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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남태령 언덕을 넘는 순간 난 우리의 역사를 내 안으로 받아들였어

무명의 더쿠 | 12-23 | 조회 수 32817

나도 뒤늦게 남태령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써보려고 해

할 말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더쿠에 꼭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만 딱 전할게 (그외에는 다른 곳에 정리해서 글 쓰려고 ㅎㅎ)

끓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 좀 오글거려도 이해해줘🥹



나는 역사의 소시민이었어

나라에 적당히 관심 있으면서 충분히 무관심했지

나라가 들썩이면 표피만 까뒤집고 대충 헤집다가 금세 등돌리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나였어




EdcMBv

(12월 3일 계엄령 보자마자 인스타에 올린 글)



12월 3일 그 밤, 지금 당장 국회로 와달라는 야당 당대표의 말에 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갈 수 없는 이유를 너무 많이 덧붙였었어 


아 오늘 잠을 못자고 출근해서 너무 힘든데

내일 6시엔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는데

나 몸이 너무 힘든데


내가 사는 경기도에서 국회까지는 1시간 20분

그렇게 멀게 느껴졌는데 참 우습지

내 생각이 행동까지 닿는 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멀었던 거야

고민 끝에 새벽이 되어서 나가려고 마음 먹은 순간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고 속보가 떴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마음 한 켠에 작은 의문이 들었어




나는 이대로 좋은가?

나라는 사람은 이대로 정말 괜찮은가?




차라리 무관심하게 퍼질러 잠이나 자든가, 발만 동동 구르며 밤새 tv만 들여다보고 있는 내 꼴이 참 싫었어 

나는 내가, 평소에는 젠체하면서 막상 옳다고 믿는 것을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뛰쳐나가지 못한 사람들 저격 xx 그냥 난 내가 훨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잘난 척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부끄러웠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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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밤, 탄핵 의결 전날 밤이 위험하다해서 새벽까지 있다 왔어)


그 뒤로 집회에 계속 나갔는데 이번 주말에는 생리 때문에 나갈 수 없었어 pms며 온갖 생리와 관련된 증상은 다 겪는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더쿠에서 남태령에서 가로막힌 농민들의 소식을 들었어

트랙터 창문이 깨지고 얼어붙는 추위에 홀로 앉아 있던 농민을 보았어

그곳을 지키겠다고 빛나는 응원봉 들고 모인 앳된 소리를 들었어


이 가여운 사람들을 두고 내가 어떻게 침대에 누워있을 수가 있었겠어

나 또한 힘없는 가여운 사람인데 어떻게 함께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

듬성듬성한 사람들 사이로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을 아는데 어떻게, 그 속을 내가 파고들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


그렇게 밤 11시 10분, 남태령으로 출발했다




사실은 남태령으로 가려고 준비하면서도 망설였어

12월 3일 밤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진 의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망설였었어

그런 나를 이끌어준 건 먼저 도착한 불빛들이었다

광화문에서부터 와서 이미 벌벌 떨며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의 뒤를 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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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서 남태령으로 가는데 가로막고 있는 경찰 차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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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땅은 시민, 안전한 땅은 경찰이 선 거 나도 영상 찍었는데 올릴 방법을 모르겠다ㅠㅠ)



사당역에 주차해두고 택시를 잡았는데 2분쯤 타니까 더 갈 수가 없더라 경찰이 차벽으로 남태령을 막아뒀거든


언덕길에서 내려서 천천히 그 길을 오르는데 그때 느꼈어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남태령 언덕을 넘는 순간, 난 우리의 역사를 내 안으로 받아들였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처럼 내가 할 수 있을까

독재 정권에 항거한 민주주의의 수호자처럼 내가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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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찍은 트랙터와 불빛을 든 시민들)



이제는 그거 할 수 있겠더라

먼 시대의 영웅처럼 느껴졌던 이야기들 어느새 그게 내 이야기가 되어있었어

발걸음 한 번 떼어보니 멈출 수가 없었어

죽음을 각오한 자유로의 열망,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투지 그런 결연한 것들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아파서, 도무지 함께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어서.. 다 사람 사는 이야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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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넘지 못한 농민들의 트랙터)



남태령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나는 민주 투사가 되었어


철인 같던 농민들은 밤새 사람이 줄어들까 불안에 떨었고

불빛 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앳된 목소리로 추위에 떨었지만

그 평범한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서로를 지킨 민주 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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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등을 지킬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던 순간)


내란 당사자들은 죽어도 모르겠지

그날 밤 농민을 가로막은 경찰의 방패가 얼마나 많은 민주 투사를 만들었는지



이제 나는 안다 우리의 역사를

가여운 사람들의 연대가 일으키는 변화의 물결을



더 이상 나는 역사의 소시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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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고 모여든 민주투사들)


(+)


소소한 이야기 좀만 더 추가하자면


난 밤 12시쯤 남태령에 도착했고 아침 11시쯤 본 거대한 인파에게 뒤를 맡기고 집으로 왔어 ㅎㅎ

그리고 오전에 도덕 교사로서 시민 발언했어 현장에서 덜덜 떨면서 휘갈겨써서 내용은 엉망이었고 ㅠㅠ 처음해봐서 말 씹은 것도 많았고 목도 다 쉬었지만 뿌듯했어 (말하다가 갑자기 나 어디쯤 말했더라?😮하고 까먹어서 말한 거 다시 말하고 난리났었지만 ㅠㅠ) 아래는 내가 새벽에 마구 쓴 발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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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난 페이커 그리고 티원팬이야 (〃⌒▽⌒〃)ゝ

롤방에도 갔다왔다고 글썼는데 ㅎㅎ 전농tv에 보인 내 응원봉 캡쳐 두고 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큼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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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티원ㅍ응원봉 ㅎㅎ!)




마지막으로 남태령에서 함께해준 모든 민주투사들, 먹거리며 핫팩이며 보내준 민주투사들, 계속 상황지켜보고 관심 가지고 더쿠에 글써준 민주투사들 그외에도 많은 민주투사들!



사랑합니다 연대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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