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김혜경여사 1심 재판을 앞두고 이재명이 쓴 글
21,666 297
2024.12.15 01:18
21,666 297
- 법정으로 향하는 아내 -


 


가난한 청년변호사와 평생을 약속하고 생면부지 성남으로 와 팔자에 없던 월세살이를 시작한 25살 아가씨.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인권운동 시민운동 한다며 나대는 남편을 보며 험한 미래를 조금은 예상했겠지만 세상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훼술레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게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인데 금가락지 하나 챙겨 끼지 못하고, 아이들 키우고 살림 하느라 그 곱던 얼굴도 많이 상하고, 피아노 건반 누르던 예쁘고 부드럽던 손가락도 주름이 졌지만 평생 남의 것 부당한 것을 노리거나 기대지 않았다. 


남편 업무 지원하는 잘 아는 비서에게 사적으로 음식물 심부름 시킨 게 죄라면 죄겠지만, 미안한 마음에 음식물 값에 더해 조금의 용돈도 주었고 그가 썼다는 법인카드는 구경조차 못했다.


 


아내는 내가 불필요하게 세상사에 참견하고, 거대한 불의를 고치고야 말겠다는 오지랍 당랑거철 행각으로 수배를 받고, 검찰청 구치소를 들락거리는 것까지는 참고 견뎠지만, 선거출마는 이혼하고 하라며 죽어라 반대했다.


고생해도 내가 하지 니가 하냐는 철없는 생각으로 아내 말을 무시한 채 내 맘대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시장, 도지사였지만 변호사때보다 못한 보수에 매일이다시피 수사 감사 악의적 보도에 시달렸다. 이해타산을 따지면 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지만 나름 의미있는 일, 하고싶은 일이었고, 그래도 아내와 가족들은 안전했다.


그런데 대선에서 패한 후 본격적인 보복이 시작됐다. 


 


수년동안 백명에 가까운 검사를 투입한 무제한 표적 조작수사가 계속됐다. 천번을 향하는 무수한 압수수색, 수백명의 소환조사, 사람들이 목숨을 버릴만큼 강압적인 수사로 없는 먼지를 털어 만든 기소장이 연거퍼 날아오고, 구치소에서 구속을 대기하기도 했지만, 진실은 나의 편이라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동네건달도 가족은 건들지 않는다는 속설을 믿은 나의 상식과 달리 아내와 아이들이 공격표적에 추가됐다. 


반복적이고 집요한 장기간 먼지털이 끝에 아이들은 다행히 마수에서 벗어났지만 아내는 희생제물이 되었다.


선물까지 일일이 뒤져, 혹여 값 나가는 것이 있으면 다시 포장해 돌려주고,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조심하며 살아온 아내가 공개소환 수사에 법정에 끌려 다니는 장면은 남편 입장에서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안그래도 힘든 남편이 자기 때문에 더 힘들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활짝 웃고 말하지만 얼마나 수치스럽고 억울하고 힘들까.


 


재판 받는다며 일찌감치 준비하고 나서는 아내를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소설 속에서나 읽었던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체감한다. 숨이 막히고 쪼그라들며 답답해진 가슴을 양손으로 찢어 헤치면 시원해 질 것 같다.


남자는 태어날 때 부모상 당했을 때 죽을 때 말고는 울지 않는다는 경상도식 가부장적 교육 탓도 있겠지만 나는 웬만해선 울지 않는다. 그런데 나이 탓이겠지만 아무 잘못 없이 나 때문에 중인환시리에 죄인처럼 끌려다니는 아내를 보면 그렇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도 가슴이 조여오고 숨이 막힌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1990. 8. 9. 잠실 롯데호텔 페닌슐라에서 007미팅으로 만난 붉은 원피스의 아가씨. 

만나는 순간부터 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평생, 아직도 나를 자기야라고 부르며 자신보다 남편과 아이들을 더 챙기는 혜경아. 


미안하다. 

죽고싶을만큼 미안하다. 



