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 찍으신 사진들
여러 현장을 다니며 경찰 폭력을 겪으셨지만 농민집회에선 거의 죽을뻔했다고 나중에 말하심
전용철 농민분 사망하신 농민집회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는 작가님
“전용철 농민 돌아가신 15일 저녁 나도 카메라 들고 여의도에 있었어요. 옆에 물대포가 떨어지길래 놀라서 돌아봤어요. 나는 물대포가 그렇게 센지 몰랐어요. 피하느라고 소나무 뒤로 피하는데, 소나무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이렇게 가늘어요. 그걸로는 의지가 안되지요. 사람들이 와서 나보고 괜찮느냐고 한마디 하는 순간 그사람도 나도 젖어서 얼음이 얼어요. 나도 그날 12센치 상처가 났어요.“
“1001, 1002, 1003 부대가 또 급습하러 왔어요. 우리끼리만 급습이라고 합시다. 그건 유린하는 거예요. 그 때 내 혼이 놀라서 떨어졌어요. 문학적인 표현이려니 생각하세요. 내 영혼을 주워가지고 가는 거예요. 그래 맞은편 소나무 그 둔덕 위로 올라가 나무에 기대고 앉았어요. 저 사람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주위에 아주 많았어요. 내 바로 앞에서 전용철 농민이 맞아 쓰러지는 것을 봤어요. 내 목숨이 전용철 농민하고 몇 미터 차이로 살아남았지요. 브레히트의 말처럼,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어요."
왜 굳이 위험한 현장을 찾아다니냔 주변의 만류에 작가님이 대답하신 말
“사진을 찍으려면 반드시 현장에 있어야 한다. 나는 직업 사진가가 아니다. 나의 약점이다. 그래도 현장에 나간다. 글도 못 내놓는 내가 그들의 외로움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며 찍는다. 그래서 내 사진들이 오래 남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오백년쯤 버텨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도 난쏘공이 읽히는 현실이 전혀 기쁘지 않다고 말씀하심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 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조세희 작가 인터뷰 중)
작가님은 지난 2022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심 아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작가님이 당부하신 말
“젊은이 여러분들께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독재자들에게 잘 저항하지도 못했고, 항복도 받아내지 못했고,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비관주의자나 냉소주의자도 돼선 안 됩니다. 비관주의는 나쁜 정치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이 땅의 희망이고 주인이고, 세계 역사에 참여해 같이 해야 할 미래입니다. 절대로 현실을 비관하거나 냉소하지 마세요. 분노해야 할 때는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태령 현장에서 함께 연대해 농민분들을 지켜낸 덬들 따뜻한 음식과 음료를 보내준 덬들 라이브를 밤새 지켜보며 마음졸인 모든 덬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 우리 꼭 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