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 환경이나 소비 방식에서 많은 변화가 있는 요즘이다. 채널들도 많아지고 OTT까지 공격적으로 제작하고 있다보니 드라마, 시리즈들은 당연히 사전 제작이 되어야 하고, 영화는 상대적으로 주춤해졌다. 코로나 이후 확연히 달라진 제작 환경 속에서 신규 제작 편수는 없어도 이미 제작해둔 묵힌 영화들이 많다보니 인기 있는 배우들은 한해에 2편씩 작품이 공개되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동시기에 영화와 드라마, 예능까지 공개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일 할 수 있나' 싶겠지만 정작 배우들은 "예전에 찍어놨던 작품들. 작품 공개 시기를 배우가 결정하는 건 아니니 우연찮게 몰린 것"이라며 오히려 지금 당장은 들어가야 할 작품이 없어 고민이라는 소리도 한다.
2024년 한 해 동안 3작품 이상을 선보인 배우들을 찾아봤다. 리스트업 한 배우보다 더 많은 배우들이 있겠지만 이들 배우들이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는지를 되짚어보자.
진선규 '외계+인 2부', '전,란', '아마존 활명수', '꽃, 별이 지나'
영화 3편을 올한 해 공개했다. 올 한해 다작을 선보인 배우들이 많지만 그 중에 진선규는 단연코 팔색조의 매력을 뽐낸 배우라 할수 있다. '외계+인 2부'에서 맹인 검객 능파로 출연, 민개인(이하늬 분)의 조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맹인 검객으로 짧지만 굵은 활약을 한 진선규는 멀티캐스팅 영화에서의 바람직한 연기가 뭔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전,란'에서는 양반 출신의 의병장 김자령을 연기했다. 연륜과 인품이 느껴지는 배역을 소화해 내는 진선규의 연기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기품을 연기해내는 진선규였다. 반면 '아마존 활명수'에서는 한국계 볼레도르인 통역사 빵식을 연기하며 코미디 연기의 진수를 선보인다. 3편의 작품 그 어디에서도 진선규 자신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얼굴, 찰떡인 캐릭터만 보이게 만들었다. 올 한해 연극 공연도 했던 진선규는 내년에는 드라마 '마녀' '애마' '자백의 대가'를 공개할 예정이다.
차승원 '폭군', '삼시세끼 라이트', '전,란'
영화, 시리즈, 예능을 고루 선보인 차승원이다. 평범한 인물을 연기했던 건 그나마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마지막인 듯. 작품마다 '모델출신의 트랜디한 배우'라는 걸 싹 잊게 해주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 차승원은 '폭군'에서도 '전,란'에서도 기괴하고 이상한 비주얼과 캐릭터를 선보였다. 예능에서 본체의 비주얼과 세련된 패션 감각을 뽐내며 작품 속에서의 캐릭터와의 간극을 더 크게 벌인 차승원이다. 차승원은 현재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촬영중이다.
황정민 '풍향고', '맥베스', '베테랑2', '크로스'
매년 공연도 하면서 영화도 한편 이상 찍는 황정민인데 2023년 말 '서울의 봄' 열풍으로 올해 초까지 천만관객을 동원하면서도 '베테랑2'와 '크로스'까지 2편의 영화를 더 선보였다. 사실 '베테랑2'의 서도철이나 '크로스'의 박강무나 비주얼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극중 상황에 스며들어 캐릭터를 표현해 내는데는 역시 황정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별성이 있다. '풍향고'에서는 황정민의 유쾌한 모습을 많이 볼수 있다. 시상식에서 아내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적시는 황정민의 모습까지 떠올린다면 올 한해 황정민의 정말 다양한 표정을 볼수 있었던 것 같다.
김희애 '데드맨', '보통의 가족', '돌풍'
이렇게 바쁜 50대 여배우가 있을까? 코로나 이후부터 정말 쉼없이 많은 작품을 하는 김희애다. 올해에도 2편의 영화와 한편의 시리즈에 출연했다. 김희애는 팜므파탈부터 지고지순한 캐릭터까지 여성성의 범주에서 안 해 본 역할이 없을 정도로 연기 경력도 화려하다. 그랬던 김희애가 최근에는 여성성을 벗고 사회성을 입은 연기를 많이 선보인다. 본격 정치 드라마에서 욕망으로 드글거리는 인물도 연기하고, 정치인들의 뒤에서 그들을 장기판 위의 말처럼 움직이는 권력실세의 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자식의 범죄 앞에서 한없이 쪼그라드는 모성애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김희애의 변신은 과감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변요한 '삼식이 삼촌',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그녀가 죽었다'
소속사를 바꾸고 정말 열일하는 변요한이다. 올 한해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시리즈 '삼식이 삼촌' 그리고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 출연했다. 시리즈와 영화의 성적은 크게 좋지 않았지만 변요한의 도전은 인상적이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에서의 몰입감을 가져오는 연기 뿐 아니라 영화에서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차원인 사람을 진지하게 연기한 모습은 변요한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염정아 '언니네 산지직송', '노웨이아웃', '외계+인 2부', '크로스'
염정아야 말로 올 한해 아낌없이 온 몸을 불사른 배우다. 오래 전부터 촬영하고 늦게 공개된 '외계+인 2부'에서도 초능력을 쓰는 도사로서 코믹한 연기와 액션을 불사했고 그 기운을 더 끌어 모아 '크로스'에서는 열혈 형사로 변신해 터프한 매력을 선보였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미모를 이렇게 써도 될까 싶을 정도로 '노웨이아웃'에서는 더러운 주근깨 뿐 아니라 인성 막장의 욕망의 정치인으로 변신해 시청자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를 몸치라고 매번 인터뷰때 마다 이야기하지만 이정도 액션 영화와 드라마를 찍을 정도면 몸치라 할수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할 무렵 '언니네 산지직송'을 통해서는 국민체조도 삐그덕 거릴 몸치임을 직접 보여줬다. 손큰 식혜여왕, 성실의 아이콘, 변신은 무죄라는 걸 보여준 염정아다.
지창욱 '리볼버', '강남 비-사이드', '우씨왕후',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
지창욱 역시 올해 뜨거운 활동을 했다. 곱상한 외모로 사랑받는 지창욱은 영화 '리볼버'로 삐딱함을 선보였고, '강남 비-사이드'에서는 어두움을 선보였다. '우씨왕후'를 통해서는 짧지만 강력한 섹시한 왕을 연기하기도 했다. 외모를 뛰어 넘어 연기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센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지만 타고난 외모를 무시할수는 없는 법.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도 '섹시한' '멋진'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낼 수는 없는 지창욱이다. 예능을 통해서도 소탈한 모습을 선보였던 지창욱은 내년에 공개될 '조각도시'를 촬영중이다.
조우진 '외계+인 2부', '아마존 활명수', '하얼빈', '강남 비-사이드'
영화 3편과 시리즈 1편에 출연한 조우진이다. '아마존 활명수'에서는 특별출연을 하긴 했지만 조우진 역시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배우다. '하얼빈'을 위해 가뜩이나 마른 몸인데 체중감량을 했다고도 하고 '강남 비-사이드'에서는 집념의 형사를 연기했다. 정장을 입을때와 아닐때, 안경을 썼을때 와 아닐때 등 분장 만으로도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조우진이 파격적인 장르적 도전을 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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