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한 옛날에 다섯 아이가~ 우주 멀리 아주 멀리 사라졌다네~ 이제 모두 용사 되어 오! 돌아왔네~ 후뢰시맨 후뢰시맨 지구방위대~♪”
이 노래가 대한민국 전역의 TV에서 울려 퍼진 게 1989년이었다. 형형색색 쫄쫄이 옷 차림에 오토바이 헬멧까지 쓰고, 지구를 침공한 괴물을 물리치던 5인조 수퍼 히어로 ‘후뢰시맨’은 그야말로 후뢰시(flash)처럼 순식간에 비디오 대여점을 점령하며 전국의 코흘리개들을 홀려버렸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2024년, 후뢰시맨이 서울에 왔다. 당시 실제 연기자들을 초청한 국내 최초 팬 미팅이 열린 것이다. 후뢰시맨이 일본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이제는 장성한 옛 꼬마들은 지하철에 환영 광고판까지 설치했다. 지난 4월 서울 등촌동 공연장 스카이아트홀에 500여 명이 운집했다. 전원 환갑이 넘은 왕년의 용사들은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백발이 된 리더 ‘레드 후뢰시’ 다루미 도타(66)는 “무척 오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조금 오래 걸렸다”며 감격에 젖었다. 수염 거뭇거뭇한 아재들이 객석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했다.
추억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후뢰시맨의 뒤를 이어 ‘우주특공대 바이오맨’과 ‘빛의 전사 마스크맨’도 곧 한국 땅을 밟는다. 이름하여 ‘추억 소환 프로젝트’. 이쯤에서 이 ‘맨’들의 정체가 뭔지 밝혀둬야겠다. 그 역사가 50년에 이르는 일본 아동용 TV 드라마 ‘수퍼 전대(戰隊)’ 시리즈. 영어로는 ‘파워레인저’쯤 되겠다. 미국의 ‘스파이더맨’ 등과 유사하지만 주로 5명(레드·블루·그린·옐로·핑크)이 팀을 이뤄 싸우다가 나중에는 거대 로봇을 소환해 악당을 때려부수는 특유의 장르. 흔히 ‘후바마’로 불리는 후뢰시맨·바이오맨·마스크맨이 크게 히트했다. 올해는 후뢰시맨, 내년에는 바이오맨·마스크맨이 국내 소개 35주년을 맞는다.
행사를 기획한 게임 회사 컴투스홀딩스 관계자는 “실사(實寫) 특수촬영 히어로물의 원조들과 소통하며 유년의 기억을 되살릴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도 광팬이 있었다. 이은표(37) 팀장이다. 각지에 흩어져 생업을 잇고 있는 은퇴한 히어로들에게 알음알음 접촉했고, 차츰 연락망을 넓히며 5년 동안 기획을 추진했다. 이 팀장은 “일본의 경우 ‘수퍼 전대’ 여성 출연자만 모아 팬 미팅을 열 정도로 시장이 크지만 국내에서는 전례 없는 시도”라며 “고가 장난감 등을 컬렉션하는 기존 핵심 마니아만 500명에 달하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반응이 있으리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돈이 된다. 내년 2월 예정된 팬 미팅 행사는 입장료만 30만원임에도 이미 300석 가까이 판매됐다. ‘덕후’는 기꺼이 지불하기 때문이다. 후뢰시맨 팬 미팅 당시에는 20만원 상당의 한정판 굿즈가 1500여 개 팔려나갔다. 2018년에는 후뢰시맨 촬영용 의상 한 벌이 일본 옥션에 매물로 나와 155만3000엔(약 1600만원)에 낙찰됐다. 구매자는 한국인. 문제는 관세였다. 400만원이 넘었다. “이 의상은 세상에 하나뿐인 희귀품”이라며 “관세법상 수집품에 해당하니 세금 부과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논의 끝에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은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 내렸다. “역사적인 수집품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역사가 된 추억. 닉네임 ‘징비록’으로 유명한 수집가 김준형(36)씨는 지난해 파워레인저 배우 착용 의상(1300만원)과 올해 마스크맨 촬영 사진 원본 필름(700만원) 등 값비싼 사료를 꾸준히 사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약 2억원을 썼다”고 말했다. “어릴 적에는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하니 사고 싶어도 침만 삼키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른 수집가들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구매력이 생기니 당시 이루지 못한 욕망을 해소하는 거죠. 남아 있는 게 많지 않아 업체에 제작 의뢰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CG(컴퓨터그래픽)가 없었잖아요. 세트장에 진짜 폭탄 터뜨리고, 물속에서 촬영하다가 익사 위기도 넘기고….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아날로그의 흔적이 애틋함의 이유 같아요.”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4/12/21/MZISJ4SNKZFJJCK6CNMYUGNM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