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당시 촛불집회. 언론은 평화로운 분위기라고 묘사했지만, 여성에겐 때로 적대적인 공간이었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여성 전체를 모욕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혼란을 틈탄 성추행도 빈번했다.
12월3일 계엄령이 발표되자 곧장 달려간 국회 앞에서 비슷한 광경을 마주했다. 많은 이들이 윤석열보다 김건희를 욕하는데, 특히 “쥴리 계엄이다” “대통령 옆에서 술을 먹이고 조종한 것이다”라면서 그가 “술집 출신”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입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박근혜 탄핵 당시 박지원 의원은 “앞으로 100년 안에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지금 그는 “남성 대통령은 이래서 안 된다”라는 말 대신 윤석열을 “미친 바보”라고 말한다. 여성의 실패는 성별 전체의 책임이 된다. 반면 남성의 실책은 개인의 문제로 일축되는데, 심지어 이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여성 혐오, 성노동자 혐오까지 동원되는 것이다.
광장에 내 자리는 없다는 절망감을 다시 느꼈지만, 또 나와야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박근혜 퇴진 투쟁 시기에도 여성은 촛불집회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물러난다면 여성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주말 집회에서 나는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자유발언을 신청해, 투쟁 현장에서 소수자 혐오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호응이 넘치던 현장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삿대질하며 “끌어내려!”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명박산성’이 설치된 2008년 광화문이 떠올랐다. 교복을 입고 나갔는데, 어른들이 “기특하다”고 했다. 칭찬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동등한 시민 취급을 못 받는다고 느껴서다. ‘촛불소녀’라고 명명된 우리는, 광장의 마스코트로 여겨질지언정 주인이 되지는 못했다. 이제 ‘2030 여성’이 되었는데, 시민사회에서는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와 인터넷에 접속하자 놀라운 순간이 찾아왔다. 발언을 들은 수많은 여성들이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광장의 낯선 분위기에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참여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있던 곳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았는데, 환호하는 반응뿐이었다”고 말해준 이도 많았다.
그날 저녁, 애인은 내가 발언하는 동안 싸움에 휘말릴 뻔했다고 고백했다. 그의 옆에는 어느 여자고등학교 깃발 아래 모인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는데, “페미니스트를 끌어내라”는 목소리에 눈치를 보더라고. 그래서 질세라 “여성 혐오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다가 시비가 붙을 뻔했다고 한다. “무대 아래에서도 젊은 여성이 목소리를 높이는 광경을 보여줘야, 그 학생들도 다시 나올 용기를 내지 않겠어?” 우리는 함께 웃었다.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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