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이도
적자 한정 사위복은 괜찮았지만 정말 며느리복이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더럽게 없었음
국왕도 자식들의 금슬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듯이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들은 대부분 정실과 사이가 최악이었는데
알고야 있겠지만 이게 어느 정도였나?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총 10명의 적자녀들 중 구설수, 불화 없이 살아남은 며느리는 단 둘밖에 없는데 지금부터 그걸 알아보자
1타는 우리가 아는 박색이라(못생겼다고 함) 미신을 믿고 문종이 총애했던 궁녀들 신발 태우고 저주하다가 2년만에 폐빈된 문종의 1번째 부인 휘빈 김씨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세종과 소헌은 그렇게까지 며느리 농사가 망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휘빈 김씨가 박색이라 일부러 좀 외모를 보자고 얼굴에 신경써서 미인으로 뽑은 2번째 세자빈 순빈 봉씨는 더했다
왕세자가 자기한테 안 온다고(휘빈보다는 나았던 게 좀 가다가 후궁들에게 가서 승휘 홍씨, 권씨에게 빠짐) 후궁들 괴롭히고 매질도 했으며
본인 궁녀들과 동성애를 즐긴 레즈비언이 된 순빈 봉씨 왕실을 뒤집은 희대의 스캔들로 이쪽도 폐빈->자결 엔딩
마지막 3번째 세자빈 현덕왕후 본인은 큰 문제 없이 경혜공주, 단종을 낳았지만 산욕열로 단종 낳고 사망 엔딩
중간 공백 사이에 사랑하던 양제 홍씨를 세자빈으로 책봉할 수 있었지만 문종은 귀찮아서 그냥 회피했고
(이게 나중에 계유정난이라는 최악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첫째며느리 농사는 완전히 망하게 됨
대외적으로 알려진 건 이게 다지만 망한 며느리 농사는 이게 끝이 아니다
3남 안평대군은 당대에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부부사이가 아예 파탄나서 부인과 별거했고(단종시기 부부인과 자식이 일부러 안평대군 편도 안 들어줌)
4남 임영대군과 5남 광평대군의 부인들은 둘이 이종사촌인데 본인들보다 부정부패로 더 유명함 임영대군의 친정조카, 광평대군 부인의 외조카에게 인사청탁이 들어오자 부인이 조카 일을 임영대군한테 부탁하고 임영대군이 그걸 아빠한테 직빵으로 말하면서 신하들까지 논의할 정도의 사건으로 번짐
이제 끝났냐고? 아직 8남 막내 영응대군이 남았다... 영응대군은 세종의 최애아들, 그래서 며느리도 신경써서 뽑음 첫 며느리 송씨가 좀 부족한 것 같아서 폐출시키고 다른 며느리 정씨를 들였는데 전 아내랑 계속 몰래 만나다가 들키고 세조의 주선으로 이혼 후 재결합을 시전함. 정씨가 억울하게 쫓겨난 (공식 폐위는 되지 않음) 데에 모자라 다른 여인 김씨도 정실로 맞고 아들을 낳은 영응대군은 (송씨는 딸 하나만 낳음) 동시에 3부인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움
정말 다행히도 적녀 (일찍 죽은 첫딸 정소공주는 시집을 못감) 정의공주는 남편 안맹담과 매우 금슬이 좋았다
그렇게 남은 정상 며느리는 단 둘이었는데
하나는 6남 금성대군의 부부인, 금슬이 대단하진 않았지만 평범했기 때문에 정상이었음, 세종 세계관 평범함=정상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세종과 소헌왕후의 최애며느리였는데 가장 정상이며 착한 며느리라서 최애며느리, 남편과의 금슬은 찐사에 덕이 많고 착해서 워낙 효자로 유명한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잘 모신 덕에 중궁전에서 첫 손자를 직접 낳게 해 줄 정도로 총애했던 소헌왕후는 그 최애아들과 며느리의 집에서 간병받다가 사저에서 죽는다 (세종 역시 최애아들 영응대군의 사저에서 사망함)
그리고 그 사람은 차남 수양대군, 훗날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임.
물론 정희왕후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고 정상적인 며느리가 사실상 하나였는데 그게 소헌왕후의 최애자식인 수양대군, 그리고 찐사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할 뿐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자식들을 잘 키워도 그 자식의 부부관계는 그 세종대왕과 왕비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