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의 한 김치찜 전문점. 4인용 식탁 14개 중 12개가 비어 있었다. 사장 이모(52)씨는“저녁엔 한 테이블만 채운 날도 있다”라며 “매일 13~14시간씩 일해도 남는 게 없어서 지난달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았다”라고 말했다. 이씨는“처음 권리비를 3000만원 받겠다고 하니 종종 문의가 왔는데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문의가 뚝 끊겼다”라며 “어젠 권리비를 1500만원으로 해달라는 연락이 와서 기가 찼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대로라면 차라리 권리비를 포기하고 하루빨리 폐업하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했다.
불경기에 시름하던 자영업자들은 탄핵 정국으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못 견디고 폐업을 검토하는 자영업자들도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11월 서울에서 폐업한 일반·휴게 음식점은 2만1537개로 전년 동기(1만9126건) 대비 12.6%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장모(41)씨도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2022년 1억원을 들여 가게를 열었는데, 지난해부터 매출이 늘지 않더니 올해부턴 아예 매출이 줄었다”라며 “비용은 계속 오를 텐데 손님이 늘 거란 확신도 안 서고, 어수선한 정국을 보니 경기가 좋아지긴 글렀단 생각에 폐업하기로 마음 먹었다”라고 말했다.
올해 폐업 자영업자 수가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기록을 뛰어넘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개인·법인 사업자는 지난 2022년(86만7292명) 대비 13.7% 증가한 98만6487명이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 소비, 사업자 대출 등 여러 지표가 모두 악화했기 때문에 올해엔 자영업자 폐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며 “정부와 국회가 자영업자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버텼더니 탄핵 정국”
자영업자 사이에선 요즘이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대유행) 당시보다 더 장사하기 힘든 때라는 말까지 나온다. 서울 광화문의 한 고깃집 직원은 “오늘 저녁 예약 6건 중에서 5건이 취소됐다”라며 “코로나 땐 인원수에 맞게 오는 소규모 손님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저녁에 장사가 거의 안 된다”라고 말했다. 연말 회식이 사라지자 식당에 술을 납품하는 주류 도매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조영조 한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장은 “12월은 1년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대목인데 현재 상황은 말 그대로 역대 최악”이라며 “11월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업계 매출이 오히려 15~20% 줄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나타났던 소비 심리 위축이 재현되는 게 아니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016년 10월 102.7이었던 소비자심리지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던 12월 94.3까지 떨어졌고, 이듬해 1월 93.3으로 지난 2009년 3월(73.8)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주관적인 기대심리를 조사한 것으로 100보다 낮으면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본 응답자가 많단 걸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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