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 시각) 독일 연방의회에서 벌어진 신임 투표에서 숄츠 총리는 찬성 207표, 반대 394표, 기권 116표로 불신임됐다. 2021년 출범한 독일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 자유민주당(FDP)으로 구성된 ‘신호등 연정’ 체제가 약 3년 만에 붕괴된 것이다.
숄츠 총리는 불신임안 가결 직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청했다. 독일 헌법에 따르면 의회가 해산되면 60일 이내에 새로운 총선을 치러야 한다. 이에 따라 차기 총선은 예정된 내년 9월에서 7개월 앞당겨진 내년 2월에 치러질 예정이다.
독일에서 총리가 자신에 대한 신임 여부를 의회 표결에 부친 건 과거 서독 시절을 포함해 이번이 여섯 번째다. 이 중 세 차례는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으로 이어진 바 있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등으로 정치적·경제적 압박을 받아왔다. 특히, 독일의 탈원전 정책,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문제, 경제 회복 방안 등을 둘러싼 연정 내 갈등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연립정부가 해체됐다. 이번 불신임 투표는 정치적 균열의 최종적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조기 총선에서는 중도 우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인자(INSA)가 9∼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민·기사당 연합의 지지율이 31%로 주요 정당 중 1위였다. 극우 ‘독일을위한대안(AfD)’이 20%로 2위였다.
앞서 프랑스에서도 독일과 유사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했다. 내년 예산안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갈등이 격화하던 중 프랑스 하원은 지난 4일 미셸 바르니에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사실상 기능이 마비됐고, 바르니에 총리와 내각 장관 전원이 사퇴했다. 프랑스에서 총리가 불신임으로 물러난 것은 1962년 조르주 퐁피두 정부 이후 62년 만이다.
정치적 혼란은 경제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올해 독일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마이너스(-)0.1%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독일이 내년에도 0.1%의 저성장에 그칠 것으로 경고했다. 독일 경제의 핵심 산업인 자동차 제조업 역시 주요 시장인 중국 경기 둔화와 에너지 위기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프랑스는 올해 재정적자가 GDP의 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적 위기는 두 국가의 문제를 넘어 유럽연합(EU) 전체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두 나라는 EU의 경제·정치적 중심축으로, 이들의 혼란이 지속될 경우 EU는 리더십 공백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의 위험한 시기에 경제 강국 중 하나인 독일 정부가 붕괴됐다”면서 “독일의 정치적 혼란과 프랑스 정부의 몰락으로 EU는 트럼프 당선인의 복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중요한 순간에 리더십 위기를 맞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유럽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야나 푸글리에린 선임 펠로는 숄츠 총리의 불신임에 대해 “전통적으로 EU의 엔진 역할을 하던 국가가 내부 문제 수습에만 신경을 쓰게 됐다”며 “여러 가지 위기가 동시에 발생한 EU 입장에서 본다면 최악의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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