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동료의 무서운 충고...한국에서 펼쳐졌을 지옥도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붉게 충혈된 눈으로 회사에 출근했더니 만나는 필리핀 동료마다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한국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국회에 의해 계엄이 해제되기는 했지만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정신이 이상해진 독재자가 계엄을 선포했으나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답게 국회가 막았으니 대통령은 곧 탄핵당해 물러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료들은 부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면서 이제껏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필리핀에서도 대통령에 의한 계엄 선포가 있었다는 겁니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장기독재를 했고, 그 가족은 구두 수백 켤레로 상징되는 사치를 일삼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장기독재의 시작이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시작됐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197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장기독재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고 의회를 해산했습니다. 계엄 해제까지는 10년, 독재자 마르코스가 쫓겨나기까지는 무려 14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필리핀의 계엄 기간 동안 약 7만 명이 투옥되었고 3만 4000명이 고문당했으며 32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사람들 목숨만 빼앗은 게 아닙니다. 경제도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르코스가 집권한 1965년 필리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8달러로 한국의 105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됐습니다. 1981년 필리핀의 계엄이 해제되던 해의 1인당 GDP는 815달러, 한국의 GDP는 1883달러로 이번에는 한국이 필리핀의 두 배 이상이 되었습니다. 계엄과 장기독재로 인해 꺼져버린 성장동력은 독재자가 물러난 이후에도 다시 살아나지 못해 2023년 필리핀의 1인당 GDP는 3725달러로 한국의 3만 3121달러에 비하면 12%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화를 마친 필리핀 동료는 끝으로 이 말을 제게 했습니다.
"너희는 필리핀처럼 되지 마라."
2016년 2월 26일(현지시간) 필리핀 케손시티에 있는 피플 파워 체험 박물관에서 한 방문객이 계엄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56614?sid=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