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6,639 37
2024.12.26 01:25
6,639 37
https://img.theqoo.net/pgnZrb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중략)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너의 장례식은 언제나 나의 장례식이다.

(중략)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中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








나는 사랑과 동정이 깊은 차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요소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이라면 말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에 어떤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나.

가브리엘 마르셀은 말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문장은 뒤집어도 진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역시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어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지언정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이 자살은 살인이니까.

 

-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中 '무정한 신과 사랑의 발명'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中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목록 스크랩 (17)
댓글 3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영화이벤트]강하늘X유해진X박해준 영화 <야당> 최초 무대인사 시사회 초대 이벤트 153 00:10 9,424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1,457,321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6,049,515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9,354,134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 금지관련 공지 상단 내용 확인] 20.04.29 28,353,904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6 21.08.23 6,500,866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42 20.09.29 5,464,99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87 20.05.17 6,140,68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98 20.04.30 6,478,71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1,469,997
모든 공지 확인하기()
342186 기사/뉴스 검찰, ‘윤석열 가짜 출근’ 취재한 한겨레 기자 무혐의 아닌 기소유예 8 19:00 374
342185 기사/뉴스 "셋이 그것밖에 안 했냐"… 코요태, 산불 3000만원 기부에도 악플 25 18:59 703
342184 기사/뉴스 '그것이 알고 싶다' 초1 학생 살해한 교사 명재환의 실체 공개 3 18:59 686
342183 기사/뉴스 [특집] 내 푯값은 어디로 가나요? - 할인 유무·할인 종류에 따른 영화 티켓값 경우의 수 18:50 249
342182 기사/뉴스 "걸그룹 멤버끼리 한남자 쟁탈전?"..다이아 출신 안솜이 "가세연에 법적 조치" 5 18:48 1,402
342181 기사/뉴스 산불 피해지역 지원…대성, 성금 3억원 및 대성C&S 세제세트 1천개 후원 18:48 281
342180 기사/뉴스 배식 봉사 나선 권영세 비대위원장 19 18:46 993
342179 기사/뉴스 강재준♥이은형, 천 만원 기부 동참 “산불 진화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힘 보태고 파” 2 18:44 185
342178 기사/뉴스 ‘컴백 D-4’ 윤서령 “무한한 성장 이뤘다” 출격 준비 完 18:42 132
342177 기사/뉴스 “산불로부터 지켜줘서 감사해요”…사탕 들고 경찰 찾아온 영덕 초등생들의 편지 5 18:40 689
342176 기사/뉴스 법학 연구단체, 한덕수 ‘마은혁 미임명’ 고발…직무유기 혐의 19 18:39 744
342175 기사/뉴스 故문빈 추모곡 4월 나온다…“친구들이 보내는, 편지” 4 18:39 761
342174 기사/뉴스 재난주관방송사 KBS, 산불 관련 특별 생방송 및 대담 긴급 편성[공식] 20 18:38 667
342173 기사/뉴스 "사람 맞냐, 천벌 받아"…산불 피해견 먹을 사료 훔쳐가(📌사진 맘아픔 주의) 27 18:32 1,863
342172 기사/뉴스 경북 5개 시·군 집어삼킨 '악마 산불' 실화자, 오는 31일 소환 조사···산림보호법 위반 혐의 10 18:30 931
342171 기사/뉴스 "압박이 먹히긴 하나"…민주, 헌재 침묵에 '골머리' 19 18:26 1,081
342170 기사/뉴스 입짧은햇님, 산불 피해 복구 위해 3천만원 기부 “작은 힘 되길” 18 18:26 617
342169 기사/뉴스 명태균, "오세훈 비공표 여론조사" 13건 중 최소 12건 조작했다. 11 18:25 442
342168 기사/뉴스 [단독]추성훈·야노시호·추사랑, 선행 가족..산불 피해에 5000만원 기부 10 18:22 853
342167 기사/뉴스 다비치안경 체인본부 및 가맹점주 일동, 대형 산불 피해 지역 주민을 위해 성금 1억원 기탁 8 18:21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