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람선이나 호화 여객선으로 불리는 크루즈선은 엄밀한 의미에서 ‘배’가 아니다. 이동·수송보다 여가·관광·엔터테인먼트가 목적이기에 수영장, 스파, 카지노, 극장, 뷔페, 레스토랑, 조깅코스 등 온갖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고, 규모도 보통 5만t 이상, 최대 25만t에 이른다. 이쯤 되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리조트’에 가깝다. 평생 한 번쯤 부려보고 싶은 호사나 로망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크루즈 관광이, 전지구적 생태·기후위기 시대를 맞으며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대기·해양 오염, 쓰레기 배출, 해저 소음·빛 공해로 인한 생태계 교란, 입항 지역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 등 다방면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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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전세계 크루즈 관광 시장은 2023~2028년 약 248억8천만달러로 커질 전망인데, 다행히(!) 한국에서는 시장 규모가 아직 그리 크지 않다.2 그런데 우리나라 크루즈 시장의 정착·확산에 앞장선 주체는 놀랍게도, 국내 굴지의 환경단체다. 환경재단이 2005년부터 운영해온 ‘지구를 생각하는 그린보트’(그린보트)는 코로나19로 주춤했다가 최근 부활했다.
내가 이 기묘한 크루즈 상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환경사상가이자 ‘녹색평론’의 발행인이었던 고 김종철 선생이 쓴 한겨레 칼럼(2019년)을 통해서였다.3 그는 “어떤 환경단체가 주관하는 주요 연례행사 중에는 (자동차 수백만 대분의 대기오염물질을 뿜는) 크루즈선을 타면서 진행하는 선상 토론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자신의 애초 목적에 충실한 운동인지, 조직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비즈니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일갈했다. 그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이가 조의를 표했지만, 그가 남긴 이 우려를 진지하게 고민한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맞았다. 그린보트는 ‘그린’하지도 않았고, ‘보트’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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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크루즈 여행을 환경단체가 앞장서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전력도 이해하기 힘든데, 2025년 1월부터 재개되는 그린보트는 심지어 규모를 두 배 늘린 초대형 선박 ‘코스타세레나호’(11만4천t급)를 동원하기로 했다. 여객 정원 3780명에 승무원도 1100명에 이른다.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벗’의 크루즈선 환경영향보고(2022)를 보면, 이 선박과 선사는 대기오염·폐기물처리·투명성 부문 및 최종 평가에서 모두 ‘에프’(F)라는 최악의 낙제점을 받았다.
그린보트 주최 쪽은 설명한다. 선상에서 텀블러와 대나무 칫솔 사용을 권하고, 채식 한 끼 체험과 환경 강좌가 있으며, 탄소 상쇄 프로그램에 가입했기에 친환경이라고. 명색이 환경단체가 고작 이 정도로 크루즈를 ‘그린’으로 분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시민의 의식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차라리 ‘그린워싱보트’라는 이름이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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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9년 그린보트에 탑승한 경험자 몇 명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인터뷰이는 이렇게 증언했다. “밤하늘 가득한 별을 기대했는데, 여행 내내 배가 내뿜는 시커먼 연기밖에 안 보였다. 뭔가 켕겼다. 친환경과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 일반인과 노동자는 배 밑부분에서 잤고, 유명 인사들은 상위층의 고급객실에 묵으며 양주와 스테이크를 즐겼다. 묻지도 않았는데 어느 교수와 어느 작가가 자랑하듯 말해줘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 작가는 ‘우리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아닌가요?’라고 덧붙였다. 마치 ‘선상 설국열차’를 탄 기분이었다.” 다른 탑승자들도 이런 사실들을 확인해줬으며, 환경친화적인 면은 발견하기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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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도 우리는 전례 없는 폭염·폭설을 겪었고, 기후위기가 긴급한 이슈라는 것을 체감하게 해주는 신호들은 점점 잦아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크루즈 관광이 표방하는 이른바 ‘제국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은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가? 환경단체가 이를 미화하고 정상화하는 것은 적절한가? 지속 가능한 미래에 역주행하면서, 지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환경운동의 역할인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은, 굳이 크루즈선을 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물자와 에너지를 흥청망청 소비하는 생활을 ‘풍요로운’ 삶이라고 오해하고, 휴가라면 으레 항공여행과 골프와 크루즈 항행 따위를 떠올리면서 그게 ‘좋은 삶’이라고 믿는 정신적 빈곤 속에서 지내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리에게 ‘좋은 삶’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 김종철 선생의 말이 새삼 뼈아프게 읽힌다.9 드물게 주어진 성찰의 기회, 이마저 놓칠 것인가?
김한민 작가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6504.html
(최재천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생명다양성재단에서는 최재천 교수의 그린보트 참가가 개인자격으로 참가하는거라고 단체 차원에서는 환경재단의 그린보트 사업에 대해 비판하며 이 내용에 대해 최재천 교수와 소통해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모색한다는 입장을 밝혔음)
위에 있는 사람들 외에도 작가, 환경운동가, 학자 등 상당히 많은 사람이 참여한대. 티켓은 모두 완판되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