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분노는 나의 힘
1,789 4
2024.12.13 09:41
1,789 4

gFyxKa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9603

 

심리치료 중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을 말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토해내듯 분노하는 내담자를 보면, 마음 한 켠으로는 조용한 안심이 몰려옵니다. ‘아, 화를 낼 줄 아는 분이구나. 참 고맙다. 좋다.’

 

심리학적으로 분노는 ‘목표로 향하는 도중에 방해받거나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으로 정의됩니다. 우리 분노는 매우 민감한 레이더입니다. 화가 너무나 날 때, 바로 그때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지 들여다보세요. 나는 단지 이런 것을 원했어. 나는 실은 이런 사람이고 싶었어. 내가 생각하는 관계란 이런 것이야. 내가 믿는 세상은 이런 거야. 내가 화가 치민다면, 분명 그때 나의 존엄성과 소망이 침해된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분노는 어떤 것에 ‘접근하려는’ 감정으로 분류됩니다. 어떤 것에서 ‘멀어지려는’ 감정인 혐오, 공포와 분명히 구분됩니다. 분노는 나의 목표를 또렷하게 수면 위로 드러내어 주고 그곳으로 향하도록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화를 낼법한 상황에서도 손사래를 치며 물러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원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잖아요. 이 정도에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게 맞나 싶어요. 화를 낸다고 뭐 바뀔 것 같지도 않고.’ 분노를 느끼지 않기로 택한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억제하고, 무의식적으로 한 번 더 억압합니다. 억눌린 분노로 어느 순간부터는 몸 이곳저곳에서 통증 반응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역시도 혼자 감내하려 합니다.

 

크게는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이 문제 상황을 감당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노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과 희망이 없다는 느낌.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오랜 기간 학대받으며 우울과 비관주의가 내게 왜곡된 렌즈를 씌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릅니다. 몇 년 전이라면 모를까, 그 렌즈는 지금의 당신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두번째는 부정적 상황에서 분노보다 불안과 혐오가 더 빨리 올라오는 경우입니다. 회피하고 증오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세상을 전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고 말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도처에 모두가 오물이라는 느낌이 자꾸 들어 세상과 멀어지고 있다면, 이건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정말 피해야 하는 오물이 있기도 하겠지만, 미래의 나를 포함해 다른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미리 치워두면 좋을 오물도 분명 있습니다. ‘내가 왜?’ 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이야말로 누구보다 잣대가 엄격하고 혐오하기를 싫어하니까요. 그리고 오물에 가까이 가보니 ‘막상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경험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오물을 치우려 할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이 삽을 들고 나를 도우러 뛰어오는 경험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염세주의를 버리고, 다시 세상에 접근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분노의 목소리를 내면 결국 큰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파국화 등의 인지적 왜곡도 나의 정당한 분노를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분노하는 방식은 파괴적인 반응이 분명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신해 노여워할 줄 아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어느 방향으로 어느 만큼 분노해야 하는지를 알고 화를 낼 것입니다.

 

실제로 파괴적인 적개심과 정당한 분노는 다릅니다. 분노는 누군가를 해치거나 절망하게 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화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분석적,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봅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또렷해집니다. 얼마 전 발표된 한 연구에서도 화나 있는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들을 더 잘 풀어나가고 미래를 대비하는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노여워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더 멀리까지를 바라보고, 더 많은 사람을 살피고, 마침내 연결됩니다.

