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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뻔한데, 다르다... '소방관' 불운이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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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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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화재 현장, 교통사고, 자살 소동 등 끊이지 않는 사건 현장에서 하나의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119 구조대 반장 '정진섭'(곽도원)과 그의 팀원들. 여느 때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그들 앞에 신입 소방관 '최철웅'(주원)이 등장하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구조 대원에게 답답함과 애정이 반씩 담긴 질타를 날리며 다시 사고 현장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섭과 철웅, 그리고 그의 팀에 돌연 위기가 닥친다. 한 화재 현장에서 철웅의 실수로 인해 선배 '안효종'(오대환)이 등 전체에 화상을 입은 것. 여기에 더해 진섭의 절친한 후배이자 철웅의 가장 친한 동네 형인 '신용태'(김민재)도 무리해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가 현장에서 사망한다. 이에 진섭과 철웅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그들 간의 갈등의 불씨도 커지기 시작한다.

뻔한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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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다루는 작품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린다. 영화적 재미 대신 실화의 힘을 선택하기 쉽다. 영화화해도 되겠다고 판단되는 실화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기 때문. 이처럼 쉬운 길을 걷는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누가 죽고 살 지 뻔한 클리셰의 향연. 운과 우연에 의존한 전개. 대부분의 캐릭터가 기억나지 않는 평면적인 묘사. 사건의 사회적 함의보다는 일차원적인 감정 분출에 집중한 각색까지.

곽택 감독의 신작인 <소방관>도 마찬가지다. <소방관>은 홍제동 방화 사건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가 사망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재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쉬운 길을 선택했다. 클리셰로 가득하다. 누가 사망할지, 각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누가 방화범이고 피해자인지 등을 영화 시작 10분 안에 전부 알 수 있다. 각 소방관의 개인사, 가족사를 부각하며 눈물을 흘리게 하는 신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방관>은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마냥 뻔하지는 않다. 신파는 많지만, 일반적인 한국 영화의 신파와는 결이 다르다. 모든 캐릭터가 스트레오 타입이지만, 최소한의 생동감은 있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이 아닌 구조대원 전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골고루 돌리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 덕분이다. 그 결과 <소방관>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고, 마냥 실화에만 의존한 신파극이라는 오명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클리셰 범벅

겉보기에 <소방관>은 특별할 게 없다. 한국 영화 특유의 클리셰로 가득하다. 주인공 최철웅의 서사만 보더라도 예측가능한 범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군대를 전역한 후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한다. 소방관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와도 알고 지낼 정도로 각별한 형 신용태의 권유로. 하지만 함께 출동한 화재 현장에서 용태가 사망하고, 철웅은 PTSD에 시달리며 방황한다. 재난 영화 등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상이다.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사실상의 주인공인 정진섭은 하필이면 소방관 근무 마지막 날에 홍제동 화재를 진압하다가 건물에 깔려 사망한다. 아빠를 기다리는 초등학생 아들, 은퇴한 남편과 함께 운영할 치킨집을 막 오픈한 아내를 남겨둔 채로. 철웅의 선배 구조대원인 안효종도 마찬가지다. 그는 곧 매제가 될 후배 '송기철'(이준혁)과 그의 아이를 임신한 여동생을 남겨둔 채로 사망한다. 가족관계가 나오자마자 예측가능한 결말이다.

주인공 따로, 중심인물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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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방관>에는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과 중심인물이 다르다는 것.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최철웅이다. 카메라는 그의 시점에서 소방관의 일상을 비춘다. 그런데 정작 그는 러닝 타임 내내 주인공다운, 영웅적인 활약을 거의 못한다. 사고 치고, 덤벙대고, 혼자 괴로워하고, 막말하기 바쁘다. PTSD를 떨치지 못해 구조 대원 복귀도 망설인다. 거칠게 말해서 이보다 찌질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객들은 소방관들의 내면을 깊이 살펴볼 수 있다. 관객에게 신입 구조 대원인 최철웅은 소방관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돕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첫 등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이등병처럼 곧장 사고 현장에 투입되어서 실수를 남발하고, 선배들에게 온갖 꾸지람을 들으면서 소방관들의 일상과 업무에 녹아든다. 이때 관객은 최철웅의 눈을 통해 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이처럼 주인공의 눈을 통해 다른 대원들을 살피면서 관객들은 그들이 소방관으로서 지닌 고민과 책임감에 서서히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정진섭은 그중에서도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명감 하나만으로 무장한 채 불길 속에 뛰어드는 베테랑 구조대원이다.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아끼는 동료도, 자기 목숨마저도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섭의 주변을 보면 소방관이 견뎌야 하는 딜레마를 명확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아내는 생명보험에도 가입 못하는 그를 걱정하면서도 원망하고, 아들도 아버지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같이 시간을 못 보내서 미워한다. 그는 가족을 이해하면서도 쉽사리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이는 진섭이 철웅을 미워하는 듯 챙기는 이유다. 그가 보기에 철웅은 이 딜레마를 버텨낼 준비가 안 된 햇병아리이니까.

과한데, 억지스럽지 않은

진섭 외의 다른 소방관들도 비슷하다. 곧 가족이 될 효종과 기철이 서로 구조대원을 그만두고 행정직에 지원하라고 떠미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한 집에 구조대원이 둘이나 있으면 다른 가족들이 편히 잘 수 없다는 공감대가 무겁지 않게 새어 나온다. 이처럼 자칫 철웅에게만 쏠릴 법한 분량을 적절히 조정한 덕분에 각 캐릭터에게는 예상보다 더 많은 분량이 분배되고, 그들의 삶과 고뇌는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긴장감 가득한 화재 진압 장면은 진정성을 더해준다. 극 중 화재 시퀀스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하나씩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 시퀀스만으로도 소방관이 감내해야 할 위험은 명확히 전달된다. 소방관의 시점에서 화재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는 드문 경험을 세밀히 묘사한 덕분이다. 갑자기 무너지는 계단과 벽, 폭발하는 가스통, 급격히 줄어드는 산소량 등은 관객들의 두려움을 극대화하기 충분하다.

그 덕분에 <소방관>의 신파는 과할지언정, 억지스럽지 않다. 눈물은 흘려도, 눈물을 짜내는 장치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일상 속 소방관의 사명감과 그들의 애환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담담한 연출 덕분에 <소방관>의 신파는 더 인상적이다. 소방관이 사망하는 순간을 슬로 모션을 길게 끄는 식의 연출은 없다. 그저 필요한 장면만 담백하게 전달한다. 자연히 결말을 장식하는 철웅의 오열도 작위적이지 않다.

더 나아가 엔딩 크레디트도 전형적이라는 인상이 옅다. <소방관>은 여러 실화 기반 작품처럼 실제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막으로 부연 설명을 말미에 덧붙인다. 사실 이러한 마무리는 사건 자체를 조명하는 효과와는 별개로 영화 자체의 재미나 완성도를 감추려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방관들의 노력과 사투를 깊이 있게 묘사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본말이 전도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부족한 디테일과 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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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https://m.entertain.naver.com/movie/article/047/0002455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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