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유시민 대답하지 못한 질문(추모시)
43,840 189
2024.12.25 05:13
43,840 189

대답하지 못한 질문   

                   유시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경찰서 뒷골목

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솔직한 말이 아니었어

저렴한 훈계와 눈먼 오해를 견뎌야 했던

그 사람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개인적으로 욕을 먹을지라도

정치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권력의 반을 버려서 선거제도를 바꿀 수만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


대연정 제안으로 사방 욕을 듣던 날

청와대 천정 높은 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국민이 원하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시지요


정직한 말이 아니었어

진흙투성이 되어 역사의 수레를 끄는 위인이 아니라

작아도 확실한 성취의 기쁨에 웃는 그 사람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었을 뿐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만 같소

정치의 목적이 뭐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주는 것 아니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의 삶조차 지켜주지 못하니

도대체 정치를 위해서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이요


수백 대 카메라가 마치 총구처럼 겨누고 있는 

봉하마을 사저에서

정치의 야수성과 정치인생의 비루함에 대해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물을 가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확신 가득한 말이 아니었어

그 분노와 회한을 함께 느꼈던 나의

서글픈 독백이었을 뿐

 

그는 떠났고

사람 사는 세상은 멀고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거기 있는데

마음의 거처를 빼앗긴 나는

새들마저 떠나버린 들녘에 앉아

저물어 가는 서산 너머

무겁게 드리운 먹구름을 본다


내일은 밝은 해가 뜨려나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안고

욕망과 욕망이

분노와 맹신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흙먼지 날리는 세상의 문턱에 서성인다


노무현 대통령 4주기 추모시

목록 스크랩 (18)
댓글 189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바세린 X 더쿠💛] 퀸비 vs 핑크 버블리! 너의 추구미는 뭐야? ‘바세린 립테라피 미니 리미티드 에디션’ 체험 이벤트 388 12.23 41,906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12.06 291,963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04.09 4,415,81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8,072,52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544,770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1 21.08.23 5,644,795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5 20.09.29 4,597,064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65 20.05.17 5,198,928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7 20.04.30 5,636,186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460,236
모든 공지 확인하기()
2587731 기사/뉴스 "신혼여행 일정도 줄일 판"…환율 상승에 발목 잡힌 여행객들 17:33 5
2587730 기사/뉴스 朴 탄핵 때와 달리 보수 결집?…권영세 사과가 與 ‘변곡점’ 될 듯 3 17:32 166
2587729 이슈 “나는 저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농사를 더 열심히 짓고 싶어졌다” 17:32 93
2587728 유머 싸우지 말라고 2개씩 샀는데 1 17:32 420
2587727 유머 코기강아지가 더 어린 코기강아지를 만났을 때 4 17:31 356
2587726 이슈 내일 김용현 기자회견할 건데 jtbc-mbc 오지 말라고 함 26 17:30 914
2587725 이슈 20대 남자 20%는 군 복무중 10 17:28 1,086
2587724 기사/뉴스 [fn사설] 얼어붙은 연말경기에 찬물 끼얹는 도심 집회 149 17:26 3,971
2587723 이슈 이수만 사진은 저거밖에 없나.twt 12 17:24 1,839
2587722 이슈 아이브 장원영 인스타.jpg 11 17:23 1,224
2587721 기사/뉴스 [단독] 권영세 "한덕수 탄핵 200석 필요…권한쟁의 與 아닌 野 몫" 196 17:21 4,136
2587720 이슈 🎄 43년동안 키운 크리스마스 트리🎄 69 17:19 4,597
2587719 이슈 드라마가 아니고 다큐라는 드라마 <열혈사제2> 마지막회 선공개 이 시국 대사.twt 16 17:18 2,261
2587718 이슈 전봉준투쟁단 한 분이 페북에 쓰신 그 날의 남태령 23 17:17 1,768
2587717 기사/뉴스 이준석 "20대 남성 20%는 군 복무 중…여성 집회 참여율 높은 건 당연" 264 17:15 6,562
2587716 이슈 베이비복스 불화설 사실아니라고 언급해준 윤은혜 16 17:13 3,750
2587715 유머 바오가족방에서 소소하게 소취하는 바오자컨 만우절 이벤트 2 17:13 897
2587714 기사/뉴스 "옷 사러 가요" 돈 펑펑 쓴다…MZ들 몰리더니 '패션 메카' 된 성동구 2 17:12 2,137
2587713 기사/뉴스 82메이저, 美 WWD 화보...“데뷔 1년 만에 빌보드 진입, 에티튜드 사랑 덕분” 5 17:11 496
2587712 이슈 결혼생활이 힘들어도 강주은이 이혼하지 않은 이유 83 17:10 14,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