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도시의 뒷골목 풍경을 주로 찍은 사진작가이다. 우리가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던 낯익은 사진들이 모두 그의 작품.
무엇을 찍을지 정하지 못했던 시기 그는 서울역 주변 풍경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서울역 뒤편의 중림동 골목에 마음이 끌려 그 안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당시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던 중림동에서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 뛰어놀던 골목을 만났고 말할 수 없는 정다움을 느꼈다. 이때부터 골목길은 그가 평생에 걸쳐 찍는 사진의 테마가 되었다.
그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사람을 바로 못 쳐다보고 처음엔 땅만 찍고 다녔지만, 30년에 걸쳐 골목 안을 드나들며 골목 사람들과도 친해져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엔 피사체들이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런 모습이 많이 담겼다.
그는 사람뿐 아니라 골목 안의 작은 동물들까지 사랑해 그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하지만 그는 부득이 골목 사진 연작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불행은 오히려 도시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정다운 골목들이 사라져가는 데 있었다. 집들이 헐린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골목길들까지 아스팔트로 뒤덮였다. 2003년 김기찬은 이렇게 썼다. "골목은 내 평생의 테마라고 했는데 내 평생보다 골목이 먼저 끝났으니 이제 골목안 풍경도 끝을 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는 2년 후 암으로 세상을 떴다. 68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였다. 김기찬 작가의 유족은 그가 평생에 걸쳐 찍은 사진과 필름 10만 점, 육필 원고, 작가 노트 등 유품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기증받은 작가의 자료를 박물관 수장고에 영구 보존할 예정이며, 10만 점에 달하는 필름은 디지털화와 색인 작업을 거쳐 박물관 홈페이지에 상설 전시할 계획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