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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복길의 채무일기]슬픔의 K팝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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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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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길 자유기고가

‘여자는 감정적’이라는 말은 쉽게 사용되지만, 정작 화가 난다고 사람을 위협하고 물건을 던지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그것이 새삼 얼마나 상투적 표현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마음을 누르고 감추어야 하는 사람의 손은 늘 비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자리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손에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사람은 짱돌 하나만 쥐고 있어도 용기가 생기는 법이니 손 안을 채운 그들의 얼굴이 자유롭고 비장해 보인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K팝 응원봉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8년 출시된 NCT의 ‘믐뭔봄’(기존의 둥근 형태에서 벗어난 직육면체 모양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을 보고 나서였다. 압도적인 크기와 생김새 때문에 종종 ‘돈까스 망치’에 비유되기도 하는 ‘믐뭔봄’은 발광 또한 남달라 어두운 곳에서는 그 적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그것은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건 마치 어둠 속에서 몇 명이나 기절시킬 수 있는 둔기이자 횃불이었다.

그래서 6년 전 K팝 디제잉 공연인 ‘슬픔의 K팝 파티’를 처음 기획했을 때 공연 포스터에 꼭 NCT의 ‘믐뭔봄’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새벽의 방송국 앞에서 혼자 밝게 빛나, ‘슬픔의 K팝 파티’라는 모호한 공연의 제목도 왠지 그 사진 한 장으로 모두 설명이 될 것만 같았다. 응원이라는 것은 곧 투쟁심의 발로인데 그 싸움을 위해 빛을 켜는 마음이 무엇일까? 그건 곧 기획에 앞서 들었던 ‘K팝은 향유자의 것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닿아 있었다. 그래서 그 빛이 켜지는 때보다 꺼지는 때가 나에겐 더 중요했다. 손에 무언가를 들며 분출된 투쟁심은 과연 언제 어떻게 사그라들까? 혹시 어쩌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응원’이란 건 곧 투쟁심의 발로

‘슬픔의 K팝 파티’는 이후 관객이 응원봉을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흔드는 공연으로 정착했지만 우리 내부의 질문은 점점 늘어만 갔다. 자기가 응원하는 ‘자기 자신’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일상을 빼앗긴 이들에게 ‘일상이 된 K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무렵 양재동 SPC 본사 앞에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여가는 사람이 있었다. 50여일간의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제빵기사 임종린. 그는 가장 달콤한 것으로부터 일상이 파괴된 사람이자 동료, 이웃, 시민으로 더 넓게 자신을 확장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답을 찾기 위해 그가 필요했다. 여자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달콤한 것을 내밀지만, 결국 그들을 끝없이 생산자로 착취하고 소비자로 포섭하는 K팝 산업의 속성이 그의 싸움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임종린과 활동가들은 우리를 환대해주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K팝 후크송이 거리에 같이 흐르는 괴상한 풍경도 힘이 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정작 힘을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닌 우리였다. 이후 우리는 강제 철거를 앞둔 을지로의 ‘OB베어’ 앞에서, 민주노총 청년궐기대회 현장에서 한 차례씩 더 공연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자본가들이 독식하는 문화를 민중가요로 전유하는 것이 옳은지 물었고, “비장해야 할 순간에 너무 흥만 있다”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쯤 우리는 대답이 어렵지 않았다.

주 소비자가 2030 여성인 K팝 문화 안에는 그들 각자가 겪은 투쟁의 역사가 있다. 그들이 맞서는 상대는 다양했다. 지나치게 상업적 마케팅을 벌이는 기획사,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는 아티스트, 비윤리적 콘텐츠, 인권을 침해하는 경호업체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골똘하는 자신들을 하찮게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까지. K팝 팬들은 이처럼 ‘자기 자신’을 부단히 사회와 연결하며 싸워왔다. 자기 자신의 자리와 의미를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큰 싸움에 필요한 준비된 투쟁심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로부터 훈련된 ‘흥’이 어찌 모든 것을 냉소하는 태도보다 비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흥 너머의 분노와 슬픔을 보라

서울 여의도 탄핵 시위에서 밝게 빛나던 K팝 응원봉의 불빛은 정치에 막 관심이 생긴 2030 여성의 기특한 성정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 치열하게 몰두한 우리 집단의 근성이자, 여성들에게 친화적이고 안전한 집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온 여성운동가들의 인내, 그리고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희생으로 알려준 임종린의 결실이다. 정치인들은 이 불빛의 의미를 깨닫고 윤석열 정권이 파탄을 맞은 것은 2030 여성들을 배격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정확히 공표해야 한다. 긴 무기력에서 탈출한 우리의 분노가 쉽게 꺼지지 않도록 부디 이 빛이 가진 힘을 인정하라. 그렇다면 우리는 또한 이 형형색색의 불씨를 살려 탄핵이라는 뉴스가 삼킨 곳곳의 어둠에 이 빛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37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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