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ZbkM5FQBUE?feature=shared
김대중 납치 사건(金大中拉致事件)은 일본에 망명 중이던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대중이 1973년 8월 8일 오후 1시경 일본 도쿄도의 그랜드팰리스 호텔 2210호실에서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5일 만인 8월 13일에 서울 동교동 자택 근처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제7대 대통령 선거 유세기간 중 김대중은 이번에 정권교체에 실패할 경우, 박정희가 영구 집권을 위해 총통제를 실시할 것이며, 계획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지를 호소하였다. 김대중과 박정희의 양자대결 구도로 진행된 선거는 야당 후보인 김대중이 정책 대결을 이끌며 선전하였다. 그러나 1971년 4월 27일에 치뤄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였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94만표 차이로 석패한 와중에, 대선 전후 기간 동안 김대중에게 불미스러운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워싱턴에서 미주 한민통을 조직한 김대중은 일본 지부를 조직하기 위해 1973년 7월 10일 일본에 입국하였다. 도쿄의 히비야 공원에서의 반(反)박정희 집회 참가를 앞두고 8월 7일에 도쿄 팰리스 호텔 501호에 투숙하고 있었다. 8월 8일 오전에 택시로 이동하여 그랜드 팰리스 호텔 2211호에 머물고 있던 양일동 민주통일당 대표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오후 1시 경 대화가 끝나고 방을 나오던 도중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고, 비어 있었던 2210호실에 감금되었다. 김대중은 이 방에서 마취약을 투여받아 의식을 잃은 상태로 납치되었다.
김대중을 넘겨받은 용금호에 있던 자들은 급히 출항한 뒤 김대중을 배밑 쪽 선실로 끌고가서 몸을 새롭게 묶기 시작했다. 손발을 꼼짝 못하게 묶고 눈에는 테이프를 여러 겹 붙인 다음 그 위에 다시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오른손목과 왼발목에 각각 수십 킬로그램이 되는 돌을 달았다. 마지막으로 등에 판자를 대고 몸과 함께 묶으며 "던질 때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 등의 말을 주고 받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발은 밧줄로 양쪽을 묶어서 당기려고 해도 끄떡도 않았다. 바다에 던질 계획을 하는데 솜이불을 붙여야 안 떠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상어가 먹기 좋다는 말도 하더라"라고 증언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서울방송)에 따르면, 당시 김대중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세례명:토마스 모어)로서 예수님께 간절히 "국민들이 불쌍하니 살려달라"면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ㅊㅊ
영상 - MBCNEWS
글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