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귀비 엄씨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생모
원래 명성황후 처소에서 일했다가 고종의 승은을 입음
이를 알게된 명성황후가 격노해서 그녀를 궁에서 내쫓아버림
그 후 명성황후가 일본에 시해당한 뒤 그녀는 다시 궁으로 돌아올 수 있게되고
고종이 가장 아끼고 총애하는 여자가 됨
일개 상궁이었던 그녀는 순귀인 - 순빈 - 순비 - 순귀비 - 황귀비까지
쭉쭉 승진하며 출세가도를 달리고
실제로 말이 후궁이지 사실상 내명부를 통솔하며
황후나 다름없는 권세를 누렸다고 함
그녀의 집안은 원래 평민 집안이었으나 그녀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됨
특히 엄귀비와 그녀의 가문은 여성교육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숙명여고, 진명여고 등의 학교를 세우고 후원
귀인 양씨
덕혜옹주의 생모 이름은 양춘기
원래 세수간에서 일하던 천민 추신의 나인이었다고 함
그러다 고종이 덕수궁에 유폐되었을때 고종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고
조선의 마지막 왕녀인 덕혜옹주를 낳아 귀인에 봉해짐
다만 이 모녀가 정식후궁과 옹주로 곧바로 인정받지는 못한듯한데
그 때문에 양귀인은 '복녕당'으로 불리고
덕혜옹주도 '복녕당 애기씨'로 불렸다고 함
양귀인도 엄귀비처럼 평범한 평민 집안이었으나
고종이 덕혜옹주를 너무 이뻐하고 총애했기 때문에
그녀의 친정은 불같이 가세가 일어나고 정육점을 하던 백정 오빠는 관복을 입고 조정에 출입하게 됨
(다만 양귀인이 승은을 입고 옹주를 낳은건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라
대한제국 시절의 엄귀비만큼의 권세를 누리지는 못한듯....)
하지만 곧 고종이 승하하면서 모녀만이 남겨지게 되고
그녀의 유일한 딸 덕혜옹주도 일본으로 보내져 생이별을 당하게 됨
그녀는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다 암으로 사망
딸이 일본으로 떠난 후 1926년 조선으로 잠시 왔을때 단 한번 만난것이
곧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