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명랑소녀는 이렇게 성공했다... 장나라가 세운 대기록 (가요대상 +연기대상 석권)
[리뷰] 2002년가요대상·2024 연기 대상 석권한 장나라
"연예인이 되고 늦게 깨달은 게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저를 좋아해 주고 드라마를 봐주신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되어 감사하고도 죄송했다. 앞으로도 '궁금한 배우'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배우 장나라가 '2024 SBS 연기대상'에서 생애 첫 대상의 영예를 수상하며 남긴 소감이다. 지난 21일 밤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SBS 연기대상에서 <재벌형사> 안보현, < 7인의 부활 > 황정음, <커넥션> 지성, <지옥에서 온 판사> 박신혜, < 열혈사제2 > 김남길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대상은 <굿파트너>에서 열연한 장나라에게 돌아갔다.
장나라는 대한민국 대중문화계에서 가요대상과 연기대상을 모두 석권한 인물로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장나라와 비슷하게 다른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한 사례로는, 가요대상-연예대상을 수상한 김종국과 이효리가 있었다. 하지만 연기대상과 가요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오직 장나라가 유일무이하다.
유일무이한 장나라
'가수'로서 장나라는 지난 2002년 KBS와 MBC에서 가요대상을 수상했고, 2024년에는 '배우'로서 SBS에서 연기대상을 받았다. 무려 22년의 세월에 걸쳐 방송 3사의 대중문화 시상식 대상을 모두 받은 건 앞으로 누구라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기록이다.
장나라는 2001년 데뷔 이후 한국에서 '여성 멀티테이너'로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1집 앨범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를 통해 솔로 가수로 연예계 경력을 시작한 장나라는 같은 해 MBC 시트콤 <뉴 논스톱>을 통해 배우로도 활동을 병행했다.
2002년 첫 정극 주연작인 SBS <명랑소녀 성공기>가 최고시청률 42.6%에 이르는 대히트를 달성하며 장나라의 전성기가 열렸다. 같은해 발표한 2번째 정규앨범 'Sweet Dream'도 동반히트를 달성하며 장나라는 가수와 배우로서 모두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한다.
2003년 영화 <오 해피데이>의 실패로 잠시 주춤했던 장나라는 이듬해 돌연 중국에 진출한다. 당시 중국은 한류 인기가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던 시점이었다. 일시적인 활동으로 예상하고 가볍게 시작했던 중국 진출은 장나라에게 또 다른 전성기를 열어줬다.
장나라는 중국 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2005년 드라마 <디아오만 공주>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중국 드라마에서 주연배우로 출연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가수로서도 한국에서 인기를 능가할 만큼 대단한 활약을 펼쳐서 중국 현지 가수들을 제치고 앨범 판매 1위, '2005년 대륙 최고 인기 가수상', '아시아 최고 여자가수상' 등을 수상했다. 중국 활동에 주력하던 2004년에서 2010년까지 중국에서 톱급 여성 연예인에게만 붙여지던 천후(天后)라는 애칭은, 장나라의 중국내 위상을 잘 보여준다.
2010년대 이후 다시 한국으로 주요 활동 무대를 옮긴 장나라는 배우로서의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장나라의 커리어에 있어서는 일종의 과도기였다. 20대 시절의 장나라는 사실 인기에 비하여 연기력으로 주목받는 배우는 아니었다. 특유의 귀엽고 앳된 동안 외모와 목소리로 인하여 로맨틱 코미디물에 특화된 배우가 이미지 강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한정된 연기폭만 소화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작용했다.
30대에 접어든 장나라는 이미지 변신에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씩 성인 연기자로서 자신만의 보폭을 넓혀 나갔다. 2011년 <동안미녀>에서는 동안의 외모를 가진 30대 여성이 어린 동생을 명의로 회사에 위장취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며 장나라 본인의 이미지를 비틀어낸 캐릭터를 선보이며 연기력으로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3년 학원물인 KBS < 학교 2013 >에서는 기간제 교사 역할을 맡아 단독 주연이 아닌 작품에도 출연했고, 2014년 MBC <오래된 안녕>처럼 단막극 출연도 마다하지 않으며 경험을 쌓았다.
배우 장나라
2010년대 중반 들어, 장나라가 주연으로 연기한 주요 캐릭터들은 대부분 남편과 아이가 있고 저마다의 콤플렉스를 간직한 '기혼 여성'이다. <오마이베이비>의 장하리,<한번더 해피엔딩>의 한미모,<고백부부>의 마진주, <황후의 품격>의 오써니, <VIP>의 나정선, <패밀리>의 강유라, <나의 해피엔드>의 서재원 등은 모두 장나라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30~40대에 가정사로 비슷한 고민을 겪었을 법한 현대 기혼 여성들의 결핍과 극복, 성장을 그려냈다는 공통점을 지닌 캐릭터들이었다.
만일 장나라가 인기가 한창 많았던 20대 시절의 명랑소녀나 공주 이미지에만 내내 안주했다면, 성인 연기자로서의 변신 과정에서 연기력과 미스캐스팅 논란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나라는 오히려 자신의 외모적 특징을 영리하게 활용하면서 오직 장나라만이 해낼 수 있는 차별화된 성인 여성 캐릭터를 정립해 나갔다. 순수하고 성실한 인물이 극적인 사건에 휘말려 시련을 극복하며 점점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그렇게 장나라는 점점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됐다.
그리고 <굿파트너>의 차은경은 장나라가 전작들에서 차근차근 쌓아온 내공을 집대성한 것 같은 캐릭터였다. 성공한 이혼 변호사인 차은경은 철저히 결과 지향적이고 효율적인 삶을 살아온 커리어우먼이지만, 블륜을 저지른 남편과의 이혼소송, 후배 한유리와의 관계 속에서 점점 변해가는 인간적인 모습들을 잘 표현하며 호평을 받았다.
장나라는 지난해 한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와 연기 변신에 대한 어려움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당시 장나라는 "한때 '장나라는 귀여운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할 거야'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어렸을 때는 그런 이야기가 저를 파이팅 넘치게 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장나라는 "나이를 먹을수록 연기에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저기 빛이 보이는데 아무리 헤엄을 쳐도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는 너무 괴로웠다"면서 "신께서 재능을 주실 거면 왕창 주셔서 누가 봐도 잘하는 재능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나라는 세수하다가 문득 픽 웃음이 나면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찾아왔다고 밝혔다. "내가 이 재능마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엄두도 못 냈을 텐데, 그러자 '어우,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더라"고 고백하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장나라는 <굿파트너>로 흥행 대박과 연기대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더 나은 배우로 인정받겠다'던 본인의 다짐을 그대로 실천했다. 20년 전의 귀엽고 사랑스럽던 '명랑소녀'는, 세월의 흐름에도 외모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내공은 더욱 깊어진 '멋진 언니'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본인의 슬럼프와 한계에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뚝심 있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장나라의 자존감이 만든 성과였다.
이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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