언젠가, 젊은 시절 가난하고 무심해서 못해준 반지 꼭 해 줄께. 


귀하게 자라 순하고 착한 당신에게, 고통과 불행만 잔뜩 안겨 준 내가 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혜경아, 

사랑한다.


xHdVFb


+ 대선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음식값 10만4천원을 결제해 공직선거법 위반(기부행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인 김혜경씨에 대한 1심 선고가 14일 열린다. 

목록 스크랩 (11)
댓글 29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위즈덤하우스]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반 고흐, 영원한 예술의 시작》 개정판 증정 이벤트✨ 397 12.13 29,252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12.06 181,111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04.09 4,233,008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7,980,79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380,92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0 21.08.23 5,546,623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3 20.09.29 4,499,975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61 20.05.17 5,116,465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4 20.04.30 5,537,47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365,899
모든 공지 확인하기()
322884 기사/뉴스 김건희 다룬 '퍼스트레이디', 탄핵 정국 속 개봉 3일 만에 1만 돌파 04:47 113
322883 기사/뉴스 “육아 피로인 줄 알았는데”… 33세 여성, 아이 낳고 ‘이 암’ 말기 진단 3 04:17 1,828
322882 기사/뉴스 오세훈 윤 탄핵 가결에 “국민께 사죄… 사회·경제적 안정 시급” 100 03:09 3,018
322881 기사/뉴스 우크라이나 통해서 전쟁 일으키려 했던 윤과 내란당 51 03:00 4,599
322880 기사/뉴스 명패함에 명패가 떨어지는 소리, 투표 계수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본회의장에 울릴 정도의 적막이 이어졌다. 8 01:34 4,459
322879 기사/뉴스 "강제동원 배상판결 문제부터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까지, 그동안 일본은 윤 대통령 덕을 많이 봤습니다." 26 01:22 2,433
» 기사/뉴스 김혜경여사 1심 재판을 앞두고 이재명이 쓴 글 297 01:18 21,666
322877 기사/뉴스 [속보] 블링컨 "尹탄핵소추, 한국 민주적 회복력 보여줘" 37 01:06 4,531
322876 기사/뉴스 퇴근 후 집 가면 누워서 스마트폰만…'고기능 ADHD' 인가요? 6 00:26 2,589
322875 기사/뉴스 [르포] “’붕어빵 3개 1000원 협의회’입니다”… 오늘도 여의도 수놓은 ‘이색 깃발’ [尹대통령 탄핵 가결] 5 00:20 2,350
322874 기사/뉴스 이 청년이 '집에 누워있기 연합' 깃발 만든 이유 45 00:10 7,379
322873 기사/뉴스 [단독] "윤, '끌어내라' 2차례 지시…'왜 못 끌어내냐' 역정" 수방사령관 검찰 진술 8 00:08 1,604
322872 기사/뉴스 "나도 임플란트 했어"…한국인들 유독 수술 많이 하는 뜻밖의 이유 10 00:04 5,113
322871 기사/뉴스 탄핵 찬성 밝힌 7인 중 기권한 놈 있음 153 12.14 52,599
322870 기사/뉴스 제주 최초 어린이보호구역 시간제 속도제한 도입 11 12.14 2,721
322869 기사/뉴스 [속보] 美, 尹탄핵소추에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 평가…동맹 굳건" 40 12.14 3,967
322868 기사/뉴스 [속보] 주한미국대사 “韓 민주적 절차 지지..한미동맹 굳건히 유지” [탄핵안 가결] 28 12.14 2,799
322867 기사/뉴스 추위 녹이는 집회 시민들...여의도는 커피 선결제, 광화문은 멸치·땅콩 306 12.14 48,695
322866 기사/뉴스 그저 팩트로만 조지는 MBC (feat.국민의힘) 168 12.14 39,920
322865 기사/뉴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폭주멈춘 '윤석열차'...이제는 책임의 시간 [MBC뉴스데스크] 2 12.14 1,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