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희생자수가 많은 사건임.
일본보다 이승만이 한국 사람 더 많이 죽였다는 거 암?
히틀러도 안한 자국민 학살을 한국정부 주도로 한 사건임. (당시 대통령 이승만)
저 빨간 게 다 사람목숨이고 피임.
여기 나온 건 공식적인 "사망자"를 말하는 것임. 이 외에 죽은 사람들, 부상자들 자신이 43희생자임을 숨긴 사람들은 추산조차 안 됨.
그리고 이 학살인지 항쟁인지 아직도 명명되지 못한 43사건은
무려 7년 동안 지속 됨.
광주 5.18항쟁이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벌어진 약 10일간의 사건임.
(그 전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거 암. 단순 수치를 체감해보라고 예시를 든 것임.)
이말인즉,
군인들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7년 동안 제주도 민간인을 총칼로 협박하고 죽였다는 것임.
일부러 제일 온건한 사진으로 가져왔음.
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건 굴속에 갇혀 죽은 제주 민간인들의 유해임
당시 계엄 군인들이 저기 숨어 있는 민간인을 폭도라고 규정하고 불을 피우고 입구를 막았음.
위는 다랑쉬굴 사건에서 영향을 받은 지슬이란 영화의 한 장면임.
(지슬은 프랑스 브졸영화제에서 황금수레바퀴상 수상한 전력 있음)
노인, 남자, 여자, 임산부, 갓난아기, 청소년 그게 누구든 죽였음.
강간? 말해 뭐함.
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실탄사격 연습하듯이 쏘아죽이고
여자는 발가벗긴 채로 매달아 죽임.
언론에 제일 많이 나오는 제주 4.3사건 관련 계엄군 명령이
해안으로부터 5km 이상 올라가면 무차별 사살이란 건데
그럼 해안가 5km 이내의 사람들은 안전했느냐?
전혀 아님.
제주도 안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희생자가 나온 북촌리, 종달리 등은 해안가 마을임.
군인이 지나가기만해도 바닷가 바위 뒤에 숨어야 했음(출처: 우리 외할머니)
4·3의 또 다른 아픔은 당시 사망·행방불명된 사람들의 무고한 희생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그 유가족들에게 대물림되었다는 것이다. 사건 과정에서 군·경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사법 처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자 유가족들은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 활동에 심한 제약을 받아왔다. <출처: 제주 4.3 평화재단>
제주 민간인들은 인간 취급도 못받으면서
우파좌파 할 거 없이 양쪽한테 다 착취당하고 죽었음.
6.25 전쟁 때조차 제주도 사람은 맨 앞에 서서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음.
제주도에서 총선하면 종종 당적이 없는 무소속 의원이나 도지사가 당선되곤 하는덴 4.3사건 여파가 큼.
제주 4.3공원 위패봉안실임.
여기는 이렇게 여러 이름들이 적혀 있는데...
4.3평화공원에는 이름없는 백비가 있음.
죽은 사람이 누군지, 몇명인지 모르기 때문임.
계엄문건이 "제주폭동" 이라고 적은 4.3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jpg
https://www.youtube.com/watch?v=EBPaaGEizzU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 된 알쓸범잡 유투브 두고 갈게.
위 영상엔 안 나왔지만 알쓸범잡 뒷부분에서 장항준도 할머니가 제주분이라 제주사람인 거 굳이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한 장면이 있음.
4.3사건에 관한 이야기 하자면 끝도 없지만.
이 글은 계엄문건이 폭동이라고 일컬은 4.3사건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계엄이란 이름 아래 짓밟히고 죽임을 당했는지 "일부분"이라도 알리고자 씀.