 사면시켜 요직에 앉힘 5 12:59 614
2588404 정보 2025년 네이버 멤버십 <티빙> 혜택 종료 예정 40 12:58 1,198
2588403 정보 왔다 내 최애의 아이돌🎤 네버랜드 모두 모여!!! <(여자)아이들 월드투어 [아이돌] 인 시네마>  메인 트레일러 CGV 최초 공개! 2025년 1월 8일 1 12:58 65
2588402 이슈 내일 모레 개통하는 GTX-A 요금표.jpg 14 12:57 1,496
2588401 기사/뉴스 윤은혜 "언니들한테 미안했다"...베이비복스 '불화설' 직접 해명 6 12:57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