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호 감독은 이미 여러차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안중근을 자신만의 스크린에 펼쳐냈다. 독립운동의 뜨거운 영웅이 아니라, 다른 동지들의 삶에 빚을 진, 차가운 얼굴의 안중근을 표현해냈다.
'하얼빈'은 스펙타클한 서사나 재미보다 사실적인 표현과 잘 뽑아낸 영화적 장면으로 인간 안중근을 보여주며 관객을 툭툭 건드린다. 마지치 안중근의 전기 중 일부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면서 그의 헌신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묵묵히 걸어가는 인간 안중근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총격 장면에서는 그저 내려다보듯이 찍은 장면을 보여주며 울컥 쏟게 만든다. 잘만들어낸 웰메이드 영화의 끝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일부러 애국심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신파보다 담백해서 더 뜨겁다.
영화 속 대사들은 마치 지금 시국을 그려낸 듯 가슴을 때린다.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지만, 백성들은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는 지금의 한국 현실을 그대로 표현해 낸 것 같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짠하면서도, 받은 것 없이 나라가 힘들 때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국민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가슴이 시리다가 따뜻해진다.
안중근의 마지막 대사를 보며, 오늘날을 대한민국을 열심히 살고 있는 나와 내 가족과 이웃을 토닥여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것 같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안중근의 거사와 그의 마지막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신념을 가지고 뚜벅뚜벅 걸어간 그의 길을 함께 따라가고 독립을 위해 싸우고 고민한 표정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웅장해진다. 올 연말은 그 어느때보다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고 어수선한 것 같다. 이럴 때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혹은 나홀로 '하얼빈'을 본다면, 영화가 끝나고 생각할 거리와 나눌 이야기가 많아질 듯 하다.
12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