 

당신의 분노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회피와 혐오, 증오가 문제입니다. 분노에 대한 그간의 잘못된 믿음이 문제입니다. 분노를 일으키는 불의가 문제입니다. 노여워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 나의 힘을 믿는다는 것. 다다라야 할 지점이 있다는 것. 연결되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

 

귀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마음껏 노여워하세요. 당신이 정당하게 분노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제 지켜보세요. 다른 사람과 세상을 좀 더 믿어보세요. 나의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 응원군이 도착합니다. 내가 지켜낸 나의 존엄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름 모를 과거와 미래의 사람들이 연결되어 다시 당신을 지키러 옵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목록 스크랩 (3)
댓글 4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마몽드💗] 건조한 겨울철 화장이 더욱 들뜨는 무묭이들 주목! 🌹로즈리퀴드마스크+로즈스무딩크림🌹 체험단 이벤트 664 12.11 34,737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12.06 167,768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04.09 4,207,834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7,968,75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356,791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0 21.08.23 5,539,360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3 20.09.29 4,491,295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60 20.05.17 5,111,18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4 20.04.30 5,534,36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351,938
모든 공지 확인하기()
322730 기사/뉴스 與, 무너지는 尹탄핵 방어선…내일 탄핵 가결 가능성 커져(종합) 13 00:53 2,585
322729 기사/뉴스 (혐주의) '더티' 플레이팅의 끝판왕…변기에 담아주는 갈색 이 것(영상) 13 00:43 3,469
322728 기사/뉴스 “샌드위치는 음식 아냐” 한 마디에…영국 총리 '발끈' 무슨 일? 2 12.13 1,265
322727 기사/뉴스 김은숙 "국민 향해 총 겨눈 자, 대통령일 수 없어"...방송 작가협회 '탄핵 촉구' 성명 발표 32 12.13 4,669
322726 기사/뉴스 (예전기사) 국방부 “자위대 국내 일시체류 땐 국회 동의 필요없어” 16 12.13 2,380
322725 기사/뉴스 윤 정부 부자감세, 차기정부에 적자 100조원 떠넘겨 537 12.13 34,337
322724 기사/뉴스 퇴근 후 집 가면 누워서 스마트폰만…'고기능 ADHD' 인가요? [김수진의 5분 건강투자] 23 12.13 5,231
322723 기사/뉴스 국회 방어하러 갔다고 우기던 이진우 수방사령관 체포 44 12.13 8,687
322722 기사/뉴스 ‘2025년 데뷔’ UDTT, 선공개곡 ‘RETRY’ 퍼포먼스 영상 ‘하루 만에 40만뷰 돌파’ 12.13 468
322721 기사/뉴스 오늘 MBC 뉴스데스크 앵커 클로징 멘트🗞️ 20 12.13 4,536
322720 기사/뉴스 진짜 미쳤나봐..[단독] 한기호, 국방장관 고사?…국방부 고위층엔 ‘보안유지’ 부탁 34 12.13 4,568
322719 기사/뉴스 두번째 탄핵표결 D-1.. 부산MBC가 부산 국힘의원들에게 연락해봄 16 12.13 3,939
322718 기사/뉴스 부마항쟁 피해자들이 본 계엄.."악몽 떠올라" (부산MBC뉴스) 4 12.13 1,302
322717 기사/뉴스 MBC서 만든 탄핵 표결 D-1 영상(53초) 12 12.13 3,389
322716 기사/뉴스 조경태 지역구에 왜 몰려갔나 봤더니.. 상상도 못 한 이들의 정체 ㄴ(°0°)ㄱ | 부산MBC 현장쏙쏙 13 12.13 5,981
322715 기사/뉴스 "부정선거 수사 후 계엄령으로 밀어버려"‥극우의 '내란 선동' 통했나 8 12.13 1,475
322714 기사/뉴스 비밀의 해킹부대 '900연구소'도 가담?‥"사이버사령관 경찰 조사" 29 12.13 1,847
322713 기사/뉴스 "부정선거론의 허상"‥국힘도 알면서 왜? 3 12.13 1,653
322712 기사/뉴스 한미일 민관 합동 경제 행사도 연기‥미국 "예측 못한 상황 때문" 2 12.13 614
322711 기사/뉴스 '선관위 털자'는 이수정‥"망상 속 범죄심리학자" 35 12.13 3,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