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학생들은 잘못이 없잖아요” 충암고에 위로의 풀빵 전한 시민들
18일 오전 5시30분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새어나오는 달착지근한 풀빵 냄새가 고요한 새벽을 깨웠다. 고등학생의 부모뻘, 조부모뻘 되는 사람들이 모여 풀빵을 구우며 나누는 대화가 지난밤 썰렁했던 교실을 따스하게 데웠다. “아이들 올 때까지 식으면 안 될 텐데”. 교실 한쪽에 놓인 보온통에 모락모락 김 나는 풀빵과 함께, 학생들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이 차곡차곡 담겼다.
서울 서대문구 시민단체 서대문마을넷은 이날 충암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풀빵을 나눠주는 행사를 열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충암고 출신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분노한 여론은 충암고 학생들을 향하기도 했다. ‘어긋난 시위가 학생들을 겨눠선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둘 마음을 보탰다. 이들은 “아이들은 잘못이 없지 않냐”며 학생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려고 행사를 준비했다.
이윤찬 충암고 교장은 “이번 사태로 학생들 피해가 우려돼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등교하도록 지도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너무 걱정되고 안쓰러웠는데 시민단체 분들이 먼저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하셔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교실 천장과 벽면에는 “충암고 학생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에요” “변함없이 빛날 너희를 응원해” 등 응원 문구가 붙었다. 하나둘 교실에 들어서는 학생들에게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잠이 덜 깬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선 학생들은 이내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풀빵을 기다리는 줄이 교실 밖까지 길어지자 손이 바빠졌다.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일손을 도왔다. 특수학급 담당 교사인 A씨도 반 학생들이 직접 만든 커피를 나누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학생들은 “억울했던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민겸군(16)은 “얼마 전에 한 할아버지가 학교 쪽을 바라보며 욕을 하신 적이 있었다”며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한테 그러는지 억울했다”고 했다. 김군은 시민들의 응원 메시지를 휴대전화로 찍으며 “이런 이벤트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친구들에게도 꼭 보여주겠다”고 했다.
권혁진군(17)도 “국밥집에서 아저씨들이 학교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 위축됐었다”라며 “일부러 다른 학교에 다니는 척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어 “충암고는 원래 야구도 유명하고 좋은 점도 있는데 황당하고 억울했다”며 “그래도 풀빵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서대문마을넷 회원 이영희씨(59)는 “동네 주민으로서 아이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쁘고 보람 있었다”며 “어른들한테 받은 상처가 치유됐으면 하고 충암고 학생들이 앞으로 상처받는 일 없이 잘 자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충암고 학생들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