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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ritic]
방시혁, 민희진과 하이브 걸그룹의 시간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하이브는 왜 이렇게 된 걸까. 하이브는 독보적인 케이팝 1등 기획사요, BTS와 함께 케이팝의 긍정적 영향력을 상징하던 존재였다. 비판과 논란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들이 타고 있는 대세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계가 엉켜 버린 것만 같다.
지난 4월에 터진 민희진과의 사내 분쟁은 뉴진스와의 전속 계약 분쟁으로 발전했다. 12월이 된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 여덟 달 동안 상호 폭로전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하이브의 이름엔 촘촘한 칼집이 새겨졌다. 뉴진스의 거취가 결론이 나더라도, 이 회사 이미지에 각인된 오점이 말끔하게 씻어질 것 같지는 않다.
하이브의 시간이 뒤틀리기 시작한 순간을 되짚어 보면 방시혁이 걸그룹 제작의 꿈을 실행에 옮기면서다. 민희진 영입과 뉴진스, 르세라핌, 아일릿의 연이은 데뷔, 민희진의 기자회견 등 사태는 거기서부터 연쇄됐다.
하이브는 2019년 '여자친구'가 소속된 쏘스뮤직을 인수하기 전까지 걸그룹을 보유한 적이 없었다. 여자친구 역시 하이브가 직접 제작한 그룹은 아니었다. 이 정도 규모의 기획사가 보이그룹만 운영하는 건 희귀할뿐더러 사업적으로 불균형한 상태였다. 빅히트 엔터는 다른 기획사들을 공세적으로 인수한 이후 하이브로 재편되었고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했다. 걸그룹은 하이브의 2차 사업 확장의 핵심 키워드였으며, 방시혁에게는 10년 전 글램 제작 실패 이후 오래된 갈증이었다.
이 과정은 급격하고도 무리하게 진행됐다. 재작년부터 2년 사이에 르세라핌, 뉴진스, 아일릿이 데뷔했다. 아무리 규모가 큰 회사라고 해도 같은 시기에 걸그룹 세 팀을 데뷔시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정된 회사 자원을 공유하는 건 물론, 걸그룹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파이가 겹칠 수밖에 없다. 민희진과의 분쟁을 촉발한 것 역시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했다는 문제제기였는데, 기존 그룹의 기획자 입장에서 같은 회사의 후속 그룹을 제로섬 게임의 경쟁자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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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고 가야 하는 건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존재다. 걸그룹 세 팀의 데뷔는 멀티 레이블로 상징되는 사업 확장 노선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내부 의사결정 구조가 방시혁 개인에게 지배된 측면이 엿보인다. 멀티 레이블 체제라곤 하지만, 빅히트와 쏘스뮤직, 빌리프랩은 방시혁이 그룹 제작에 간여하고 총괄 프로듀싱을 하는 시스템이다. 그는 음악인 출신이자 현역 프로듀서로서 예전부터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즐기고 노출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돌 제작이 자신의 자아실현을 거는 특수한 작업이라고 할 때, 오랫동안 보이그룹만 제작했던 건 그에게 결여감으로 남았을 것이다. 걸그룹 동시 다발적 런칭은 민희진이 전담하는 그룹과 별개로 자신이 전담하는 그룹이 필요했던 상황의 반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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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이브는 보이그룹 하나만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다. 국내외 많은 멀티 레이블이 있고 특정 그룹의 팬덤이 회사 운영에 의견을 낼 명분이 줄어들었다. 단시간에 덩치를 불린 만큼 오너의 힘도 비대해졌고, 내부에서 견제가 작동하는 브레이크도 사라졌다는 뜻이다. 얼마 전 폭로된 내부 문건을 봐도 이 회사 깊은 곳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업계 동향 리뷰라고 회람되는 것이 읽는 이의 심기를 눈치 보고 보살피는 소리들로 점철돼 있다. 그에 따라 보고되는 현실인식 역시 비틀려 있었다.
민희진과의 분쟁도 그렇다. 어도어 레이블을 세운 뒤 대표 이사는 물론 이사회까지 모두 민희진 측 인사로 채우게 했다. 이 사실이 경영권 분쟁의 취약지점으로 현 사태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 그 동기가 민희진에 대한 개인적 믿음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합리적으로 자문을 받는 의사 결정 체계가 의장 개인의 판단에 우선한다면, 대기업 규모의 회사에서 이런 자해적 결정이 내려졌을지 의문이 든다.
민희진과의 분쟁은 하이브가 빠진 수렁이다. 하지만 이 사안만으로 하이브의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다. 엔터 기업으로서 전례 없는 규모로 성장했지만, 하이브는 과연 그에 걸맞은 조직문화와 체계도 갖추었을까? 문어발처럼 뻗은 레이블들과 각 급 단위 조직들은 의장 개인의 고집과 욕망과 충동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상태일까? 이 질문들에 답을 내릴 책임은 민희진이 아니라 하이브, 무엇보다 방시혁 자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