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현장에 출동할 때 여성 소방관을 제외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보호와 배려라는 명목으로 여성을 특정 업무에 배치하지 않는 것도 결국 성차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진정을 제기한 여성 소방관 A씨가 소속된 소방본부장에게 현장 출동 시 여성대원 배제 등 성차별적 업무 배치를 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간부를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화학차 운전 담당으로, 지난해 4월 충남 홍성군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여성이 장거리 운전을 하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출동에서 배제됐다. A씨의 팀장인 B씨는 대신 현장에서 다른 차량을 담당하던 남성 대원을 산불 현장에 배치했다.
B씨는 담당 업무는 경력 등을 참고해 결정하는 것이라며, A씨를 제외한 것은 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고려한 배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씨가 여성이기 때문에 출동에서 배제시킨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참고인 진술 등을 바탕으로 B씨가 여성이 운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에 A씨가 남성 대원과 비교했을 때 운전 업무를 수행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남성 대원을 배치하는 것이 팀장인 B씨의 재량에 따른 판단이라 하더라도,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A씨에게 출동 의사 등을 살펴본 정황이 없었다고 봤다.
인권위는 "'여성은 장거리 운전에 적합하지 않다'거나 '급박하고 열악한 산불 현장에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B씨의 주장은) 성차별적 편견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와 배려의 명목으로 여성들을 특정 업무에 배치하지 않는 것은 성차별적 인식의 또 다른 단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인권위가 2015년에 실시한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여성 소방 공무원의 39.9%(195명)가 직장 내 차별을 경험했다. 이 가운데 56.9%(111명)는 '성별로 인해 차별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김세원 기자 saewkim@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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