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 학자들이 단체로 몰려와
"훈민정음 반포하시면 안됩니다아아 중국에 반하는 행동입니다아아" 해서
세종대왕 혼자 학자들이랑 설전을 벌이는데
마지막에 정창손이 "미개한 백성이 글자 좀 안다고 유교를 공부합니까?"라고 함
그리고 세종이 극대노 했는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중 세종이 유일하게 존나 화낸 장면이라고 되어있음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 하면서 군상(君上)의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냐고 권위에 호소하고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니들이 뭘 안다고 왈가왈부냐, 나보다 잘났냐 시전도 하시고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옛날 말 끄집어내서 꼬투리 잡고
"드디어 부제학(副提學) 최만리(崔萬理)·직제학(直提學) 신석조(辛碩祖)·직전(直殿) 김문(金汶), 응교(應敎) 정창손(鄭昌孫)·부교리(副校理) 하위지(河緯之)·부수찬(副修撰) 송처검(宋處儉), 저작랑(著作郞) 조근(趙瑾)을 의금부에 내렸다가 이튿날 석방하라 명하였는데,
오직 정창손만은 파직(罷職)시키고, 인하여 의금부에 전지하기를, 김문이 앞뒤에 말을 변하여 계달한 사유를 국문(鞫問)하여 아뢰라."
반대하는 신하들 의금부에 하옥하고, 일부는 파직에 국문까지 함
평생을 논리 싸움과 설득으로 살아온 왕이지만
절대 설득하지 못할, 하지만 꼭 필요한 일에 그동안 아껴왔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신하들의 반대를 찍어버리고 반포함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하니아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너겨 새로 스믈 여들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뻔한킈 하고져 할따라미니라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끼리 서로 맞지 아니하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믈 여덟 자를 만드노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