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qoo

케톡러가 남태령으로 보내서 다녀온 사람

무명의 더쿠 | 02:13 | 조회 수 55402

*너무 길고 뽕차있어서 오글거림 주의

*최대한 얼굴 안나오게 움짤 만들었는데 혹시 얼굴 보이거나 본인 특정 가능하면 삭제함

*퇴고 안하고 막 갈겨써서 오타에 띄어쓰기 엉망에 비문에 뭔말인지 몰라도 그냥 "느껴"


퇴근 후 광화문에서 행진만 깔짝여서 아쉬운 마음에 케톡에 글을 올렸더니 갑자기 댓글이 와다다 달리면서 남태령으로 가라는거야. 마침 내가 대학을 4호선 라인으로 나왔고 지금 사는 곳이 남태령과 엄청 멀지 않았고 여튼 그런 이유로 아 그럼 가보자고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어. 


역에 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친 계단을 올라갔어. 사람 두 명 너비의 계단에 앞뒤 사람이 꽉 차서 올라가는데 진짜 죽을뻔했어. 내가 아침에 천계를 안타서 여기서 타나 싶었어. 진짜 너무 힘들어서 ‘나는 여기 왜 있지?’라는 생각을 여기서부터 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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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계단 사진 증거자료 첨부>

 남태령에 8시즈음 도착했는데 그 땐 무슨 말이 있었냐면 경찰이 채증을 하니 마스크를 쓰고 응원봉을 숨기라고 했어. 농민들과 많은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도로 가로등이 있어도 뭔가 어두컴컴한 느낌이었어. 특정하기 힘든 경광봉 같은 것만 몇 개가 켜져있었어. 이 때만 해도 조금 무서웠어. 그러다 시간이 30분, 1시간쯤 지났나? 사람이 엄청 많아졌고 누군가 이야기 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가방에 넣어놓은 응원봉을 하나 둘 켜기 시작했어. 이 정도 사람이면 안전하겠다. 그러니 좀 더 밝게 빛날 필요가 있다. 라고 다같이 생각한거야. 그랬더니 엄청 밝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게 제법 위협이 되었는지 경찰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다들 그 소리가 묻히도록 더 크게 차 빼라를 외쳤어. 


 폰 밧데리가 죽어가지만 보조배터리가 없었던 나는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볼 순 없었어. 혼자 와서 이야기 할 사람도 없었고 마침 옆 자리 사람이 더쿠하는 걸 훔쳐봐버려서 말도 못 걸었음ㅠ 칼바람 불어서 모든 깃발의 문구를 항시 읽을 수 있었던 터라 깃발 문구도 다 읽어버렸으니 이제 할 게 없었어. 자유발언에서 소수자 분들의 발언에 함께 호응하고 파이팅해주화 농민분들도 이제 신기하지 않기 시작했어. 


 그 쯤이 10시쯤인가 케톡에 시민들에게 소속이나 누가 보냈냐고 물어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 이미지가 공유되기 시작함. 프락치 얘기도 나옴. 그래서 심심한 김에 아스팔트에 앉아서 ‘그래서 나는 누가 보내서 여기에 이러고 있나’를 생각해봤어. 처음엔 케쪽이들이 가라고해서 왔는데,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 왕덕이 잡혀가나 케쪽이들이 잡혀가나 3분정도 고민했어. 그리고 그 다음엔 석열이 명신이 덕수 세훈이가 보낸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어. 

아니 ㅅㅂ 11월의 나에게 ‘민중 가요 알아?’라고 물어보면 나는 ‘무슨 장르야? 나 이지리스닝만 듣는 탑백귀인데’라고 대답했을텐데 12월의 나는 투쟁!을 외치며 고추농사 조지고~ 이러고 있는데 그런 나를 만든건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들인 것 같은거야. 저놈들 아니었으면 응원법도 콘서트 가는 지하철에서 벼락치기하는 내가 이러고 있을리가 없는거야. 


밤을 지내며 더쿠 글 보면서 덕분에 화장실도 찾아서 가고, 화장실에서 문이 무겁다며 잡아주는 소녀도 있었어. 너무나 천사였음. 여튼 그러다 차가 빠지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남태령역에서 막히고 다시 주저앉아서 또 생각을 했어. 난 왜 집에 안가고 이러고 있나. 여기 앉아있는 젊은 여성들은 왜 여기 있나. 저 춤을 잘 추는 휀걸들은 왜 여기 있나. 사람들은 왜 돈을 들여 우리를 도와줄까. 왜 함께 밤을 지키며 영상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을까.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석열 명신 덕수 세훈이가 나빴다. 이 놈들이 아니라면 이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농민들도 고생하지 않고 트랙터도 밭에 있었겠지 싶은거야.. 천벌받을 놈들. 


