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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내란이 벌어졌다···한국인이라면 가슴 쓸어내릴 영화 ‘시빌 워’

무명의 더쿠 | 12-22 | 조회 수 2239
전쟁이 발생했다. 내란이다. 거리에 무장군인들이 돌아다닌다. 일부 군인은 민간인을 학살한다. 총을 겨눈 군인에게 ‘나도 이 나라 사람’이라고 호소하자 ‘어느 쪽?’이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어느 쪽이라고 답해야 살 수 있을까. 무엇이 옳은 답일까.

지난달에 개봉했다면 무감하게 봤을 영화가, 지금은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미국 내란을 소재로 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이야기다.



‘시빌 워’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중소 영화들을 주로 제작해 온 A24가 만든 첫 상업 블록버스터 영화다. 제작비 5000만달러(한화 약 723억원)를 들이고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커스틴 던스트를 캐스팅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고 내란 혐의로 헌정사상 첫 출국 금지까지 된 대통령을 둔 한국인들로서는 A24의 첫 블록버스터라는 점보다 소재가 ‘내란’이라는 점이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미국에 내란이 일어난다.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연합한 ‘서부군’과 연방 정부군이 싸우고 있다. 힘을 잃은 대통령은 백악관에 숨었다. 전설적인 사진기자 리 스미스(커스틴 던스트)는 동료 취재기자 조엘(와그너 모라), 새미(스티븐 헨더슨), 그리고 갑자기 끼어든 초보 사진기자 제시(케일리 스패니)와 함께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한다. 영화는 그 여정을 따라간다.


내란이 왜 일어났는지, 일어난 지 얼마나 됐는지 같은 설명은 없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관객을 다짜고짜 한창 전쟁 중인 미국 한복판에 던져놓는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전쟁이 발생한지 꽤 됐으며, 달러의 가치가 폭락했고, 서부군이 승기를 잡았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전쟁은 구체적인 동시에 추상적이다. 귀청을 찢는 총소리, 게임 화면처럼 움직이는 밤하늘의 전투기, 새빨간 피, 널브러진 시체. 이런 것들은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상상하기 어려운 건 총과 폭탄 사이의 순간이다. 총이 발사되기 전, 폭탄이 터지기 전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시빌 워’는 마치 로드트립 영화처럼 리 일행을 따라가며 전쟁의 참상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전쟁은 모든 인프라를 파괴한다. ‘물을 달라’며 시위하는 시민들과 경찰, 군인이 충돌한다. 전쟁 중에도 호텔은 문을 열고 기자들은 취재 경쟁을 한다. 아이들은 피란민 촌에서 축구를 한다. 혼란한 상황을 틈타 약탈과 폭력이 성행한다. ‘우리는 이 상황과 좀 거리를 두고 싶다’라며 마치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사는 이들도 있다.



전쟁 영화라면 반드시 나오는 전우애, 애국심, 눈물, 분노 같은 뜨거운 감정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영화가 웬만한 다큐멘터리보다도 더 건조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연히 알려줘야 할 것 같은 ‘분열의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불친절함으로 오히려 보편성을 획득한다. 영화의 배경은 디스토피아가 된 미국이지만, 그 자리에 다른 나라를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

기자를 꽤 현실적으로 그렸다. 상업 영화에 등장하는 기자 캐릭터는 대개 너무 정의롭거나, 너무 악독하거나, 너무 한심하다. 리 일행은 다행히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대통령을 취재하겠다는 목표만 갖고 앞으로 나아간다. 베테랑 기자인 리, 조엘, 새미가 괴로워하면서도 자꾸 끔찍한 취재 현장으로 뛰어드는 이유는 대단한 사명감 때문이라기보다는, 많은 직업인으로서의 기자들이 그렇듯 새로운 뉴스를 보도하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러닝타임 109분.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40769?ntype=RA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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