https://img.theqoo.net/AjCuNV
<1시 35분에 차 다 뺀 줄 알고 환호했을 때>


 그러다 6시 반쯤에 나는 지하철로 내려왔어. 더 버티고 싶었는데 애초에 광화문만 가볍게 갈 생각이어서 옷도 가벼웠고 담요와 핫팩을 받았지만 그걸로는 남태령의 냉기를 해결할 수 없었던터라 정말 한계였어. 내려가면서도 첫차 타고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조금 회의적이었어. 일요일 아침에 누가 새벽에 움직이겠어. 지하철 역사 안에 비교적 따뜻한 공기 속에 기둥과 벽에 기대어 앉아 자고 있는 2030 여성들이 굉장히 많아서 마음이 아팠어. 난 집이 근처니까 집에서 회복하고 다시 오후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카드 찍고 내려가서 멍하니 있는데 내가 타야할 지하철보다 역방향 지하철이 먼저 왔어. 남태령은 한 통로에 양방향 지하철이 같이 내리는데 그 통로의 폭이 다른 역보다 조금 좁은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역방향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어. 근데 진짜 문이 열리고 소녀들이 한가득 벅.뚜.벅.뚜. 씩씩하게 걸어나와서 그 통로를 가득 채우는거야. 한참 긴 줄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거야. 나를 비롯해서 집에 가려고 서 있던 1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거기서 다 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어. 짠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소녀들이 또 같이 파이팅!!!하고 올라가는거야. 타야할 지하철이 오기 전까지 파이팅을 계속 외쳤어. 


텅텅 빈 지하철에 올라타서 여전히 텅텅 빈 움직이는 지하철을 느끼면서 생각했어. ‘왜 저 사람들은 이 새벽에 저렇게 많이 왔을까?’ 저 사람들도 밤 늦게까지 유투브를 봐주었으니 왔을거잖아. 그런데도 첫 차를 타고 와주었잖아. 역시 석열 명신 덕수 세훈이 때문인가 생각을 잠시 했어. 근데 아닌 것 같아. 


나는 소녀들이 오는 걸 봤어. 나와 함께 토요일 밤에 남태령에 도착한 여자들. 미친 계단을 오른 여자들. 계속 증가했던 여자들. 응원봉을 하나 둘 밝히던 여자들. 60대가 어린 축이라던 여성 농민 사회자. 어린 목소리로 자유 발언 하던 여자들. 무지개 깃발을 흔들던 여자들. 남태령 역에 서있을 때 내 앞에서 흔들리면 여대 깃발. 새벽이 올때까지 끊임이 없던 음식과 핫팩과 방석과 담요를 보내준 사람들. 후원을 쏘는 사람들. 함께 방송으로 지켜봐준 사람들. 그리고 밝아진 새벽에 지하철 문이 열리고 걸어 나온 여자들. 소녀가 왔어. 


https://img.theqoo.net/tWRmks
<5시 24분 남태령역 앞 다양한 깃발>


왜 소녀냐고 말했냐면, 일단 진짜 다들 소녀였어. 작은 패딩과 담요로 둘둘 말은 모습이 여중~여고생때의 바이브가 있었어. 그리고 나는 소녀는 걍 어린 사람이 아니라 알건 엥간 알아서 두려움도 있지만 용기로 그걸 이기는 존재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남태령 농민들도 소녀인거임. 60대 남성 농부 소녀가 지은 쌀로 만든 밥맛 맛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얼굴에 다들 두려움이나 추위에 대한 걱정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걸로는 꺼지지 않았던 빛나는 용기를 가지고 너무 씩씩한 소녀들이 내렸어. 진짜 무슨 구원자? 용사? 그런 것 같았어. 요즘 용사는 롱패딩이 장비인거임. 첫 차 타는 덬들이 밤샘하는 방송 보고 참을 수 없어서 출발했다는 글을 읽으며 화장실에 쌓여있는 물품을 보며 여자들이 왜이렇게 사랑이 많아, 2030여성을 사랑하게되 라는 글을 읽으며 생각했어. 


우리는 단순히 나쁜 놈들 때문에, 그 놈들을 싫어해서 혹은 징벌하기 위해 여기 모인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서 여기 왔다고. 과거는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시절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보냈다고. 조선시대 동학 농민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오늘의 전봉준 투쟁단을 보냈고, 옛날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소년을 보냈고 오늘의 소녀들로 나타났다고. 우리는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서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고 그 자리에 있었다고. 우리는 사랑으로 모였기 때문에 결국 이길거라고. 


 세 줄 요약 

1 여자들 ㅈㄴ 멋있었음 

2 몰랐는데 농민 소녀들도 ㅈㄴ 많은 것을 연대하고 있었음 

3 그걸 다 배운 우리는 ㅈㄴ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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